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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성찰의 공동체’전, 한국사 상처에 렌즈를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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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1호 김금영⁄ 2017.11.10 09:31:40

▲임종진, '오월광주에 서다'. 디지털 C-프린트, 86 x 130cm. 2016.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작은 촛불 하나가 켜졌다. 그리고 그 옆에 또 다른 촛불이 켜졌고, 이 촛불들이 점점 모이고 모여 거대한 불빛을 형성했다. 이 불빛은 어두웠던 광장을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 사람들은 개인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사회의 현장을 목격했다.


개인과 사회의 이야기,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살피는 2017 서울사진축제 ‘성찰의 공동체; 국가, 개인 그리고 우리’전이 11월 26일까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SeMA창고, 플랫폼창동 61, 광화문광장 해치마당, 아트나인(예술영화전용관)에서 열린다. 전시는 대한민국에서 변화돼온 국가의 의미, 그리고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를 탐구하고 조망하는 의미에서 기획됐다.


사회를 구성하는 담론은 굉장히 다양하다. 따라서 굉장히 포괄적인 주제라 할 수 있다. 이를 하나의 전시로 묶기 위해 전시는 몇 가지 주제에 주목한다. 국가 성립의 과정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 안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사회의 변화’, ‘시대적 상처’를 살펴보고 미래의 시간을 바라본다. 이일우 감독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그래서 누가 맞아?’ ‘누가 틀려?’다. 특히 민감한 사회적 문제, 이슈를 다룰 때 이런 이야기들이 더욱 민감하게 이뤄진다. 전시는 과연 ‘이런 문제들이 어디서 출발했을까’에서 출발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오석근, '비난수 하는 밤 - 붉은 신호등 아래 민주주의'.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39 x 175cm. 2013.

이 감독은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상대방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또는 집단을 문제가 있다고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게 됐을까? 지난해 촛불집회부터 최근 일어난 정치적 변화까지, 우리는 늘 사회의 변화를 겪어왔고, 지금도 변화를 맞고 있다”며 “전시는 우리 삶의 어떤 점들이 우리를 극단적으로 분리시켜왔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가는 어떻게 형성돼왔는가에 주목한다”고 짚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건 ‘이해’다. 이 감독은 “성찰의 과정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 뒤 이해하고 바라보고자 한다. 우리는 하나이고, 앞으로 함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메인 전시의 주제와 연결돼 20~30대 젊은 작가들이 현실의 자화상을 기록한 특별전 ‘공존의 스펙트럼, 그 경계와 바깥’ ▲국가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 공동체 안에서의 불합리한 일들, 나라를 잃은 백성들이 강제로 이주해야만 했던 이야기 등 관련 주제 예술영화들로 구성된 ‘레드라인’ 필름 페스티벌 ▲플랫폼창동61을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창동, 사진을 품다’ 전시 프로젝트 ▲촛불집회 1주년 기념 시민 공모전 ‘나의 촛불’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꾸리는 학술 심포지엄, 시민 포럼, 워크숍으로 구성된 ‘시민 프로그램’ 등이 함께 꾸려진다.


이중 메인 전시가 열리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을 찾았다. 1층 전시장 주제는 ‘기억과 망각, 그 경계의 재구성’이다. 권순관, 권하윤, 김세진, 손승현, 안정주, 오석근, 윤정미, 이상엽, 이재갑, 임안나까지 작가 10명의 사진 100여 점과 영상 작업 3편을 전시한다. 이 감독은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건과 현상 그리고 역사적인 분기점에 대한 공식 기록(집단 기억)으로 1층 전시장을 구성했다.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고 살펴보는 건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이를 작가들이 담담히 기록한다”고 설명했다.


▲김세진, '도시 은둔자(Urban Hermit)'. 2채널 HD비디오, 6분 21초. 2016.

공식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고 누락돼 오랫동안 침묵 속에 방치됐던 사건들도 전시장에 호출된다. 권순관 작가는 6.25 전쟁 발발 직후 미군이 노근리 철교 밑에서 한국인 양민 300여 명을 사살한 노근리 사건을 배경으로 한 ‘어둠의 계곡’을 선보인다. 사진에는 눈 하나가 없거나,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할머니의 모습이 담겼다. 권 작가는 “60여 년 동안 알려지지 않고 은폐됐던 이 사건을 접했을 때 놀라움이 컸다. 지식으로서 주어진 역사를 대면하기보다는 직접 이 역사를 겪은 개인의 체험으로서 역사를 바라보고 싶었다. 지식의 대상으로 해석되는 역사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승현 작가는 일제강점기 동안 전쟁 동원과 노동력 조달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갔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한 재일동포들의 삶을 ‘70년만의 귀향’에서 이야기한다. 이재갑 작가 또한 일제강점기에 주목해 강제 징용된 조선인의 경로와 참혹했던 삶과 죽음의 흔적들을 ‘상처 위로 핀 풀꽃’으로 돌아본다.


