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우리 그룹의 변화와 도약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다.”
“주력 사업들이 직면한 엄중한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리더들부터 HD현대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해 그룹의 미래를 준비하자.”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12월 3~4일 울산 HD현대중공업에서 열린 ‘그룹 경영전략 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이 자리에는 HD현대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오일뱅크 등 계열사 사장단과 경영진 32명이 참석했다.
정기선 회장은 이 자리에서 △친환경·디지털·인공지능(AI) 전환 가속화 △핵심사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 △신성장 분야 육성 등을 바탕으로, 향후 5년 내 그룹 매출 100조원 달성을 목표로 한 중장기 성장 비전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HD현대는 먼저 조선 분야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 건설기계 분야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의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나갈 방침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절대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건설기계 사업에서도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본격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최근 부진을 겪고 있는 정유·석유화학 사업은 원가경쟁력 회복을 위한 혁신 활동과 고부가 가치 제품 생산 확대 등으로 수익성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 전력기기 사업은 생산능력 확충으로 글로벌 수요 증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중·저압 차단기 시장에서도 입지를 좀 더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로보틱스, 자율운항, 전기추진, 연료전지,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그룹의 미래 신성장 사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한편, 본격적인 성과 창출을 통해 그룹의 중장기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정기선 회장은 “이번에 제시한 미래 성장 로드맵은 단순한 목표를 넘어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실천 의지”라며 “2026년을 기점으로 전 사업 부문의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해 중장기 성장 목표 달성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그룹 사장단 인사서 회장직 올라
정기선 회장은 지난 10월 17일 단행한 HD현대 사장단 인사에서 회장직에 올랐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MBA를 졸업한 그는, 2009년 현대중공업 기획실 재무팀을 시작으로 HD현대 경영지원실장, HD현대중공업 선박영업 대표,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이사를 차례로 역임했다. 현재는 지주회사인 HD현대와 조선 중간지주회사인 HD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직도 맡고 있다. 이와 함께 HD현대사이트솔루션의 공동대표 직함까지 챙기며 최근 실적이 부진한 건설기계 사업의 위기 극복과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HD현대마린솔루션의 설립을 주도해, 시총 11조원의 그룹 내 주력 사업으로 성장시켰다. 2021년에는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작업을 주도하며 건설기계 사업을 그룹의 핵심사업으로 육성시켰다.
그룹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후에는 그룹 내 주요 현안을 직접 챙겼다. 최근에는 AI, 디지털 혁신, 친환경 원천기술 확보 등 HD현대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고, 특히 조선업 재건 의지가 굳건한 미국과의 협력을 위해 미국 내 주요 인사들과 꾸준히 만나고 있다.
정기선 회장 취임 후 가장 큰 이슈였던 조선 부문 통합은 그의 리더십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합 HD현대重’ 출범 “2035년 매출 37조”
HD현대는 12월 1일 “조선 부문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가 모든 합병 절차를 완료하고 ‘통합 HD현대중공업’으로 새롭게 출범한다”며 “이를 통해 2035년 매출 37조원을 달성, 세계 1위 조선사로서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HD현대는 지난 8월 두 회사의 합병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양적·질적 대형화로 시너지를 극대화해 시장을 확대·다변화하는 동시에 최첨단 기술을 선제 개발함으로써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적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HD현대는 통합 HD현대중공업이 한미(韓美)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와 방산 분야에서 사업경쟁력을 대폭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 HD현대중공업의 함정 건조 기술 노하우에 HD현대미포의 도크와 설비, 인적 역량을 결합해, 2035년까지 방산 부문 매출을 약 10배 늘어난 10조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시장 확대도 기대된다. 통합 HD현대중공업은 최근 북극권 개발로 수요가 커지고 있는 쇄빙선 등 특수목적선 시장에서 양사가 보유한 여러 실적을 통합, 시장 진입 기회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통합 HD현대중공업 출범과 관련, 정기선 회장은 “오늘은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날”이라며 “양사가 가진 기술력과 노하우에 임직원의 열정이 더해진다면 새로운 혁신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해군참모총장·해군성 장관 초청
‘마스가’ 협력을 위한 정기선 회장의 발걸음도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논의하고자 존 필린 미국 해군성 장관과 대릴 커들 미국 해군참모총장을 울산 HD현대중공업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11월 15일에는 대릴 커들 해군참모총장을 울산 HD현대중공업으로 초청, 조선 분야 세계 최고 기술력과 경쟁력을 직접 소개하고, 이어 미 해군 함대의 작전 준비태세 향상을 위한 한미 조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대릴 커들 총장은 이후 정기선 회장의 안내를 받아 상선 건조 현장을 둘러본 후 함정을 건조하는 HD현대중공업 함정·중형선사업부를 방문했다. 이곳에선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최근 진수한 최신예 이지스함 2번함인 ‘다산정약용함’에 직접 승선, 함장으로부터 첨단 전투체계와 작전 운용 능력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이어 내년 진수를 앞둔 이지스 구축함 3번함 건조 현황과 214급 잠수함의 선도함인 ‘손원일함’의 창정비 현장 등 주요 함정들의 생산 라인도 참관했다.
