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험금 청구과정에서 소비자가 손해사정사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 선임권’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보험사의 동의와 지급 구조에 대한 개입을 허용하는 규정으로 인해 소비자 선임권이 현장에서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리는 있으나 활용은 ‘제한적’…소비자 선임권 실효성 우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손해사정은 사고 사실과 손해액을 조사해 보험금 지급 여부와 금액을 정하는 절차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정을 위해 전문가가 수행하도록 마련된 제도다. 보험금 청구가 접수되면 손해사정 대상에 해당하는 보험은 손해사정 절차에 들어가며, 이 과정에서 보험계약자는 손해사정사를 직접 선임할 수 있다.
법적으로는 보험사와 소비자 모두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지만, 소비자가 개인 비용으로 손해사정사를 고용할 경우, 조사 결과가 보험금 심사 과정에서 참고 의견으로만 반영되기 쉬워 비용을 들여도 보험금 지급 결정에 영향이 제한될 수 있다.
소비자선임권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험사가 손해사정 비용을 부담하고, 소비자가 선임한 손해사정사가 공식 절차에 참여하도록 한 제도다. 소비자는 비용 걱정 없이 직접 손해사정사를 선택해 보험금 산정 과정에 참여시킬 수 있어 공정성과 소비자 권리 보호 측면에서 유리하는 평가다.
그러나 소비자가 손해사정 과정에서 이 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소비자 선임권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해 권리 행사가 제한되고, 이로 인해 보험사가 고용하거나 위탁한 손해사정사에 의해 조사와 판단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일부 보험사는 알림톡 등을 통해 소비자 선임권을 고지하고 있지만, 관련 정보가 화면 하단의 별도 링크를 통해 안내되고 있어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수·선임 결정 모두 보험사 몫…손해사정 독립성 논란
소비자가 직접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더라도 독립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보험금 판단의 공정성을 기대하고 전문가를 선택했음에도, 보험사 중심 구조에서는 판단 과정이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실질적인 권리 보호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우려다.
보험업법은 손해사정사가 보험사 또는 보험계약자 한쪽에 유리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보험협회 모범규준은 보험사가 보수 산정과 지급 권한을 가지며 경고 이력이나 자료 미제출 등을 이유로 선임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독립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소비자가 공정한 조사와 판단을 기대하며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더라도, 손해사정사는 보험금 지급 여부와 규모를 최종 결정하는 보험사의 입장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기대한 수준의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부지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비자 권익 강화를 위해 소비자 선임권이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보험사와 금융당국이 적극적 홍보·안내를 통해 제도 인지도를 높이고, 실무 기준인 모범규준을 개선해 권리가 형식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부지급률과 신속지급 비율 등 보험금 지급 지표를 공시해 투명성을 높이며, 독립손해사정사 선임 안내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며, “약관 기준이 명확한 건은 이견 없이 신속히 지급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이 소액 청구라 손해사정사 선임 비중도 크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문화경제 한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