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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토이 덕후 ③ 노보] 제대로 노는 그가 묻는다 “다르면 틀린 거야?”

"항상 다른" 소년이 날린 종이비행기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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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7호 김금영⁄ 2017.05.26 09:38:00

가나아트센터와 아트벤처스로부터 주목 작가를 추천 받아 소개하는 ‘아트토이 덕후’ 시리즈의 세 번째 주인공은 노보 작가다.

▲북촌마을에 있는 작업실에서 노보 작가를 만났다. 작업실은 그의 첫인상만큼이나 개성 있는 공간으로 꾸려져 있었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사실 노보 작가를 ‘아트토이 덕후’라고 소개하기엔 어색했다. 아트토이컬처 현장에서 만난 그는 아트토이 작업이 아닌 타투, 페인팅, 설치 작업으로 많이 알려졌다. 그 또한 아트토이컬처에 참여 소식이 알려진 뒤 “노보가 왜?”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나니 이해가 갔다. 그는 덕후였다. 그것도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자신의 작업과 예술에 열정을 지닌 이른바 아트 덕후.

아트토이컬처가 끝나고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북촌마을에 있는 노보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가 골목길에 접어들자 한옥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노보 작가의 작업실은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입구 부분에 독특한 그림이 “여기가 바로 노보의 아지트”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작업실 내부도 눈길을 끌었다. 오브제, 페인팅 등 작가의 다양한 작업이 전시된 공간에 독특한 소품, Paper Planes(종이비행기) 네온사인 등이 배치돼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인테리어를 해야 한다고 조언을 받은 게 아니라, 마음가는대로 자유롭게 배치한 느낌이랄까.

▲노보, '자기 자신을 알라(Know Thyself) Part.4 - 티어드랍(Teardrop)'. 2016.

이런 자유로운 성향은 작가의 활동명인 노보(Novo)에서도 느껴진다. 지금 인터넷 검색창에 노보를 치면 ‘새로운’이라는 뜻이 나온다. 하지만 작가가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는 어떤 사전적 정의도 나와 있지 않았다. 쟝 피에르 리모쟁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인물이 “노보”라고 말했고, 자막에는 ‘마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라고 나왔다. 그 단어가 인상 깊어서 찾아봤지만 공식 단어는 아니었다고.

“유럽은 언어의 역사가 깊고 파생 과정도 길잖아요. 한 교수가 그 과정 속에서 나온 단어인 것 같다고 의견을 줬어요. 프랑스에서 작업 이름이 필요했는데, 이 노보라는 단어가 계속 기억에 남았고, 매력적이어서 쓰게 됐어요. 이후 유럽에서 건축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 노보 단어를 활용한 인테리어 회사를 꾸린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또한 노보라는 어원을 따라 올라가다 ‘새로운’을 뜻하는 ‘아르노브’에서 파생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스스로의 노보 스타일을 만들었다. 자유로운 성향을 지닌 작가의 작업 스타일에 꼭 부합한다. 작가에게 “타투뿐 아니라 페인팅 또한 하고 있지 않냐”고 묻자 그는 먼저 자신의 삶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작업의 기반엔 그의 인생이 있었기 때문.

획일화된 삶 싫어 유치원에서 도망 나온 소년

▲노보 작가는 '디올 립타투' 론칭 파티에서 마련된 팝업스토어에서 사람들에게 직접 바디페인팅 작업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80년대 생인 작가는 어린 시절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강남엔 높은 빌딩이 아닌 논밭이 펼쳐져 있었고, 한창 개발 시기였다. 그 와중에도 강남과 강북 지역을 나누는 풍토가 있었고, 강북에 살았던 작가는 소외의 대상이었다. 그건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작가가 참을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바로 획일화된 삶.

