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소녀가 해리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세계 최고의 쇼, 움직이는 대극장의 크리스마스 쇼를 보고 싶어요.” 해리는 소녀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열기구를 만들었고, 소녀와 함께 세계 곳곳의 대극장을 찾기 위해 몸을 실었다. 이 열기구는 현재 현대백화점에 착륙했다.
현대백화점이 연말을 앞두고 서커스 마을로 변신했다. 소녀와 해리가 환상적인 대극장을 찾아 떠나는 동화를 현실에 구현한 것. 해리(Harry)는 아기곰 캐릭터로, 현대백화점이 지향하는 가치인 행복(Happy)에서 이름을 따왔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연말 ‘해리의 꿈의 상점’이라는 테마 아래 유럽 작은 공방들이 모여 있는 이국적인 골목길을 재현한 바 있다. 올해의 주요 테마는 ‘환상적인 서커스’로, 더현대 서울, 압구정본점, 무역센터점, 판교점 등 전국 15개 점포와 커넥트현대 부산에서 크리스마스 테마 연출을 선보인다.
이중 더현대 서울 현장을 찾았다. 더현대 서울 5층 ‘사운즈 포레스트’엔 형형색색의 에어벌룬과 서커스 텐트가 늘어섰다. 입구에 마련된 티켓 부스와 화려한 벨벳 커튼은 마치 환상 속 서커스장에 입장하는 듯한 느낌을 줬다.
각 극장의 풍경도 다채로웠다. 티켓 부스를 거쳐 입구에 들어서면 ‘마술극장’, ‘묘기극장’, ‘음악극장’을 차례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마술극장과 묘기극장, 음악극장에서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음악에 맞춰 동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동선 마지막에는 이번 테마의 하이라이트인 대극장이 등장, 360도 회전하는 8m 높이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현대백화점 15개점을 상징하는 15개의 캐릭터들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연출을 총괄한 정민규 현대백화점 VMD(Visual MerchanDiser)는 “현대백화점이 지향하는 행복, 사랑, 희망, 평화를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뒀다”며 “매년 크리스마스 테마를 꾸려 왔는데, 올해엔 해리가 찾아가는 서커스를 통해 마치 동화 속 세상에 들어간 듯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어 “X세대에겐 서커스에 대한 기억, 요즘 MZ세대에겐 흥미로운 콘텐츠로 다가가는 지점도 있다”고 부연했다.
연출에서 특히 신경을 많이 쓴 요소는 ‘에어벌룬’과 ‘대극장’이다. 해리가 몸을 실은 열기구를 형상화하기 위해 사운즈 포레스트 천장에 높이 7m, 너비 5m 정도의 열기구 모형 에어벌룬을 띄웠다. 이는 세계 6대륙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
정민규 VMD는 “파란색 벌룬 3개는 서로 붙어있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빨간색 벌룬 2개는 남·북아메리카를, 초록색 벌룬은 오세아니아를 형상화했다”며 “전쟁 등 분열과 갈등이 고조되는 세계 곳곳에 평화, 희망, 사랑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번 테마의 하이라이트인 대극장은 지름과 높이가 각각 12m에 달할 정도로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시대 배경은 18세기 유럽으로, 당시(1730~1760년) 유행했던 예술 양식인 로코코·바로크를 구현했다. 여기에 조개껍질, 꽃, 포도나무 덩굴 등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장식들을 아울렀다.
