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3기 연임에 성공해 앞으로 상당 기간 중국을 통치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윤석열 대통령은 못하고, 기시다 일본의 총리만 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15~1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곧바로 이어 태국 방콕에서 18~19일 열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준비 자세에 묘한 엇갈림이 일어나고 있어 우려하는 시선으로 한국과 중국의 만남을 바라보게 된다.
지난 11일부터 시작된 동남아시아에서의 대형 정상외교 무대는 앞으로 19일까지 이어지지만, 윤 대통령의 참석 일정은 11~15일로 끝난다. 반면 기시다 총리는 12~19일까지 계속 현지에 머무른다. 시진핑은 15~19일 일정이다.
윤 대통령과 시진핑이 한중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시간은 15일 단 하루밖에 없는 반면, 기시다는 15~19일 닷새나 여유가 있다.
이런 스케줄 때문인지 일본 국영 NHK 방송은 지난 11일 “일중 정상회담을 태국 APEC 회의서 개최하는 것으로 최종 조율 중”이라고 보도했다.
NHK는 “기시다 총리가 회담에서 시 주석에게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문제와 대만 정세 등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주장하며 대국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하는 것과 동시에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서 협력할 용의가 있다는 생각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일본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쌍방의 노력으로 구축해 나갈 방침을 확인하고자 한다”고 보도했다.
따질 건 따지되, 협력할 건 협력한다는 얘기다. 그간 미국과 손잡고 ‘중국 때리기’를 열심히 해온 일본인지라 ‘협력할 분야에선 협력한다’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한국인들은 조금 놀라게 된다. ‘친하면 친하고, 안 친하면 안 친한다’는 흑백논리에 강한 한국인 입장에서는 때리다가 다시 미소를 짓는 일본의 태도가 영 마뜩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성국일수록 만나서 대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오늘 시진핑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잘 말해줬다. 바이든은 지난 일요일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과 나는 항상 솔직한 논의를 해왔다”며 그러한 대화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의도를 “오산하는 것을 막았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이어 “나는 그를 잘 알고, 그는 나를 안다”며 “우리는 앞으로 2년 동안 빨간 선(넘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디에 있고 우리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합니다”고 말했다.
빨간 선을 넘으면 전쟁이고, 각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대화로 알아내고 이해시킬 수 있어야 빨간 선을 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기회에 시진핑을 꼭 만나야 한다’고 재촉하는 것은 일본의 정치계와 언론도 마찬가지다.
일본 매체 ‘FNN 프라임’은 지난 12일 “기시다 총리 주변에선 이번 순방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 그리고 중국과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말한다. 이번에 성사되면 큰일이 되는 것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중일 정상회담이다. 이례적인 3기째에 접어들어 권력 기반을 굳힌 시 주석에게 ‘안정적인 중일 관계’의 구축을 호소하고 싶은 생각이지만, 수상 주변은 ‘회담을 실시할 것인지 중국은 아슬아슬하게 일본의 움직임을 판별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라고 보도했다.
일본 측이 시 주석과의 회담을 강력하게 원하지만 중국 측이 아슬아슬하게 굴고 있다는 보도 내용이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2일 프놈펜 현지에서의 기자 브리핑에서 한중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대해 “계속 지켜봐 주셔야 될 것 같다”고만 대답했다. 한중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중국 외교부 역시 “지켜봐 달라” 멘트만 하고 있다.
요즘 한미일 동맹이라는 말이 부쩍 많이 쓰인다. 경제를 안보에 종속시키는 경제안보 관념이 새로운 트렌드란다. 한미일 동맹이란 게 북쪽의 북중러 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란다. 그런데 그 한미일 동맹에서 한국만 쏙 빠지고 미국과 일본의 지도자는 시진핑과의 만남을 단단히 준비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함께 프놈펜의 아세안 정상 회의에 참석한 리커창 중국 총리는 "대외 개방은 중국의 기본 정책"이라며 "호혜 상생의 개방 전략을 확고히 시행하고 경제 글로벌화의 정확한 방향을 견지하며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와 편리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대외적으로 개방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개방의 문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며 "중국의 높은 수준의 개방은 세계 각국에 새롭고 더 큰 발전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진핑 3기의 본격 출발과 더불어 내년 3~4월부터 중국이 경제 살리기에 대거 나설 것이라는 예상과 부합되는 발언이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데는 정상 간의 개인적 친밀도와 솔직한 대화가 중요하다.
경제적 의존도에서 본다면 한국이 가장 치명적인 연관을 중국과 맺고 있는데, 한국에선 대통령도, 언론도, 정치계도 “시진핑과 만나야 한다”고 주문하지 않는 반면, 미국 대통령은 “내가 꼭 만나야 한다”고 나서고 있고, 일본에선 앞에서 본 것처럼 총리 주변과 언론이 나서며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등을 떠밀고 있다. 한국의 고질병인 ‘뒤처지는 버릇’이 또 본격 발휘 중인가? 이러다가 경제가 덜커덩 내려앉는다면 그땐 또 누굴 원망하며 외양간 고치기를 할 작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