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구⁄ 2023.04.27 16:30:00
5월이면 여름권(圈)이다. 옷은 가벼워지고 야외 활동이 많아진다. 맥주 한입 간절해진다.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올해는 맥주 전쟁이 좀 일찍 찾아온 모양새다. 엔데믹 상황에 방역수칙은 최대한 완화됐고 혼술·홈술 시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어, 마음 바빠진 맥주회사들이 여름 준비를 서두르고 있어서다.
반면, 소비자들은 즐겁다. 맥주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제품과 홍보 수준은 높아지고 선택권 역시 넓어진다. 거기에 재밌는 마케팅이나 볼거리도 뒤따르니 재미없으려야 없을 수 없다.
해마다 여름은 그랬다. 늘 치열했고 맛있었다. 올해도 그럴 것이다. 애주가들에게 여름이 반가운 이유다.
올해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움직임이 확연히 다르다. 여름 시즌을 준비하는 지금, 오비맥주는 차분하고 하이트진로는 잔뜩 달아올라 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차분한 오비맥주… ‘한맥’으로 부드러움 강조
오비맥주는 올여름을 차분하게 맞고 있다. 그 중심엔 ‘한맥’과 ‘카스’가 있다.
오비맥주는 지난달 27일 한층 업그레이드된 한맥을 새롭게 선보였다. 최초 출시는 2021년 3월이다. 이 회사는 한맥의 업그레이드를 준비하며 어떤 점에 주목했을까. 바로 ‘부드러움’이다. 그것도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부드러운 라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슬로건도 ‘대한민국을 더 부드럽게’다.
오비맥주 서혜연 마케팅 부사장은 “소비자들에게 부드러운 순간을 선사하고 싶어 한맥의 패키지와 거품에 주안점을 둔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면서, “더 부드러워진 목 넘김과 한국적인 미를 강조한 디자인으로 ‘대한민국을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K-라거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서 부사장 말대로 제품 디자인에는 부드러운 한국색이 가득하다. 병과 캔 상단은 흰색 띠로 둘러쌌는데, 한맥의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을 표현한 것이다. 중앙의 엠블럼은 한옥 창문에 많이 사용하는 전통문양인 ‘기하문’에서 착안했다. 이는 한맥이 앞으로 열어갈 ‘부드러운 세계’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창문을 상징한다.
배경의 곡선 패턴도 눈에 잘 띈다. 특히, 서예체로 쓴 금색 ‘한맥’ 로고는 대한민국 대표 라거라는 장인정신이 느껴지도록 만든 것이다. 재밌는 건,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으로도 부드러움을 느끼게끔 캔 재질을 매트한 소재로 변경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맥 디자인의 처음과 끝은 모두 ‘대한민국’에 집중돼있다. ‘하드웨어’가 이렇다면 ‘소프트웨어’는? 바로 부드러움이다. 부드러운 거품, 부드러운 목 넘김, 부드러운 라거… 한결같은 부드러움이다.
오비맥주는 소비자들이 맥주 거품을 오래 느끼도록 지속력을 대폭 향상했다. 4단계에 이르는 미세 여과 과정으로 부드러움을 방해하는 요소를 걷어냈고, 이로써 부드러운 목 넘김을 극대화했다는 설명이다.
말로만 부드럽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소비자가 직접 느끼도록 체험형 ‘장치’도 마련했다. 부드러움에 한해선 그만큼 자신 있다는 제스처다.
지속력이 강화된 거품을 시각, 후각, 미각 모두 음미하도록 ‘스무스 헤드 리추얼’이라는 한맥만의 특별한 음용 방식을 만들었다. 이 방법은 거품을 더욱 봉긋하고 지속하게 해 한맥을 좀 더 부드럽게 마시도록 해준다. 한맥 전용 잔도 준비했다. ‘거품으로 한 번, 목 넘김으로 또 한 번’ 등 두 번의 부드러움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시각부터 부드러움을 느끼게 한다.
한맥의 부드러움은 새 광고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캐치프레이즈 역시 ‘부드럽게 부드럽게 달라지다’다. 이 영상은 ‘빨리빨리’ 그리고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일상에서 놓치는 부드러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맥의 ‘부드러운 맛’과 ‘부드러운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내 주목받았다.