“당시 사회 분위기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획일화를 강요했어요. 유치원에서도 ‘지금은 낮잠 시간이니까 자야 해’ 식으로 정해진 일정을 강요했고 거기에 잘 따르지 못할 경우 문제아로 낙인찍혔죠. 저는 그게 싫었어요. 유치원에서 도망 나와 동네에서 놀았어요. 어느 날 어머니한테 걸려서 혼났는데 제가 이렇게 말했대요. ‘엄마, 유치원이 정말 재미없어요’라고.”

▲노보 작가의 바디페인팅 작업. 작가는 캔버스, 오브제뿐 아니라 바디페인팅까지 다양한 곳에 그림을 그린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자유로움과 다양성을 본능적으로 추구한 아들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이해해줬다고 한다. 다른 유치원에 재입학 했고, 그곳은 수업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편이라 작가는 잘 적응했다. 그런데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고교를 가면서 다시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모자를 쓰고, 사각가방이 아닌 배낭을 멘 아이는 저밖에 없었어요. 선생님들은 실내에서 모자를 쓰지 말라고 했고, 단정한 사각가방을 들고 다니라고 했죠. 사생대회 때는 다른 아이들이 풍경을 그릴 때 저는 밥을 먹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그렸어요. 무언가 다른 걸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어릴 때는 몰랐지만 점차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화가 났죠. ‘왜 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을 뿐인데 나한테 잘못됐다고, 틀렸다고 할까?’ 하고요.”

▲노보, '자기 자신을 알라(Know Thyself) Part.4 - 티어드랍(Teardrop)'. 2016.

작가의 손가락에는 이때의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네 손가락에 ‘1419’ 숫자를 타투로 새겼는데 작가가 창의성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의 나이다. 대학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그려야 합격한다’는 교육을 받았고,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이 나눠졌다. 조소과에 진학한 작가는 20살이 되면서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이때 빠져든 게 서브컬처다. 대중적인 문화는 아니었지만 작가의 마음을 ‘쿵’ 하고 울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고정관념을 깨는 것.

“제가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사진 세 장이 있어요. 하나는 누드 잡지 화보예요. 당시엔 누드 화보가 있다는 걸 생각도 못할 정도로 보수적인 사회였어요. 그 와중에 접한 화보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사진엔 어떤 할머니가 있어요. 그런데 할머니의 패션이 매우 독특해요. 명품을 휘감은 게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패션 피플 느낌이죠. ‘나이 든 사람은 품위가 있고 엄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사진이었어요. 마지막 사진엔 한 가족이 있는데 과거 한국 사회에서 특히 금기시 됐던 행동을 모두 하고 있어요. 엄마와 아빠는 몸에 피어싱과 타투를 했고, 어린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록 페스티벌에 가는 모습이죠. 그때 록은 한국에서 지금과는 달리 일반적인 대중문화가 아닌 비주류였어요. 이 세 사진을 보는 순간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자신 또한 고정관념에 박혀 있음을 깨닫게 해준 타투

▲노보, 'For' Q'.

이 과정에서 작가는 타투(문신)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 접한 타투는 선입견과 금기의 상징이었다. 작가도 타투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작가가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은 ‘문신은 조폭들이 하는 짓’이었다. 그런데 타투의 역사를 공부해보니 흥미로웠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렇게 싫어했던 고정관념의 틀에 박혀 있음을 깨달았단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겐 조폭들의 문신이 많이 노출된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또 달라요. 1910~1920년대엔 문신이 나쁜 이미지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1940년대 군사정권 때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했죠. 절박하고 억압받는 상황 속에 특히 군대에서 문신이 행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자신의 트라우마를 담는 거죠. 그래서 문신에 사회적 배경까지 덧입혀지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겼어요. 그리고 이게 오랜 시간 계속되면서 선입견을 만들어버렸죠.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아주 오랜 옛날 원주민 시대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벽에 그림을 그리고, 몸에도 문신을 새겼어요. 그때는 그걸 나쁘다고 인식하지 않았죠. 모든 틀을 만드는 건 바로 우리의 생각이에요. 한계를 만들고, 정상인 것과 비정상인 것을 만들면서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는 거죠.”

