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논란의 중심에는 문화인들 사이에 흔히 '아르코'라 불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있다. 여러 예술인이 문예위의 지원 사업에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선정되지 못했던 과정을 고발했다. 그런데 문제 발생 첫 시점부터 약 3년 동안 문예위는 입을 다물었다. 그랬던 문예위가 2월 23일 문예위 홈페이지를 통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를 전했다.
문예위는 사과문에서 "금번 문예진흥기금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지원 배제 사태로 상처받은 예술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국민과 예술가를 위한 기관으로서 부당한 간섭을 막아냈어야 하나 그러지 못했다. 많은 임직원들이 지원 배제를 거부하고 배제가 최소화되도록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외부 개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고 전했다.
해명이 늦어진 점에 대해서도 밝혔다. 문예위는 "그동안 특검의 수사에 충실이 임했으며 감사원 감사도 진행 중에 있다. 이런 일련의 조사로 사과가 늦어진 점 혜량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관련 사태 재발 방지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제도 개선을 준비해 왔다. 이미 심사위원의 선정 방식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대폭 개선해서 2017년도 사업 심의에 적용했으며 불만사항을 신고 받아 다루기 위해 옴부즈만 제도를 신설했다"고 밝혔다.
이어 "복원돼야 할 사업들을 다시 세우고 예산 확충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그간의 경위도 말씀드리고 예술계의 의견을 폭넓게 제도개선에 반영하기 위해서 앞으로 예술 현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조속한 시일 내에 추가적인 대책을 발표하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알맹이가 빠진 사과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불만사항을 신고 받는 옴부즈만 제도를 신설했다고 하는데, 이미 현장에서 많은 예술인이 블랙리스트에 관한 불만과 문제를 이야기해 왔다. 지난해만 해도 블랙리스트 관련 토론회가 수차례 열렸고, 이 자리에서 "공연장을 찾아와 리허설 한 번 보지 않고 특정 연출가를 작업에서 빼라는 이야기만 전화로 왔다" "문예위의 심의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직접 검열의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당시 문예위는 아무런 공식 입장 발표가 없었다.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임시 공공극장 블랙텐트에서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은 문예위의 태도를 전면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당시 김재엽 연출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끊임없이 문예위에 정확한 해명을 요구했지만, 박명진 예술위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임기 때 일어난 일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이후에 명확한 해명 없이 예술인의 협조를 구한다는 이메일을 단체 발송했다"고 말했다.
한편 문예위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으로 문화예술 창작 지원 등의 목적으로 매년 2000억 원 이상의 문예진흥기금을 집행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낸 박근형 연출, 문재인 후보 지지 발언을 한 이윤택 연출 등이 문예위의 지원 사업에 탈락하면서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