빠르고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이 한맥을 만나면서 평소 놓치기 쉬운 봄의 풍경이나 밤하늘의 불꽃놀이를 만끽한다. 곧 한맥을 음미하며 부드러운 순간을 되찾은 사람들이 보이고 ‘대한민국을 더 부드럽게’라는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광고 영상은 이렇게 진행된다.
오비맥주는 앞서 이 부드러움을 직장인 회식문화에도 적용했다. 지난해 12월 송년 시즌을 맞아 세계 최대 공유 오피스 업체인 위워크와 협업해 ‘부드러운 송년 회식문화’ 알리기에 나선 것인데, 그러면서 위워크 서울 6개 지점에 ‘부드러운 회식 존’을 마련했다. 이는 일과 시간이어도 직장 동료들과 간단히 맥주 한 잔을 즐기도록 만든 공간이다. 고정관념을 깨부순 유쾌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당장 소문이 나자 메타, 리복, 에이블씨앤씨, 큐피스트 글램 같은 기업들도 사무실 내에 이 회식 존을 설치했다.
오비맥주는 이달 17일 투명 병인 ‘올 뉴 카스’ 출시 2주년을 맞아 소비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헌정 TV 광고 영상을 공개했다. 이 회사는 2021년 기존 유색(有色) 병에서 투명한 병으로 바꾸는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최근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심플함’과 ‘투명성’을 제품 패키지로 표현한 것이다.
광고 영상은 단순하다. 그리고 차분하다. 올 뉴 카스만 보이도록 한 채 “카스가 투명한 이유, 서로에게 투명한 진짜가 되는 시간을 위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지구를 10번 왕복”이라는 내레이션으로 올 뉴 카스의 성공적인 판매 실적을 임팩트 있게 표현한다. 이후 “투명해졌던 모든 분들께 Cheers!(치얼스!)”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마무리한다.
더 이상 심플하고 투명할 수 없다. 소비자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렸다. 최고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도 묻어 있다. 오비맥주가 그토록 차분한 이유는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다.
공격적인 하이트맥주… 신제품 ‘켈리’ 띄우기에 한창
하이트진로는 이달 4일 신제품 라거맥주 ‘켈리(Kelly)’를 출시했다. 2019년 3월 ‘테라’ 출시 후 4년 만이다. 브랜드 이름은 ‘킵 내추얼리(Keep Natually)’를 줄인 단어로,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하고 자연적인 원료·공법·맛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하이트진로는 켈리와 테라라는 쌍두마차로 국내 맥주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참이슬’과 ‘진로’로 국내 소주시장 최고(最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목표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는 켈리 출시를 앞둔 지난달 30일 미디어데이에서 “국내 맥주시장 1위 탈환을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테라가 출시 초기부터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국내 주류업계 판도를 뒤집었지만, 코로나와 세계적인 경기불황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맥주시장 1위 탈환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과 소비자는 항상 변화하고 혁신을 강하게 요구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테라로 다져진 안정적인 위치 대신 과감하고 새롭게 도전하고 변화를 이끌어가는, 쉽지 않은 길을 택하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변화와 혁신을 선택하면 살고, 멈추거나 안주하면 죽는다는 ‘변즉생 정즉사(變卽生 停卽死)’의 각오로 우리만의 길을 개척해나갈 것”이라며 “켈리를 통해 우리의 도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켈리는 ‘라거의 반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기존 라거와는 완전히 다른 원료·공법을 적용했다는 얘기다. 맥주의 기본 원료는 맥아(麥芽). 하이트진로는 켈리만의 맥아를 찾기 위해 전 세계 맥아를 탐색한 끝에 북유럽 덴마크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1년 내내 북대서양 유틀란드(Jütland) 반도의 해풍을 맞으며 자라 잔뜩 부드러운데, 여기에 일반 맥아보다 24시간 더 발아(發芽)시켜 그 부드러움을 배가했다.
숙성 과정도 두 번을 거쳤다. 7℃에서 1차로 숙성한 다음 –1.5℃에서 한 번 더 숙성시켜 강렬한 탄산감을 더했다.
