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구⁄ 2022.11.10 16:15:23
장난감 같은데 장난감이 아니다. 어린이보다 어른이 더 열광한다. 이른바 ‘굿즈(goods)’다. 굿즈시대다. 반응이 뜨거우니 기업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한 번 더 보고 만져보게 하려고, 더 좋아하라고. 어쨌든 소비자와 기업 모두 만족하니 더 없이 굿(good)이다.
얄밉게도 한정판이 많다. 그걸 노렸을 수도 있다. 더 애타고 더 갖고 싶게 말이다. 안달 나게 만드니 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굿즈시장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키덜트’(kid+adult) 시장과 연결 짓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 장난감은 아이들의 그것과 비교 안 될 정도로 비싸다. 그래도 인기제품은 나오는 족족 매진이다. 헐리우드나 애니메이션의 유명 캐릭터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피규어가 적지 않다. 그래도 판매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솔드아웃(sold out)’이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곳곳에 박혀있다.
주류제조·수입회사의 굿즈는 이를 전문적으로 사들이는 사람이 많다. 이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도 활발하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나눔 활동도 한다. 꽤 인기인 하이트진로의 오프라인 상점 ‘두껍상회’나 오비맥주의 공식 온라인 굿즈몰 ‘치얼스앤굿즈’에는 연일 이들로 북적인다. 새로운 굿즈라도 나오면 이를 선점하기 위한 각축전이 땀 냄새 날 정도로 펼쳐진다.
병따개가 대세? 캘린더, 폴딩카트도 있다!
앞서 말했듯 하이트진로 두껍상회의 인기가 대단하다. 신제품이 하나라도 출시되면 각 지점은 문을 열기도 전 대기 인원들과 눈인사를 할 정도다. 히트제품도 많다. 그중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게 ‘스푸너’다. 병따개 역할을 하는 스푼인데, 말 그대로 스푼과 오프너를 합친 단어다. 음식점에서 숟가락으로 병뚜껑을 따는 모습에 착안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6~8월 ‘청정라거-테라’의 유흥채널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증가했다. 당시 회사 측은 “소비자 접점의 마케팅 활동과 각종 지역 축제의 부활이 테라 판매를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힘입어 9월까지의 유흥시장 누적판매량도 약 33% 증가했다.
주목할 건 ‘소비자 접점의 마케팅 활동’이다. 엔데믹(풍토병화)을 맞아 바깥에서의 술자리가 늘어나자, 하이트진로는 그 자리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스푸너나 ‘테라 타워’(소맥제조기) 같은 굿즈를 침투시켰다. 기존 굿즈가 ‘소장각’이었다면 이젠 그것에 재미까지 덧입힌 것이다.
하이트진로는 테라의 브랜드 선호도 강화를 위해 제품 본질에 더욱 집중함과 동시에 독창적인 술자리 굿즈를 더 개발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와 경계를 두지 않고 이종(異種) 간 컬래버레이션도 계속 시도하면서 다양한 재미와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오비맥주라고 가만있을 리 없다. 지난여름 맥주병 오프너에 재미요소와 자석을 접목한 ‘싹스핀 오프너’를 개발했다. ‘카스’ 병맥주 미니어처 모양이며, 바닥 면엔 병따개, 라벨 뒷면엔 자석이 붙어있다. 실제 병맥주 뚜껑에 자석 면을 가져다 대고 빙글빙글 돌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술자리 게임에서 누군가를 지정해야 할 때 이용하면 좋다.
실용적인 굿즈도 선보였다. 그중 MZ세대 직장인을 응원하고자 만든 ‘굿잡 해피니스 캘린더’가 돋보인다. 일상 속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림들로 MZ세대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25일’과 협업했다.
모두 34장인 이 캘린더는 다양한 직장생활 짤(일러스트 이미지) 30가지로 구성한 일력이다. 오비맥주 발포주 ‘필굿’의 고래 캐릭터(필구·칠구·텐구)를 ‘칼퇴’, ‘월급날’, ‘플렉스’ 등의 공감 소재를 활용해 유쾌하게 담아냈다.
사무실에서 활용하기 좋은 ‘휴가 중’, ‘부재중’ 같은 알림 페이지와 함께 ‘나의 행복 리스트’나 ‘행복을 위한 목표달성 기록장’ 용도의 메모장 등으로 구성됐다. 캘린더를 예쁘게 꾸밀 수 있는 캐릭터 스티커도 함께 포함돼있다. 모든 짤은 필굿 공식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사전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긴 사연 공모 이벤트를 벌였고, 그 가운데 선정된 사연을 바탕으로 굿잡 해피니스 캘린더를 출시했다”고 말했다.
‘칭따오’를 수입·유통하는 ㈜비어케이는 지난여름 ‘칭따오 라거 폴딩카트 패키지’를 출시했다. 칭따오의 시그니처 컬러인 그린과 레드를 입힌 폴딩카트에 라거 캔맥주(500㎖) 8개로 구성했다.