▲노보 작가는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선정작인 '한숨쉬지마'(위)와 '당신의 바닥'의 미술감독으로 참여했다.

군대에서 머리 깎아주는 일을 맡았던 작가는 문신을 한 동료들을 만나게 됐고 그 문신을 보며 ‘손으로 한 키치아트’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전역 날에는 목 뒤에 처음으로 달 모양의 문신을 새겼다. 그리고 약 2년 정도 타투에 대해 자료를 찾아본 뒤 프랑스로 공부하러 떠났다. 이때 만연한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길거리 어디서나 타투 숍이 보였고, 관련 전시 및 컨벤션도 열렸다. 하지만 ‘타투 작가’는 만나기 힘들었단다.

“타투에 빠져들면서 많은 자료를 찾아봤는데, 타투 문화는 활발할지언정 이것을 예술로 바라보는 시선은 부족했어요. 지금도 타투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곤 하는데 ‘돈만 주면 해주는 거 아냐?’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이런 경우 거절합니다. 그냥 미리 찍혀져 있는 도안대로 하지 않아요. 제게는 타투가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이고, 무엇을 몸에 새기고 싶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충분히 대화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에요. 단순히 예쁜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맞는 타투가 있거든요. 그래서 소통이 중요해요.”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선정작 '한숨쉬지마'의 홍보물 디자인에서 노보 작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길고 긴 이야기를 지나 “타투뿐 아니라 페인팅도 하지 않냐”는 질문에 대한 답에 마침내 다다랐다. 작가는 타투뿐 아니라 캔버스, 오브제에도 페인팅 작업을 한다. 그런데 작가에겐 이 둘이 다르지 않다. 행위를 수행하는 사람은 작가 한 명이다. 다만 하나는 몸에 그리고, 하나는 캔버스, 또 다른 하나는 오브제에 그릴 뿐이다.

“저는 오히려 되묻고 싶어요. ‘당신은 하고 싶은 것을 하나에만 담아내고 싶냐’고, ‘더 다양한 곳에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은 왜 안 해 봤냐’고요. 제게는 타투도 페인팅도, 설치도 다 하고 싶은 작업의 일환이에요.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풀어내는 것도 같고요.”

기왕 놀 거면 판 가리지 말고 제대로 신나게 놀자

▲노보, '호프, 스위트 홈(Hope, Sweet Home)'.

그래서 아트토이컬처 참여 제의에도 선뜻 응했다. 작가는 지난해 전시에서 바이올린, 스케이트보드를 캔버스 삼은 작업을 선보였다. 바이올린과 스케이트보드를 도구로 선택한 이유도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스케이트보드는 스트리트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많은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올림픽 대표선수와 같은 대우는 받지 못한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서브컬처의 한계라는 것. 그래서 신념이 있어야 꾸준히 탈 수 있다. 이런 점이 사람들의 선입견 속에서도 꿋꿋이 타투 작업을 이어 온 자신의 모습과도 닮았다고 생각했단다. 바이올린은 작가의 이런 열망을 “잘못됐다”고 꾸짖지 않고, 창의력을 펼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원해준 어머니를 상징한다.

그는 또한 쿨레인 작가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쿨레인의 덩키즈 스컬키에 노보 작가가 직접 페인팅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람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노보 작가는 '아트토이컬처 2017'에 참여했다. 사진은 현장에 꾸려진 노보 작가의 부스.

“쿨레인 작가가 제안해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어요. 원래 토이 오브제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요. 저는 특히 토이 오브제가 지닌 상징성이 좋았어요. 저의 바이올린과 스케이트보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상징성을 갖고 있죠. 그리고 아트토이 분야에서도 이 모습을 발견했고요. 그래서 더 궁금해졌고 함께 작업하면서 친해지게 됐어요. 오브제를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작업에 공감과 존경을 느꼈고요.”