켈리는 ‘궁금증’이 낳은 결과물이다. 처음 ‘라거맥주라면 공존하기 힘든 두 가지 맛, 그러니까 부드러운 맛과 강렬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 머릿속 궁금증은 결국 켈리로 이어졌다. 상반된 두 가지 속성을 하나로 만드는 데는 3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하이트진로는 패키지도 차별화했다. 국내 레귤러 맥주 최초로 앰버(amber) 컬러 병을 적용했다. 병 모양도 제품 속성인 부드러움을 강조하고자 어깨 곡선을 한껏 강조했으며, 병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직선으로는 강렬한 탄산감을 표현했다.
광고모델로는 요새 가장 핫한 배우인 손석구를 내세웠다. ‘반전 라거’라는 콘셉트를 더욱 극대화하고자 한 선택이었다.
지난달 30일 프리 런칭 편을 선보인 데 이어 이달 13일에는 본편을 공개했다. 프리 런칭 편에선 출시 배경과 함께 켈리와 손석구를 보여주며 기대감을 높였고, 본편에선 켈리만의 특장점을 적극 알리며 기존 맥주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내친김에 켈리 전용 팝업스토어인 ‘켈리 라운지(lounge)’도 선보였다. 서울 강남, 부산 서면, 대구 동성로 등 세 곳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 미성년자는 출입할 수 없다. 서울은 강남의 ‘두껍상회’ 건물에 들어섰다. 1층은 켈리 라운지, 2층은 두껍상회로 운영한다.
켈리 라운지의 특징은 MZ세대에 맞춘 점이다. 그런 이유로 단순히 제품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특별한 재미를 안겨주며 신제품을 알린다. 그 같은 전략은 시음존, 게임존, 포토존 등 세 공간으로 나눈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켈리로 브랜딩된 시음존에선 켈리를 마시고 게임존에선 다트, 레트로 게임, 풋볼링, 에어하키 등을 즐긴다. 또 곳곳에 마련된 브랜드 체험형 포토존에선 맘껏 인증샷을 찍을 수도 있다.
하이트진로는 내년에 국내 주류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00주년을 맞는다. 그런 만큼 국내 소주·맥주시장 1위 자리를 모두 차지해, 보란 듯이 ‘100세 하이트진로’를 맞이하고 싶다. 그래서 ‘99세 하이트진로’의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얘기다.
‘클라우드’도 리뉴얼 출시… 승자가 누구든 소비자는 즐거울 뿐
사실, 맥주시장은 조용할 수 없다. 여름이면 더 시끄럽다. 올해는 더욱 시끄러울 전망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국내 맥주 브랜드 시장점유율은 카스가 1위, 테라가 2위다. 여기에 한맥이 부각하면서 켈리가 뛰어들었다. 이쯤 되자 한맥이나 켈리 중 하나가 3위 브랜드로 부상하는 건 아닌지 무척 궁금해진다. 이를 지켜보는 소비자도 손에 땀을 쥘 만한 상황이다.
여기에 롯데칠성음료의 ‘클라우드’는 일대 변혁을 꾀하고 있다. 올 하반기 리뉴얼 제품으로 다시 한번 시장에서 승부를 걸 태세다. 클라우드가 3위 자리를 계속 꿰찰지도 관심사다.
수입맥주 브랜드들도 잔뜩 벼르고 있다. 체코 브랜드 ‘코젤’은 이달 13일 라거맥주 신제품 ‘코젤 화이트’를 선보였다. 한국 시장 진출 10년 만의 일이다. 한국 소비자에게 선택받으면 세계 시장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번 신제품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 출시했다. ‘노 재팬’ 현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일본 브랜드들도 출격을 앞두고 있다. 롯데아사히주류는 캔을 뚜껑째로 열어 맥주잔처럼 마실 수 있는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 제품을 곧 선보이며 예전 영광 찾기에 나선다.
그야말로 전쟁이다. 피만 안 튈 뿐 국내 맥주시장은 살벌한 전쟁터다. 허나, 이 전쟁을 지켜보는 소비자들의 마음은 전혀 무겁지 않다. 기대되기까지 한다. 치열할수록 내 손과 입은 잔뜩 즐거워지니.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