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25.04.11 09:37:30
서울옥션이 오는 22일 ‘제183회 미술품 경매’를 연다고 11일 밝혔다.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서울옥션은 일제의 조선침탈과 패망,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빛났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와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 밖에도 국내외 주요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및 럭셔리 품목이 다채롭게 출품된다. 출품작은 총 132랏(Lot), 낮은 추정가 총액 약 110억원이다.
제183회 미술품 경매에는 불교를 통해 조선의 정신을 일깨우려 한 종교인이자 문학을 통해 조국 독립의 염원을 노래한 시인, 만해 한용운의 ‘심우송’ 병풍이 출품된다. 이 병풍은 만해 노년의 전형적인 서풍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의 필적 가운데 보기 드문 10폭 대작이다. 보존 상태도 양호해 서울특별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다.
칠언절구 10수의 ‘심우송(尋牛頌)’은 불도의 수행경로를 동자승이 잃어버린 소를 찾는 여정에 비유한다. 작품에서 소를 찾아 헤맨 끝에 마침내 소를 발견한 동자승은 이내 소와 자신의 구분을 잊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고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다시 속세로 돌아와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보살행을 실천한다. 만해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불도의 수행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특정한 방편이나 대상에 얽매이기보다 그것에 대한 집착을 인지하고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를 전한다. 즉,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는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나라 잃었음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마음을 선뜻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독립을 열망하는 행위가 곧 자유와 해탈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실천에 대한 용기를 주고자 하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소를 찾다’는 의미의 심우(尋牛)는 만해가 임종할 때까지 거주했던 성북동 거처의 이름을 심우장(尋牛莊)이라고 할 정도로 주목한 말인 만큼, 출품작은 그의 종교적 성찰과 조국에 대한 염원이 하나로 결집된 상징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지금까지 대중에 공개된 적 없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녹죽(緑竹)’이 경매에 오른다. ‘푸른 대나무’를 뜻하는 녹죽은 1910년 2월 사형 집행을 앞둔 안중근 의사의 변함없는 지조와 절개를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인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정음사 초판본도 출품된다. 윤동주는 광복을 불과 반 년 앞두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올해는 그의 서거 80주기이기도 하다.
일제침탈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자료 또한 눈길을 끈다. ‘조일수호조규 관련 외교문서 일괄’은 흔히 ‘강화도조약’이라고 알려져 있는 조일수호조규의 부록과 무역규칙 체결 과정에서 양국 관리들이 필담을 통해 주고받은 실무적 대화와 조율의 과정 등을 담은 문서다. 출품작은 국내 한 컬렉터가 해외에서 구입한 작품으로 환수의 의미를 갖는다.
함께 출품된 ‘극동국제군사재판 속기록 349권 일괄’은 일제 패망 이후 도쿄에서 열린 전범재판 내용을 담은 속기록이다. 일부 소실된 부분이 있으나 극동국제군사재판 속기록이 출품작과 같이 대량으로 전해지는 사례가 알려진 바 없으며, 국회도서관에 1962년 발행된 재판본만이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또한 재판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제1회-제6회의 원형 속기록이 새롭게 발견돼 자료적인 가치를 더한다.
국내외 근현대미술 주요작가의 작품도 소개된다. 이번 경매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 이배의 작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작가의 대표작인 ‘Issu du Feu’(불로부터)는 세로 2미터가 넘는 크기의 대작이 출품되며 숯 덩어리들이 이어진 형태의 브론즈 조각이 새 주인을 찾는다. 박수근의 ‘목련’은 작가 사후 마련된 유작전에 전시된 작품 중 하나다. 작가 고유의 우둘투둘한 재질감을 느낄 수 있다.
야요이 쿠사마의 2018년 작 ‘Infinity Nets (LFVUK)’는 노랑색의 배경에 붉은 선들로 가득 채워져 강렬한 색채의 조합을 보여준다. 60호 크기의 화폭에서 섬세하고 조밀한 선으로 이뤄진 망은 작가가 느낀 무한함과 초월이라는 감각을 작가 고유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럭셔리 섹션에서는 벨기에 명품 브랜드 델보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아티스트 콜라보 시리즈 핸드백이 경매에 오른다. 아울러 꽃봉오리 형태의 섬세한 골드 조각에 다이아몬드 장식이 세팅되어 있는 화려한 티파니 앤 코 브로치도 이번 경매를 통해 새주인을 찾는다.
한편 이번 경매는 오후 4시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다. 경매에 앞서 진행되는 프리뷰 전시는 12일부터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진행된다. 전시는 경매 당일인 22일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며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린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