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23.05.02 09:06:59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바나나를 서울대 재학생이 떼어먹은 것을 두고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대 미학과 재학생 A씨는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 방문해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위(WE)’에 전시된 ‘코미디언’ 바나나를 떼어 먹고 껍질을 붙여 놨다. 이 모든 과정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KBS 보도에 따르면 A 씨는 이 과정을 동행한 지인에게 촬영하게 했고, 언론사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해명을 요구하는 리움미술관 관계자에게 “아침을 안 먹고 와서 배가 고파서 먹었다”고 답했고, 30여 분 뒤 리움미술관 측은 다시 새 바나나를 붙여 놓았다. 리움미술관은 2~3일에 한 번씩 해당 작품 바나나를 신선한 것으로 교체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KBS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카텔란의 작품이 어떤 권위에 대한 반항인데, 반항에 대한 또 다른 반항을 해보는 것일 수도 있다. 작품을 훼손한 것도 어떻게 보면 작품이 될 수 있을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며 “장난삼아서 한 번 붙여놓고 나왔다. 사실 먹으라고 붙여놓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평소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개입을 적극 허용해 왔다. 예컨대 노숙자 형상을 한 조각을 위스콘신 대학 캠퍼스에 ‘케네스’라는 이름으로 전시했을 땐 누군가 대학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 팻말을 더해줘 작가도 모르는 사이 투쟁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이 노숙자 조각은 국내 전시에서도 선보였는데, 전시 오픈 초기 누군가가 조각 옆에 바구니를 넣고 가 관람객들이 동전을 넣고 가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현재는 바구니가 치워진 상태다.
이 연장선상에서 이번 해프닝 또한 즐겁게 보고 넘길 수 있다는 의견이다. 리움미술관 또한 이번 일을 돌발적인 해프닝으로 간주하고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KBS 보도에 따르면 카텔란 작가 또한 자신의 바나나 작품이 먹힌 데 대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네티즌은 “오히려 전시가 더 재미있게 됐다”, “작가랑 미술관 측에서 해프닝으로 넘겼는데 크게 문제 삼아도 되진 않을 듯”, “작가는 오히려 재미있어 했을 듯”, “예술은 모두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것”, “어차피 미술관에서 바나나 매번 교체해왔는데 썩기 전에 교체해준 것 아닌가?”, “예술이 보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등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A 씨의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부 네티즌은 A 씨가 행한 행동이 이미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의 전시에서 이뤄졌던 것을 지적하며, 단순히 관심을 받고 싶어 따라 하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 전시 당시 카텔란은 슈퍼마트에서 살 수 있는 흔하디흔한 바나나를 벽에 붙여 놓았는데, 전시 도중 행위 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가 “퍼포먼스의 일환”이라며 갤러리의 동의 없이 바나나를 떼어서 먹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관심이 치솟아 무려 12만 달러(약 1억 5000만 원)에 팔려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아트바젤 측도 새 바나나로 교체한 뒤 별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는 않았다.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서울대 자유게시판에는 “먹으라고 갖다 둔 게 작품의 의도 아니고, 이미 2019년에 다른 나라에서 바나나를 먹어 이슈화가 된 적 있으며 톰브라운 넥타이 매고 저거 먹는 거 손수 영상 찍어 언론사에 스스로 제보까지 한 자의식 과잉에 넌더리가 난다”고 A씨의 행위를 꼬집는 글이 올라왔다.
다른 네티즌 또한 “창조적인 행위도 아니고, 단순 관심 받고 싶어서 한 것 아니냐”, “관종이다”, “저 바나나 작품 보러 간 다른 사람들 생각은 안 하나?”,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채우려는 이기적인 행동” 등의 댓글을 달며 A씨의 행위를 비판했다.
또, “이번 일을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 가면 전시 작품들을 훼손해도 별 문제 없다는 인식이 퍼질까 걱정된다”, “매너 있는 전시 관람 태도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관람에 피해가 되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눈에 띄었다.
한편 A씨의 돌발 행동으로 카텔란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워진 모양새다. 카텔란의 전시는 리움미술관에서 7월 16일까지 이어지는데, 온라인 예약은 오픈 초기부터 현재까지 매진 상태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