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24.11.12 10:53:11
3월 한국메세나협회 회장 취임 간담회에서 창(唱)이 울려 퍼졌다. 한국메세나협회 제12대 회장으로 선출된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이 선창하자, 뒤이어 임직원들이 추임새를 넣으며 다소 경직돼 있던 간담회 분위기를 신명나게 만든 것. 보통 간담회에서 보기 힘든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회장과 직원들의 하모니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0월 11~13일 서울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19회 창신제(創新祭)’에서 한음(국악)영재들을 비롯해 크라운해태제과 임직원들도 대거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쳤다.
대표적인 ‘예술 애호가’로 불리는 윤영달 회장은 문화, 특히 국악에 대한 사랑을 기업 경영과 지원 활동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전개해 왔는데 창신제도 이를 대표하는 자리 중 하나다. 2004년 시작된 창신제는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주제로, 전통국악과 현대음악을 한데 아우르는 음악 공연이다.
특히 창신제는 단순 지원 차원에 그치지 않고, 직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장으로도 유명하다. 2012년 제8회 창신제 때 윤 회장을 포함해 임원, 부장, 팀장 100인이 직접 무대에 올라 판소리 ‘사철가’를 떼창해 화제가 됐으며, 올해도 이 행보가 이어졌다. 윤 회장 또한 직접 공연장을 찾아 이들을 격려했다. 올해 창신제와 관련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윤영달 회장에게 서면으로 들어봤다.
- 제19회 창신제를 성료했습니다. 올해 공연에선 어떤 곡들을 선보였나요?
“19번째로 열린 이번 창신제에서는 임직원들이 사물놀이팀으로 참여한 길놀이가 공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000년 전 백제가요 ‘정읍사’로 시작돼 최고 예술성을 자랑하는 전통음악으로 발전한 ‘수제천(壽齊天)’을 종묘제례일무와 처용무, 현대무용으로 표현한 몸짓 공연을 펼쳤죠. 또한 임직원 120명이 수제천을 구음으로 새롭게 불러 4성부 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초대형 합창을 선보였습니다.”
-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올해로 창신제가 20년째 열리고 있는데요. 전통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관객이 더 많이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제가 얼굴이 익을 정도로 매년 찾아주는 분들도 많습니다. 수제천을 주제로 한 세 번째 공연이었는데, 올해엔 다양한 장르와의 접목으로 더 새롭게 수제천을 즐길 수 있게 구성해 더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 앞서 언급한대로 이번 공연에서는 국악과 현대악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장르와의 접목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런 시도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은, 현대적이면서도 미래적인 수제천을 찾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미래형이 되기 위해서 서양 음악적인 요소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서양 오케스트라처럼 4성부 국악관현악을 구성해 수제천을 아카펠라 같은 구음과 초대형 합창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적인 수제천까지 선보였습니다.”
- 개인적으로 제19회 창신제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공연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저희 직원들의 초대형 수제천 합창에 가장 관심이 있었습니다. 피리와 대금이 주도하는 연주음악과 현악과 관악, 타악 연주자들이 오케스트라처럼 4성부 국악관 현악으로 연주하고, 거기에 직원 120명이 정읍사 가사를 연주에 맞춘 초대형 합창 공연이었죠. 웅장한 합창을 들으며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 공연 덕분에 앞으로 더 새롭게 수제천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게 됐습니다.”
- 임직원들의 이번 공연 연습 과정은 어땠나요?
“길놀이, 일무, 합창 공연에 직원들이 참여했는데 사내 국악 동아리에서 일과 시간 중 주 1회 진행하는 강습을 통해 익혔고, 회사는 최고 국악인을 전문 강사로 섭외했으며, 악기와 의상, 소품 등 필요한 장비도 적극 지원했습니다. 직원들은 전문 국악인 못지않은 열정과 실력을 인정받아 명인들과 한 무대에 올랐습니다. 사전에 직원들의 공연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 올 4월에 대전과 대구에서 공연도 했습니다.”