역사적 사건을 현재에 끌어오고 미래를 바라보는 작가들


▲김정한, '셀 네이션(Cell Nation)'. 1채널 비디오 설치, 5분. 2017.

오석근, 임안나 작가는 외부와의 전쟁이 아닌, 내부에서의 치열했던 전쟁을 화면에 끌어 왔다. 오 작가의 ‘비난수하는 밤’은 국가가 개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던 광주 5.18사태를 다룬다. 임 작가의 사진엔 큰 탱크와 조명이 등장한다. 그는 전쟁 무기를 소재로, 한반도의 중단된 전쟁의 현재적 의미를 구현한다.


임 작가는 “2010년 천안함 사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참혹한 사태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실제 전쟁에 쓰이는 무기를 보고서는 현실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영화에서 많이 노출된 무기의 이미지를 기억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실재하면서도 가상과 같이 느껴지는 무기를 조명과 함께 화면에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권하윤은 ‘489년’을 통해 비무장지대(DMZ)를 정치적·지리적 공간으로서 바라보며 개인과 집단의 기억에 의문을 제기한다.


▲임안나, '클라이맥스 신의 재구성(Restructure of Climax Scene) #1'.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40 x 205cm. 2011.

1층 전시가 과거로부터의 기록을 통해 ‘직접적 사건’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2층 전시 ‘시간의 질량; 기억의 시뮬레이션’은 이런 사건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작가들의 문화적 성찰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적 비전을 제시한다. 이 감독은 “이곳에서의 작품들은 대한민국을 살아온 우리들의 기억이 상기시키는 삶에 관한 보고서이자 철학적인 반성문에 가깝다”며 “우리는 기억을 통해 앞으로의 계획을 만든다. 사회를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끝없이 기억을 쌓아가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시민의 모습 또한 이곳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신대, 김정한, 김진희, 오재우, 이재욱, 임종진, 최치권, 아시안 보스까지 작가 10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임종진 작가는 사진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치유의 가능성을 살핀다. 그가 주목한 사람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1970~80년대 삼척 조작간첩 사건 고문 피해자로, 국가 권력에 의해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사진 속 등장하는 장소는 바로 자신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줬던 곳들.


임 작가는 “이들에게 기억은 고통이자 상처로 점철돼 있었다. 국가폭력 앞에 손쓸 도리 없이 무너져야 했던 순간을 긴 세월 동안 가슴에 묻어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들의 옆자리를 지키며 사진 행위를 통해 자기치유와 존엄성 회복을 돕는 사진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고, 점차 그들은 자기를 억제하고 침탈했던 기억의 공간들과 마주하며 치유를 위해 노력했다”며 “이들은 고통의 기억과 스스로 대면하면서 자기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자기 삶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용기 있는 새로운 역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임 작가는 “이제 국가에 지금, 이들에게 무엇으로 답할 것인가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덧붙였다.


▲권하윤, '489년'. HD비디오, 11분, 스틸 이미지. 2016.

최치권 작가는 새로운 ‘대한민국전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지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 아닌, 각기 다른 장소에서 찍은 이미지로 엮인 지도를 만들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에 주목한 작가가 쌓은 이미지들이다. 최 작가는 “우리가 보는 현실은 보편적이지만, 카메라 렌즈로 보면 낯설고 또 다르게 보인다. 이건 아마 우리 안에 내제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현실과 다른 왜곡된 이미지들은 이 시대를 목격했으나 증언할 용기가 없었던, 권력의 작용에 묻혀야 했던 두려움이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 또한 진실을 마주하고 발언할 용기가 없었다고 한다. 그랬던 작가에게 세월호 사고는 큰 충격을 줬다. 그리고 가만히 침묵을 치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먹게 했다는 고백이다. 세월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도 작업에 담았다. 최 작가는 “21세기 초반을 살다간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은유와 비유로 가득찬 시간의 지도를 만들어 은밀히 남기고자 했다”며 “지도 위의 컴퍼스는 언제나 21세기 초반의 대한민국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목격하고 기록한 이야기들을 남겨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작가 개개인이 남긴 작업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개인, 집단, 국가를 돌아보고 성찰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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