장식적인 부분뿐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도 신경 썼다. 특히 코끼리가 공위에 올라가는 등 가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을 모두 없앴다. 정민규 VMD는 “가학적으로 보일 수 있는 위험한 곡예 연출은 배재했다”며 “대신 즐겁게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자유롭고 때로는 익살스런 모습의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측면도 고려했다. 정민규 VMD는 “현대백화점은 크리스마스 연출 때 최대한 있는 재료를 재활용하고 있다. 올해 또한 백화점 내부에 갖추고 있던 테이블 등 여러 소품 등을 새롭게 연출하며 재활용했다”며 “일회성으로 쓰고 버려 쓰레기가 많이 배출되지 않도록 항상 재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더현대 서울 이외에 다른 점포들도 동일한 콘셉트를 적용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이어간다. 1일 압구정본점은 각 층마다 360도 방향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오르골 타입의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조형물)를 배치했고, 무역센터점은 건물 앞에 대형 서커스 텐트와 회전 트리를 설치해 고급스러운 서커스 마을 분위기를 연출 중이다.
판교점은 11일부터 1층과 5층 사이 뚫린 수직 공간(보이드)에 소형 열기구 모형 에어벌룬을 띄웠고, 5층 패밀리가든엔 크리스마스 대극장을 선보이고 있다. 커넥트현대 부산도 1층에 디자이너 하이메아욘의 예술 작품 ‘더비저너리’에 산타 복장을 입혀 내부를 화사하게 장식했다.
현대백화점이 자체 개발한 ‘2024 크리스마스 에디션’ PB(자체 브랜드) 상품들도 대폭 확대한다. 지난해 주요 5개점에서 선보였던 크리스마스 팝업스토어 해리 상점은 올해엔 백화점 14개점과 커넥트현대 부산 등 총 15곳에서 운영한다. 지난해 인기를 얻으며 완판된 바 있는 현대백화점 시그니처 상품, 해리 곰인형과 키링 등 PB 상품 판매 물량도 3배 이상 확대했다.
“수작업이 주는 세밀함의 아름다움이 차별점”
현대백화점뿐 아니라 롯데, 신세계백화점도 매년 연말 백화점 각 점포들을 환상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연출하며 이른바 ‘크리스마스 대전’이 펼쳐진다. 대결은 크리스마스가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다. 현대백화점 또한 지난해 크리스마스가 끝나자마자 테마 구상 및 현장 조사 등을 시작해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내놓았다.
정민규 VMD는 타백화점과의 크리스마스 연출 차별점을 “수작업이 주는 세밀함의 아름다움”이라 짚었다. 그는 “화려한 LED 영상 등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올해 현대백화점은 송지혜 작가와 협업해 하나하나 세밀하게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서커스 극장의 외형 및 커튼 등 장식은 송 작가의 그림을 3D로 제작한 나무판, 페브릭을 활용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영상으로 나왔다 금방 사라지는 게 아닌, 최대한 만지고 경험하고 느끼고 음악을 들으며 오감을 만족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연말엔 각 백화점마다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연출이 나오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 백화점이 같은 주제로 진행해 봐도 흥미로울 것 같다”며 “같은 주제라도 각 백화점마다의 특성으로 색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그간 현대백화점 크리스마스 연출 현장을 찾았던 사람들은 다양한 피드백을 전했는데, 이중 가족 단위 방문객이 “또 오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을 때 유독 뿌듯했다고 한다. 정민규 VMD는 “콘텐츠가 다양하고, 갈 곳이 많은 가운데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장소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사람들이 다시금 방문하고 싶은 멋진 크리스마스 연출을 꾸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백화점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안전을 고려해 사전 예약을 진행하는데, 지난해 더현대 서울이 선보인 크리스마스 테마 마을 ‘H빌리지’는 1차 네이버 사전 예약 오픈 당시 동시 접속자가 2만여 명이 몰려 1시간 내 마감했고, 현장 웨이팅 대기번호도 800번 대를 넘어섰다. 주중 방문객은 5000여 명, 주말은 1만여 명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또한 방문객의 발걸음이 몰리고 있다. 올해 1차 사전 예약은 지난해보다 많은 3만 명이 몰리면서 14분 만에 끝이 났다. 이어 진행한 2차 사전 예약도 동시 접속자가 4만 명이 몰리며 8분 만에 접수가 완료됐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