대릴 커들 총장의 방문을 계기로 향후 미국 측과 함정 건조 분야 기술 협력과 공급망 연계 논의가 더욱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기선 회장은 “미국 조선산업의 역량 증대와 미국 해군력 강화에 도움이 되도록 힘을 보탤 것”이라며 “동맹국이자 친구인 한국과 미국의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가 성공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4월에는 존 필린 미국 해군성 장관이 HD현대중공업을 방문해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 1번함인 ‘정조대왕함’에 승선했다.
또 3월에는 정기선 회장이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 있는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해 교수진, 생도들과 미래 해양 분야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등 HD현대와 미 해군의 상호 교류가 다방면에 걸쳐 확대되고 있다.
APEC서 조선업 미래비전·혁신방향 강조
정기선 회장은 HD현대가 10월 27일 경북 경주엑스포대공원에서 개최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 서밋(CEO Summit) ‘퓨처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을 맡아, 혁신 기술을 통한 조선업의 지속 가능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글로벌 협력을 당부했다.
이날 퓨처테크 포럼에는 헌팅턴 잉걸스·안두릴·지멘스 등의 포럼 연사, 조선업계 관계자, 정부·군 관계자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정기선 회장은 “AI는 선박의 지속가능성과 디지털 제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며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산업의 경계를 넘어서는 긴밀한 글로벌 혁신 동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HD현대는 첨단 역량을 바탕으로 미국의 해양 르네상스를 위한 든든한 파트너로 여정에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정기선 회장은 이와 함께 △AI 혁신 기술 △생산성 향상을 위한 스마트 조선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 등 조선업의 미래비전과 혁신 방향도 강조했다.
‘新 안전 비전’ 선포… 근원적 가치 강조
정기선 회장은 HD현대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안전’에도 소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12월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열린 ‘HD현대 세이프티(Safety) 포럼’을 통해서다.
HD현대는 이날 그룹의 새로운 ‘안전 비전’을 선포했다. 이 자리에선 지난 10년간 HD현대의 안전사례들을 되짚어 보고, 앞으로의 안전 비전과 실행 계획을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계열사 경영진과 안전최고담당자(CSO)들이 참석했다. 아울러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김태선 국회의원(울산 동구)을 비롯해 KAIST·중앙대·부산대 관계자 등 60여명이 참석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HD현대는 지난 9월 2030년까지 5년간 총 4조5000억원 규모의 안전 예산 투입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포럼은 그 연장선에서 열린 자리다.
이날 포럼에서 HD현대는 안전 비전인 ‘모두가 안전한 작업장, 안전이 브랜드가 되는 회사’를 공표했다. 이어 ‘시스템’ ‘문화’ ‘기술’ 세 가지 핵심 전략 축을 바탕으로 한 중점 추진 방안을 공개했다.
구체적으로는 위험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조직의 안전 문화 수준을 향상하며, 빅데이터·AI를 활용해 안전 문제를 예측하고 실시간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정기선 회장은 “안전은 사회적 약속이나 규범의 차원이 아닌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필수조건”이라며 “안전 문화를 만들고 안전한 사업장을 구축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을 전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는 이날 선포한 안전 비전과 함께 선진 안전시스템 구축, 안전 시설물 정비·확충 등 지속적인 투자로 사업장 내 중대재해 ‘제로(0)’를 달성하고자 힘쓸 계획이다. 아울러 그룹 비전 내재화를 위한 계열사별 실행 전략을 수립하고, 계열사 간 벤치마킹 교류를 통해 안전수준 상향 평준화를 도모할 예정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