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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뮤지컬 '미드나잇'…당신은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끼는가?

"당신이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부르짖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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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7.02.03 14:55:17

▲뮤지컬 ‘미드나잇’은 새해를 앞둔 12월 31일 자정을 몇 분 앞두고 부부에게 찾아온 비지터(비밀경찰 엔카베데)의 이야기를 그린다.(사진=모먼트메이커)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쾅! 쾅! 쾅!” 12월 31일 자정을 앞두고 갑자기 들려오는 문 두드리는 소리. 새해가 오는 걸 축하하려던 부부는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갑자기 비밀경찰 엔카베데가 부부에게 찾아오고, 시계는 그 순간 멈춘다. 여기서부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인간 내면의 죄책감과 악한 본성이 뒤섞이는 악몽 같은 시간이 이어진다.


뮤지컬 ‘미드나잇’이 한국에 첫선을 보였다. 아제르바이잔의 극작가 엘친의 희곡을 영국의 작사/작곡가 로렌스 마크 위스와 극작가 티모시 납맨이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극의 배경은 1930년대 러시아 스탈린 정권 때다. 극에서 표현하는 이 시대는 비참하다.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 스탈린 정권 아래 비밀경찰은 매일 집집마다 문을 두드린다. 그들에게는 이른바 ‘할당량’이 있다.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저항 의식을 지닌 사람들을 잡아내 처단하는 것. 옆집 사람이 잡혀가는 비명 소리 속 부부는 “우리는 오늘 무사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갑자기 엔카베데가 “동료들이 깜빡하고 나를 둔 채 출발해버렸다. 잠시 이 집에서 기다리겠다”며 들어온다.


▲부부에게 나타난 비밀경찰 엔카베데(정원영 분). 그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추악한 악과 동시에 죄책감을 상징한다.(사진=모먼트메이커)

엔카베데와 남편, 그리고 아내는 각각의 위치에서 악이 어떻게 사람을 잠식하는지 보여준다. 엔카베데는 정권 아래 보호를 받는 것 같지만 시키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일 뿐, 거기에 자신의 자유 의지는 없다. 그리고 상대방이 정권에 친화적인지, 반감을 지녔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할당량을 채우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여유만만 큰 소리를 치면서도 어딘가 뭔가 불안해 보인다. 새로운 시대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남편과 아내는 극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 비밀 하나 없을 것 같은 이들에게는 알고 보면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죄 없는 친구를 반역자로 고발하고, 비밀경찰이 고문실로 호출해 “이 사람이 반역의 주동자냐”고 물으면 친구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네”라고 답한다. 이들에게도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안위가 중요하다. 그리고 “너무 고문을 받아 알아보기 힘들었던 그 친구가 제발 고문실에서 나를 마주쳤다는 걸 몰랐으면 좋겠다”고 괴로워한다. 이런 감춰왔던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비난하듯 외친다. “당신이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평화롭던 부부는 엔카베데의 등장으로 급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 미쳐가고, 다시 사실을 감추기 위해 몸부림친다.(사진=모먼트메이커)

처음에 엔카베데는 단순 악을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 같지만, 그의 정체는 사실 모호하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 현실에서 돌아가는 시간이 멈췄고, 엔카베데는 부부의 비겁하고 추악한 비밀을 아주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래서 엔카베데가 입을 열고 진실이 드러날 때마다 부부는 “닥치라”고 하며 점점 미쳐간다. 아내는 폭력적인 성향까지 보이며 엔카베데를 없애려 한다. 하지만 엔카베데를 없앴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금 그가 등장한다.


어쩌면 엔카베데는 부부가 정말 잊고 싶은, 자신들의 추악한 행위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일지도 모른다. 잘못을 잊으려는 부부에게 끊임없이 당시의 일을 귓가에 들려주고, 다시금 그 일을 기억하게 만든다. 그 죄책감을 없애버리고 싶어 늘 없었던 일처럼 잊으려 하지만, 자정이 울리기 전 엔카베데는 계속 찾아오고, 부부에게 새로운 해는 오지 않는다.


극의 이야기는 1930년대이지만 2017년 현재 시국을 맞닥뜨린 관객에게는 이것이 멀지 않은 이야기로 다가온다. 자유 의지와 사상이 허용되지 않는 건 과거 독재 정권 때나 검열 논란이 불거진 현재나 형태만 다른 채로 반복된다. 그리고 ‘잘못’에 관한 기사들은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잘못에 대해 ‘인정한다’는 이야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모른다’ ‘다른 사람이 시킨 거다’ 등 책임 회피식 이야기가 뉴스란을 가득 채운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그들이 일말의 죄책감을 아주 조금이라도 느끼고 있을 지, 그들에게는 엔카베데가 찾아가지 않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뮤지컬 ‘미드나잇’은 제목처럼 새로운 해가 오지 않는 자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앞으로 얼마나 수많은 엔카베데가 가상과 현실 속 나타나고 사라질 것인가. 공연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2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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