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그룹이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인수하며 생명보험 시장에 새로운 판도를 예고하고 있다. 비은행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 이번 인수는, 우리금융의 전략적 행보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계획대로 인수가 완료되면 우리금융 보험사는 두 회사 간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생명보험 업계 6위에 오르며, 업계의 경쟁 구도를 재편할 전망이다.
이미 지난 6월, 우리금융은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패키지로 인수하기 위해 중국 다자보험그룹과 주식양수도계약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현재 우리금융은 다자보험이 보유한 동양생명 지분 약 75%와 ABL생명 지분 100%를 인수할 것으로 예상되며, 8월 6일부터 인수를 위한 실사를 진행 중이다. 가격이 확정되는 대로, 8월 말 주식매매계약(SPA)이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
동양생명과 ABL생명은 모두 안방보험의 대주주인 다자보험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다자보험그룹은 중국 재정부가 안방보험의 구조조정을 위해 설립한 공기업이다. 안방보험은 지난 2015년과 2016년에 걸쳐 각각 동양생명, ABL생명(옛 알리안츠생명)을 인수했다. 이후 안방보험의 오너십 문제가 불거지며 안방보험의 자산은 다자보험으로 이관됐고, 안방보험 산하에 있던 양 사는 다자보험 계열사인 안방그룹홀딩스의 계열사가 됐다. 이로써 현재 양 사의 출자구조는 다자보험그룹→다자생명보험→안방그룹홀딩스→동양·ABL생명으로 형성돼 있다.
이처럼 안방보험과 이들은 지분 관계가 단절돼 최근 안방보험이 파산절차에 들어간 것이 동양·ABL생명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국 정부는 최근 다자보험그룹을 민영화하기 위해 지금까지 투자한 자산에 대한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이 양 사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우리금융그룹에 염가매수차익을 기대할 매력적인 가격을 제시했을 것이라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지난 2020년 KB금융 역시 푸르덴셜생명 인수를 통해 1451억 원의 염가매수차익을 거둔 바 있다. 우리금융 역시 1조8000억 원 수준의 자금 여력 하에서 과도한 지출(오버페이)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인수의 배경에는 우리금융의 비은행 부문 강화라는 전략적 필요성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금융은 5대 금융지주 중 유일하게 증권사와 보험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지 않아, 전체 당기순이익에서 은행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은행 의존도를 보였다. 지난 1일 우리투자증권을 공식 출범시키며 증권사를 포트폴리오에 추가한 우리금융은 이번 보험사 인수를 통해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게 된다.
이번 인수를 통해 우리금융은 단순히 비은행 부문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생명보험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통합은 단순한 합병을 넘어, 자산 규모와 수익성 측면에서 생명보험 업계의 판도를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1분기 기준,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합산 총자산은 49조9109억 원에 이르러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신한라이프생명, NH농협생명에 이어 생명보험업계 6위권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후 NH농협생명(총자산 53조8435억 원)을 추격해 생명보험 업계 5위로 도약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양 사의 합병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합산 순이익은 3505억 원으로, 은행계 생명보험사 1위인 신한라이프(4724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익성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들의 장기 수익성 지표로 불리는 보험계약마진(CSM)의 경우,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동양생명이 2조 6,911억 원, ABL생명이 8,942억 원으로, 합산하면 3조 5,853억 원에 이른다. 이는 같은 기간 KB라이프생명의 CSM인 3조 886억 원을 상회하는 규모다. CSM은 보험계약에서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실현 이익의 현재가치를 의미한다.
새 회계기준(IFRS17)이 요구하는 상품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도 균형을 갖출 전망이다. 새 회계기준(IFRS17) 하에서는 저축성보험이 부채로 인식되기 때문에 생명보험사들은 보장성보험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동양생명의 일반계정 개인보험 수입보험료 중 보장성보험의 비율은 76.7%에 이른다. 같은 기간 ABL생명은 보장성보험 비율이 33.6%에 불과한 반면, 저축성보험 비율은 66.4%를 차지하고 있다. 양 사의 시너지로 ABL생명의 저축성보험 쏠림이 완화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동양·ABL생명이 지닌 자산운용 역량 역시 주목할 만한 요소다. 보험사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각종 자산에 투자하고 운용수익을 창출한다. 이에 운용자산수익률은 보험사가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는지를 평가하는 지표가 된다. ABL생명은 최근 7년간 평균 4.1%대 자산운용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에는 4.3%의 자산운용수익률로 생보업계 평균치인 3.3%를 상회하며 생보업계 2위를 기록, 7년 연속 톱3에 올랐다. 동양생명 역시 지난해 3.9%의 자산운용수익률을 기록, 메트라이프(4.9%)와 ABL생명(4.3%)을 이어 업계 3위의 운용자산이익 실적을 냈다.
양 사의 인수가 성사될 경우, 이 같은 잠재 기반을 바탕으로 우리금융의 브랜드 가치와 결합돼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있다. 과거 인수·합병(M&A) 시장에 출회된 외국계 보험사 매물 역시 동종업 상위 사업자 혹은 금융지주가 소화하면서 국내 인수자의 시장 지배력과 그룹사 시너지 전략이 강화됐다. 신한·KB·미래에셋 등이 외국계 투자자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며 신한라이프(옛 ING생명·MBK파트너스), KB라이프(옛 푸르덴셜생명), 미래에셋생명(옛 PCA생명) 등으로 탈바꿈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긍정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인수·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조직적 갈등과 인력 구조조정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간 동양생명과 ABL생명은 신사업 추진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만큼, 해외 진출과 신사업 발굴을 통한 미래 성장 동력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