- 창신제에 임직원 참여를 시작한 계기 및 어떤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직원들이 국악 활동을 통해 근무시간 몰입이 높아지고, 예술가로서 활동한다는 자부심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큰 효과죠. 예술을 즐기다 보면 일을 할 때는 확실하게 집중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번 공연 또한 직원들이 전통음악을 스스로 즐기고 익혀 대형 공연까지 참여하며 농도 짙은 문화예술 후원이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 크라운해태는 예술이 접목된 ‘아트경영’으로 유명하죠. 창신제 참여뿐 아니라 직원들의 창작시를 모아 시집을 출간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트경영의 성과를 단순 수치로 이야기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크라운해태가 지금껏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엔 예술의 힘이 분명 자리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회사를 다니는 직원들 개개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언젠가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날이 올 텐데 회사에 있을 때 창이라도 한 곡조 배우거나, 악기를 다루거나, 조각을 할 수 있도록 배워둔다면 이후의 삶에서도 큰 보람을 느끼고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무엇보다 현재는 직원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창의적으로 바뀌었고, 행복해하며 이 에너지를 근무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 아트경영에서 특히 중요하게 보는 점은?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 문화예술은 필수불가결합니다. 과자 회사가 과자 가격을 깎으면 일시적으로는 관심을 받을 수 있겠지만, 먼 미래 존속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행복이 중요합니다. 이 행복이 문화예술의 힘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기업은 적정 이익을 내고, 그 일부를 고객의 행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평소 “국악은 한국인의 정서적 DNA에 자리 잡은 민족 고유의 음악”이라며 국악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왔고, ‘국악’의 별칭으로 ‘전통 한국 음악’의 줄임말인 ‘한음(韓音)’을 쓸 정도로 특히 국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데요. 한음의 탄생 배경은?
“개인적으로 우리 국악의 정체성을 보다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국악은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동일하게 국악이라고 부르니까요. 그래서 전문가들을 모아 더 좋은 이름을 찾는 ‘정명 운동’을 전개했는데, 여기서 ‘한악’이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그런데 ‘악(樂)’ 발음이 세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어 결과적으로 ‘음(音)’으로 하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죠. 이를 반영해 ‘영재국악회’도 ‘영재한음회’로 바꾸는 등 점진적으로 크라운해태가 전개하는 국악 행사의 이름을 한음으로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 올해 제12대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을 맡으며 국악에 대한 지원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습니다. 관련해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있나요?
“현재 서양음악 콩쿠르는 많지만, 큰 규모의 국악대회는 없습니다. 이제 미래 국악을 이끌어 나갈 중·고등학생들을 선발하는 국악대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금융권과 증권업계 후원 요청을 하고 있는데요. 대형 은행이나 증권회사가 후원하는 상을 받았다고 하면 젊은 국악 영재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저변도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올해로 어느덧 19회를 맞은 창신제가 오랜 시간 열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크라운해태는 고객에게 과자뿐 아니라 부가적인 서비스를 더 제공하기 위해 창신제를 시작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국악을 접하면서 그 깊은 매력에 빠졌고, ‘예술을 통해 고객을 즐겁게 해보자’는 생각과 맞닿았죠. 음악 분야에서는 국악, 문학 분야에서는 시, 미술 분야에서는 조각을 택해 집중적으로 연계하며 고객을 즐겁게 하는 방안을 고심했습니다.
처음 창신제는 명인, 명창들만 모시고 진행했는데, 이제 우리 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국악은 정말 좋은 음악인데 정작 고객이 즐길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전통음악을 고객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벌써 19회를 맞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정성을 다해 준비한 공연을 많은 고객이 알아봐 주고, 즐기고, 호응해줘 더 감사합니다. 크라운해태제과가 국악 분야에 투자하고, 도왔다기보다 문화예술이 지닌 힘의 덕을 저희가 훨씬 더 크게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창신제를 어떻게 꾸려가고 싶은지, 최종 목표가 궁금합니다.
“한류가 K-팝을 통해 많이 알려지고 있는데요. 그 저변의 핵심에는 우리 국악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많은 세계인이 우리 국악을 즐기는 것이 목표입니다. 창신제를 비롯해 다양한 국악공연을 통해 K-컬쳐의 핵심인 전통음악 한음을 더 널리 알려 나가고 싶습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