올해엔 마리아상 오브제를 이용한 작업 및 텍스트 중심의 작업들을 선보였다. 이 가운데 화면 속 종이비행기가 눈길을 끌었다. ‘고정관념과 금기를 깨는 것’에서 출발한 작가의 작업은 이제 ‘희망’으로 나아가고 있다. 목에도 종이비행기 문신을 했고, 수많은 컬래버레이션 작업에도 이 종이비행기가 등장하며, 작업실에도 네온사인으로 걸어 놓았다.

▲노보 작가는 쿨레인 작가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선보였다. 쿨레인의 덩키즈 스컬키에 노보 작가가 직접 페인팅을 했다.

“자료를 찾다가 타투 문화를 가진 나라엔 꼭 제비 문신을 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대표적으로 체 게바라와 밥 말리가 있죠. 대표적인 타투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게 돕는 거예요. 그래서 이 타투 문화가 소통을 이끌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해낸 타투 아이콘이 종이비행기예요. 나중엔 종이배도 나왔고요. 하늘과 바다를 자유롭게 나아가는 종이비행기와 종이배처럼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게 시간이 흐르면서 노보라는 작가의 신념을 대변해주는 상징이 되기도 했고요.”

최종 꿈을 묻자 작가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 작가의 작업에서는 행복이 중요하단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예민한 감정들을 모으고 최대한 영감을 다듬는다. 그리고 그 영감은 행복한 작업으로 이어진다.

▲노보, '에브리띵스 거너 비 올라잇(Everything's gonna be alright)'.

“저는 놀 거면 진짜 아예 신나게 놀자는 주의예요. 지금까지 그렇게 달려왔고요. 고민과 갈증도 있었고, 후회도 있었죠. 그런데 후회를 하더라도 빨리 받아들이고 더 재미있고 행복한 일을 생각하고 싶어요. 10년 후 제가 어떤 아티스트가 돼 있을지,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요.”

작업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작가의 모습은 그의 활동명인 노보, 즉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이라는 뜻이 딱 부합되는 모습이었다.

▲'나이키 우먼즈 하프 마라톤'과의 아트워크 작업. 노보 작가의 상징인 종이비행기도 보인다.



[노보와 이효리의 만남]

▲이효리(왼쪽)와 노보 작가가 협업해 선보인 화보.(사진=W코리아)

노보 작가는 빈치스, 올리브영, 세컨플로어 등 다양한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했다. 그리고 특히 화제가 된 건 스타들과의 만남이다. 스타일리시한 노보 작가의 작업 스타일은 특히 패션 화보에서 돋보였다. 하이컷과 슈어에서 가수 오혁, 유승우와의 컬래버레이션 화보를 선보였다. 이밖에 패셔니스타 공효진을 비롯해 박태환, 2PM 닉쿤, 슈퍼주니어, 한예슬 등과도 작업을 했다. 그리고 단연 이효리와의 만남이 눈길을 끌었다.

2015년 노보 작가는 'W코리아' 표지 작업에서 이효리와 호흡을 맞췄다. 작가는 이효리의 상반신에 바디 페인팅 작업을 했다. 파격적인 화보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그때의 작업에 대해 작가는 “이효리는 본인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멋진 사람”이라며 “만약 실수가 있더라도 그걸 이효리의 색깔에 맞춰 실수조차 '이효리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예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짜 멋있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무엇이 어울리는지 아는 사람”이라며 “길을 걷다가 타투를 한 두 사람을 봤는데 한 사람은 정확한 문양에 대칭도 맞았고, 다른 사람은 엉성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엉성한 타투를 한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이것을 제대로 표현해 낸 느낌이었다. 이효리가 딱 그렇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알면서도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보여줬다. 덕분에 즐겁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올해에도 재미있는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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