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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전시 - ‘사물들: 조각적 시도’전] 젊은 조각에서 찾은 인간 물성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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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2호 김연수⁄ 2017.02.14 09:24:55

▲두산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사물들: 조각적 시도'전. (사진= 두산 갤러리)


2000년대로 접어들며, 조각을 전공하는 학생들 혹은 조각가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의 하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이냐’였을 것이다. 3D프린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진기가 발명됐을 때 회화 작가들이 들었던 질문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을까? 3D프린터의 가격이 점점 하락하고 있는 현재, 조각은 어떤 의미의 예술 방식으로 읽힐 수 있을까? 

종로 5가, 두산 아트센터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사물들: 조각적 시도(Things: Sculptural Practice)’는 두산 갤러리가 매년 진행하는 신진기획자 양성프로그램인 ‘큐레이터 워크샵’의 일환이다. 선정된 신진 큐레이터 세 명이 미술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강의-세미나-워크숍의 과정을 거친 후, 공동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프로그램이다. 2016년에는 김수정, 추성아, 최정윤이 선정돼 이번 전시를 선보였다. 최근의 미술계에서 오래간만에 만날 수 있었던 젊은 작가들의 조각 전시가 반갑게 다가왔다. 

현재의 ‘조각적 시도’는 무엇인가?

추성아 큐레이터는 이번 기획전을 위해 조각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언급하며, 현재 젊은 작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인 독립 예술 공간들에서도 주로 볼 수 있는 작품들은 회화, 사진 같은 평면 작업을 비롯한 영상, 설치 종류이며 조각은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조소 전공을 한 작업들이 많지만 물리적 작업 공간이 필요한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영상, 설치 작업으로 전향한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연구 과정에서 찾아보니, 여전히 ‘조각적’인 작업을 고수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그는 “지금은 ‘조각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내기 보다는, 이들이 연습하는 차원에서 현재진행형인 작업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힌다.

한편, 한국 미술사에서 ‘조각적 시도’ 즉, 물성과 덩어리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도는 1960~70년대에 이미 시도됐던 것으로서 현재는 이미 지나간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시도가 다시 이뤄진 것에 대해 추 큐레이터는 “현재 미술계에서 1980년 이후 출생 작가들은 어느 장르의 작업이 됐던 간에 공통적으로 모니터라는 평면의 화면을 통해 작업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입체를 바라볼 때도, 컴퓨터 화면 속의 입체를 보고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평면으로부터) 작업의 소재를 가져오는 것이 흔한 과정이 됐다”고 밝힌다. 이와 더불어 큐레이터들은 “평면과 입체 사이에 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조각가들이 실체 사물을 바라보고 작업을 했던 것과 비교해 현재의 작가들이 평면의 소재를 바라보고 입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사고 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인식의 공간(사이)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문이삭, '세례요한의 두상6'. 발포폴리스틸렌, 아이소핑크, 에폭시, 레진, 안료, 32 x 43 x 37cm. 2016.


문이삭: 평면이 입체가 될 때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모니터 안의 전 방향으로 회전 가능한 3D이미지는 정말 입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이삭 작가의 작품은 그런 의문에 적합한 실험을 보여준다. 그는 모니터 속에서 평면으로 보이는 4개의 시점(위, 전면, 왼쪽, 투시)을 입체로 변환하고 열선에 추를 매달아 스티로폼을 깎는다. 제작 과정에서 중력, 시간, 재료의 특성으로 인한 변수가 발생하며 우연한 형태가 생겨난다. 

전통적 조각의 소재인 인체와 종교적 의미를 가지는 인물(세례 요한)의 두상 등, 강렬한 서사를 가진 소재를 가져오지만 그의 작품은 그런 서사(이야기)보다 사물로서의 물질이 압도하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손의 형태에서 비롯한 스티로폼 작업에서는 열선의 자국이 만들어 낸 기계의 느낌, ‘세례 요한의 두상’ 시리즈에서는 서양 고전 조각과 그림에서 느껴지는 무겁고도 기괴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뚜렷한 외곽선으로부터 서사의 작용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깨닫거나, 외곽선이 제외되고 물성만 남았을 때 꽤 정확하게 전달되는 감성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황수연, '더 단단한(More Hard)'. 알루미늄 호일, 가변크기. 2014.