45L 대용량 크기로, 넉넉한 수납력 덕에 피크닉이나 캠핑은 물론 일상에서 장바구니로도 사용할 수 있다. 최대 25㎏까지 물건을 넣을 수 있고, 사용하지 않을 땐 접어서 보관하면 된다. 칭따오의 대표 캐릭터 ‘따오’와 올해 캠페인 슬로건인 ‘오, 마이 펀(Oh, my fun)!’ 스티커가 포함돼있다.
비어케이는 이외에도 광고모델 신동엽의 목소리가 나오는 병따개나 쿨러백, 캠핑 머그컵, 튜브 버킷 등 여러 굿즈를 선보이고 있다.
비어케이 관계자는 “칭따오와 함께하는 순간에 소비자가 늘 ‘오, 마이 펀!’을 외치도록 재미는 물론 실용적인 마케팅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막걸리업계는 파전 우산, 십장생 화투 등으로 공략
전통주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막걸리 외 다른 부가상품엔 관심 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과 달리 의외로 굿즈 생산에 열심이다. 최근 들어 MZ세대가 막걸리 등 전통주에 관심을 쏟으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자연스럽게 품목도 MZ세대에 맞춘 제품이 상당수다. ‘과한 아이템’이어도 마음에 들면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 젊은 층이기에 그렇다.
국순당은 지난해 여름 진행한 ‘국순당 생막걸리’의 리뉴얼 효과로 1년 만에 판매량이 90% 넘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이 같은 인기 이유로 MZ세대를 들었다. 젊은 층이 매출에 많은 도움이 됐다는 해석이다.
그와 때를 같이해 국순당은 지난 6월 2일 와디즈 펀딩을 통해 파전 우산 3종을 출시했다. 파전 우산, 김치전 우산, 애호박전 우산 등 모두 세 가지 모양으로 선보였다. 국순당 생막걸리 리뉴얼 1주년을 기념하고 장마철을 앞두고 있어 기획한 것인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비 오는 날 쓰기만 해도 막걸리 한잔이 떠오르게 하는 이 우산은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국순당 관계자는 “생막걸리 리뉴얼 당시 국순당 인스타그램 고객 증정용으로 적은 양을 제작한 건데, 곧바로 인기를 끌면서 판매요청이 쇄도했다”고 말했다.
서울장수는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와 함께 뉴트로 감성을 담은 굿즈 네 가지를 선보였다. 2020년 11월 출시 제품들이지만, 아직도 굿즈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10일 유통 장수 생고집’의 줄임말인 ‘십장생’을 모티브로, 젊은 층에게 브랜드 체험기회를 제공해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기획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과일청으로 막걸리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 ‘막걸리 슬러시 메이커’, 쌀 포대를 재활용한 ‘쌀 포대 에코백’, 십장생 콘셉트를 담은 ‘십장생 화투’, 그리고 최적의 ‘막사’(막걸리+사이다) 조합을 만들어내는 ‘막걸리 2통 사이다 1병’에서 이름을 딴 ‘이통일반 유리컵’으로 구성했다.
지난해에는 쌀 베이스 화장품인 ‘십장생 올인원 컬렉션’도 내놨다. 클렌저와 샴푸 등으로 구성했는데, 쌀을 주원료로 하는 막걸리에서 착안해 쌀 추출물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 선(線)을 활용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십장생 디자인을 높이 평가받아 ‘2021 굿디자인 어워드’에서 굿디자인 상품으로도 선정됐다.
올 한해 최고 유행 아이템이었던 박재범의 ‘원소주’는 20여 가지의 굿즈를 선보였다. 티셔츠나 모자는 물론 볼캡, 키링, 골프공, 피크닉매트, 슬리퍼, 비닐우산 등 무척 다양하다. 지난 5월 말에서 6월 초 부산에 마련한 팝업스토어는 연일 북새통을 이뤘다. 한정판 굿즈들은 눈 깜짝할 새 완판됐고, 이들은 리셀시장에서 두세 배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굿즈도 진화한다. 1990년대나 2000년대에는 대개 소소한 생활용품이 주를 이뤘다. 라이터, 손수건, 모자, 재떨이, 장난감…, 주류업체별로 브랜드만 다를 뿐이지 품목은 뻔했다. 사은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것에 재미와 활용성을 더해 하나의 ‘상품’이 됐다. ‘공짜로 받는 사은품’이 아닌 ‘돈을 주고 사는 상품’이 돼버렸다. 초인기 품목은 판매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1분 만에 완판되는 현실이다. 왜? 갖고 싶으니까.
어쩌면 고육지책일 수 있다. 이제 주류만으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꾸준히 연계상품을 만드는 이유다. 소비자의 입도 그렇지만 눈도 중요한 시대가 됐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