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를 내건 ‘2024 부산비엔날레’에서는 ‘어둠에서 본다는 것’에 대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깨달음이라는 개념 사이를 넘나드는 이 주제는 특히 이주민, 난민, 폭력에 내던져진 국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특히 헬렌 아무주는 실향민이자 망명자였던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아시피카 라만은 방글라데시 모국의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두 여성작가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보여준다.
헬렌 아무주, 사진 시리즈 ‘자동초상’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향해 내려갔다면 예술은 밤이 스스로를 개방하도록 하는 권능이다.’ 그러니 작품을 만드는 일은 죽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밤이 우리를 다만 가두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밤이 스스로를 개방하도록 ‘어둠에서 벗어나기’라는 방법, 특히 시적인 방법이란 이러한 것입니다.” - 조르주 디디 위베르 ‘어둠에서 벗어나기’ 이나라 옮김(‘만일’ 2015. P. 69
벨기에 브뤼셀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인 토고 출신 작가 헬렌 아무주는 스스로를 ‘어둠에서 구출하는’ 매체로 사진을 선택했다. 헬렌 아무즈는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 초상사진 ‘자동초상’(2008-2019/2024)과 ‘그동안’(2021/2024) 시리즈를 선보인다.
아무주의 초상 시리즈는 20여 년간 망명생활을 겪으며 느꼈을 고독감과 고단함, 슬픔을 기록한 자화상이다. 자화상의 형식은 토고와 벨기에 사이의 심리적 거리, 어딘가에 속하지도 못했을 이주자로서의 삶을 기록한 일기다. 자동초상(2008-2019/2024)과 그동안(2021/2024)은 암실에서 탄생했다. 토고의 전통의상을 착용하거나, 망명생활에 동거동락했을 여행가방,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박탈감은 ‘누드’의 형식을 빌린다.
아무주는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면서 1분 이상의 장노출로 촬영했다. 마치 유령처럼 흐릿한 모습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자화상들은 자아를 지워버리고 벗겨진 벽에 얇은 이미지로만 남겨진다. 이 시리즈는 브뤼셀의 신트 얀스 몰렌베이크 지역에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자신이 거주했던 낡은 건물의 다락방에서 촬영한 것이다.
작가는 35mm 캐논 카메라로, 나중에는 롤리코드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꾸미지 않은 실내와 자신이 토고 출신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물들인 여행 가방, 망명 당시 작가가 들고 다녔던 소지품, 토고 방문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장신구, 천, 가족의 기념품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이미지는 곧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호로 작동한다.
마치 유령처럼 떠도는 사진 이미지는 마치 작가의 사회정치적 처지, 실재하진 않았지만, 비자를 받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시간처럼 비가시성을 드러낸다. 아무주는 1992년 수년간 정치적으로 혼란에 빠졌던 토고를 떠나 남편과 헤어진 후, 어린 딸과 함께 작가는 공식적인 이민 신분이 없는 사람들이 갇혀 있는 지하공간에서 거의 20년을 보냈다.
아무주는 벨기에에서 산 지 7년째 되던 해 교회에서 만난 한 여성을 통해 비디오 카메라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아무주는 여가 시간에 빌린 장비로 동영상을 촬영, 편집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몰렌비크 드로잉 및 시각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기 시작했고, 암실도 사용할 수 있었다. 마침내 2015년에 벨기에 시민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사진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강제 이주 후 집과 인격을 상실한 채 어떻게 시간을 견뎠는지를 보여준다. 베렐트뮤지엄은 2015년에 은색 젤라틴 프린트 8점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녀는 전시를 했던 갤러리의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 “여권과 신분증을 보면 가끔 ‘이걸 위해 평생을 바쳤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는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작가에게 사진은 가족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년 만에 토고에서 가족과 재회한 그녀는 오래된 사진을 공유하고 새로운 초상화를 함께 만들었다.
작가는 초상 시리즈 외에도 고국 토고와 연결되는 토고(2011) 시리즈, ‘중요한 것들’(2018~현재), ‘빛의 빛’(2023년 12월~2024년 10월) 등을 선보였다. 이 작업은 자국 안팎으로 강제 이주하는 약 1억 1천만 명(그중 50%가 여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이주문제를 다루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이 정말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아내려고 했던 자화상 사진은 그녀를 결국 어둠속에서 불안정함, 슬픔, 상실감, 회복력을 서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녀 스스로를 구원했음을 증명한다.
아시피카 라만, ‘본 비비 여신과 100개의 전설’
방글라데시 출신 작가 아시피카 라만은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 ‘본 비비 여신과 100개의 전설’(2024) 설치작업과 풍경사진, 영상을 선보인다. 본 비비 여신과 100개의 전설은 커다란 검은 구에 금색 실로 새긴 설치작품으로 방글라데시와 인도 내 종교적 폭력에 대응하여 공동체 협업 프로젝트로 제작한 설치 작업이다.