황수연: 물성 전복하며 놀기

황수연 작가의 작품들은 이번 전시의 작품들 중 ‘조각적’이라는 작업 방식에 가장 충실해 보인다. 그는 조각의 가장 기본적 행위인 ‘만들기’에 기반을 두고,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가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는 물질의 특성과 함께 노는 것을 보여준다. 가볍게 느껴지는 모래나 호일처럼 예민한 소재들을 뭉치고 붙여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재료로 변신시킨 작업들은 시각을 기반으로 한 인식에 촉각을 기반으로 둔 행위가 관여했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보여주며, 조각적 행위의 독창적 가능성을 선보인다.

▲조재영, 'Monster(몬스터)'. 판지, 접착지, 목재, 바퀴, 가변설치. 2015.


조재영: 보이지 않는 것을 물질로

추상 조각처럼 보이는 조재영 작가의 작품은 카드보드지로 만든 것이다. 원본, 영원성, 권위 등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비롯했다는 작품들은 사물들의 외곽을 일일이 측정해 카드보드지에 패턴을 그리고 조합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한편, 그가 재현한 작품의 형태는 사물 자체가 아닌, 사물 반대의 물질로서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언젠가는 없어질 사물이 배치된 상황의 외부-허공을 물질화하며, 사물이 가지는 상징성이 아닌 그 주위와 이면에 집중한다. 제도 과정이 보이는 작품의 반듯한 선들이 인간의 손자국이 느껴지는 전통적 조각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수치를 계산하고 잘라 만드는 원초적 건축의 기법, 혹은 공예적으로도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최고은, '토르소+물놀이(TORSO+MATERIAL POOL)'.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6.


최고은: 절단과 해부로 돋보이는 공산품의 아름다움

최고은 작가의 작품은 기성품을 활용한 것이다. 길에서 발견한 못 쓰는 가전제품, 가구 등을 가져다가 깨끗이 세척하고, 마치 정육을 하듯 해체하고 잘라내 미니멀리즘적인 조각으로 변신시킨다. 그는 이 작품들을 인체의 부분을 절단해 재현한 조각을 지칭하는 ‘토르소’라고 부른다. 공장에서 생산된 사물의 매끈한 미감에 집중하는 그의 작품은 사물이 더 이상 가지고 있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 비로소 집중하게 되는 생김과 특성이 작가의 손길을 거쳐 그 물성이 더 도드라지게 된 결과다. 해마다 색이 다르게 생산된다는 거울의 뒷면을 보여 주는 작품 ‘물(物)놀이’ 역시, 추상 평면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그 물질 고유의 색을 가진 납작한 조각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조각적’ 시도 혹은 시각이 평면을 바라보는 시각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 지 느낄 수 있다. 

추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의 관람객들로부터 조각 분야의 전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목말라 하고 있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덩어리와 물질감이 가득한 전시를 오랜만에 봐서 재밌었다는 감상을 전달했다.

결국, 이 전시에서 집중하는 ‘조각적 시도’란 이들 네 작가의 작업이 공통적으로 집중한 ‘사물의 물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시각에 의존한 판단과 인식과는 다른 감상 혹은 접근 방식을 요구한다고 느끼게 한다. 이와 함께 추 큐레이터는 이들 작업 전부가 반복적-수행적이거나 고된 노동이 들어갔다고 알려줬는데, 이런 특징은 현대 조각이라는 장르 자체의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기계 문명 사회를 앞두고 있는 인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존재 가치를 찾는 과정으로도 비춰진다. 전시는 2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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