작품 속 ‘본 비비’는 벵골만을 따라 방글라데시와 인도에 걸쳐 분포한 넓은 숲 지대인 순다르반스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여신을 이른다. 숲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이 여신은 힌두교도와 무슬림 주민 모두에게 숭배를 받는다. 본 비비는 식민지 경계를 기준으로 형성된 분쟁 지역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혼합주의의 한 형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벵골만 북쪽 인도 동부 방글라데시 남부와 서벵골에 걸쳐 있는 세계 최대의 맹그로브 숲인 순다르반은 벵골 호랑이의 서식지로 숲에 들어가기 전에 신의 이름을 부르는 풍습이 있다.
본 비비 프로젝트와 설치 작업은 지난 50년 동안 양국에서 발생한 종교적 잔혹 행위나 분쟁으로 사망한 힌두교와 이슬람 신자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아시피카 라만은 설치작품 외에도 종교 이주민의 초상화뿐만 아니라 작가의 수행적 여정을 통해 기록된 이들의 이주 경로를 보여주는 풍경 시리즈를 선보인다.
최근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인도의 이슬람교도들과 방글라데시의 힌두교도들이 수차례 공격을 받아 부상과 사망에 이르렀고, 주택과 사원이 불에 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작품에는 방글라데시 현지 민요 팔라 가수가 공연하는 본 비비 팔라 영상도 포함돼 있다.
부산비엔날레는 부산현대미술관 로비에서 ‘신니 나누어 먹기’ 워크숍을 진행한다. 현장 참여로 이루어지는 이 프로그램은 ‘본 비비 여신과 100개의 전설’ 작품과 조응한다. ‘신니’는 여신 본 비비에게 바치는 공물이자 방글라데시 전통 디저트로 쌀, 우유, 설탕으로 만든 것이다. 신니는 예배 의식에 필수적인 요소로, 신니를 나누어 먹음으로써 공동체의 이타주의를 상징한다. 특히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책임과 자비로움을 드러낸다. 무슬림 전통에서의 신니는 집단적 연대를 의미하며 억압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다.
아시피카 라만은 챌린저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렇게 말했다. “렌즈가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나 좀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방법(중략)…. 우리가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만은 주로 시리즈 작업을 진행하는데 방글라데시의 19세기 프린트에서 영감을 얻어 현대적 미디어로 재맥락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원주민 및 소수 민족 커뮤니티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와 문화를 배우고 공동의 내러티브를 엮어내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라만은 ‘강간은 정치적이다’ 시리즈에서 인도, 방글라데시, 미얀마의 복잡한 국경 인근 남아시아 원주민 공동체에 일어난 강간 피해자의 초상화 시리즈를 제작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방글라데시에서 불법으로 지정된 토착 언어로 여성들이 직접 손으로 쓴 섬세한 기도문으로 수를 놓는 수작업을 진행했다.
‘사라진 자들의 파일’도 황금색 실로 사진을 꿰맸다. 사라진 자들의 파일은 방글라데시와 동남아시아의 국경지대에서 4000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이유나 정당성 없이 경찰에 연행돼 구금된 채 고문을 당한데 대한 저항이다. 풍경 사진은 시신 일부가 발견된 장소를 드러내는 것이다. 영상에 흘러나오는 노래는 이들이 부르지 못한 목소리를 대변한다.
작가는 때로는 직설적이고 섬세한 초상사진으로, 때로는 지역민들과의 소통을 통한 협업을 통해 자국민에 대한 폭력 사태와 관련된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책임감은 사회복지사였던 작가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이라고 한다. 작가의 관심은 어두운 구석에 갇혀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작가소개>
헬렌 아무주는 토고 출신의 작가로 지난 20년간 벨기에에 거주하며 작업했다. 2004년에 사진을 공부하게 되면서 이 매체가 자신의 예술적 연구와 기술적 실험에 가장 적합한 매체임을 확인했으며, 세부 사항에 더 집중해야 하는 영화 작업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녀는 추방되거나 비가시화된 사람들의 동시대적 문제를 호소하는 독특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제작한다. 자화상은 작가가 자신의 심연을 써 내려가는 작가만의 말 없는 쓰기 법이다.
아시피카 라만은 어머니의 사회 활동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신화, 영성, 민화 등과 현대 쟁점들을 혼합하는 방식을 통해 소외된 커뮤니티를 조명하는 대안 아카이브를 구성한다.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그들의 어려움을 기록하고 함께 협업함으로써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공감을 이끌어낸다. 예술 외에도 라만은 혁신적인 선상 학교를 설립해 창의성을 독려한다. 학계와도 관계 맺으며 명망 있는 기관에서 자신의 통찰을 나누며 예술, 사회 변화, 교육에 헌신하고 있다. 작가는 2024년 8월 우크라이나 키예프 핀추크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는 권위 있는 미래 세대 예술상 2024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09년 빅토르 핀추크 재단이 설립한 이 상은 2011년, 2013년, 2017년, 2019년 키예프 핀추크 아트센터 전시와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부대 행사로 100명이 넘는 아티스트의 예술적 발전과 신작 제작을 지원했다.
글: 천수림(사진 비평)
이미지 제공: 2024 부산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