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3·1절을 맞아 특별사면을 검토키로 했다. 특히 이번 3·1절 특별사면에서는 경제인이 대거 포함됐다. 여기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박용성 전 두산그룹회장을 비롯한 경제인에 대한 사면이 이루어진다. 부정부패의 척결을 내세우고 출발한 참여정부는 국민경제를 파탄에 빠트린 사범들을 풀어줌에 따라 참여정부에는 국민 참여는 없는 참여정부로 막을 내리게 됐다. 이와관련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하기 위해 우군 확보차원에서 범법자들을 대거 사면하려는 의혹이 짙다고 보고 있다. 또 개헌에 이어 펼쳐지는 대선행사에서 승리를 위해서라도 기업의 표를 잡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 개헌·대선 위해 사면 필수? 특별사면 대상으로는 경제 5단체가 지난해 말 청와대에 사면을 청원한 김우중·박용성씨를 비롯해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등 분식회계 관련자 51명과 고병우 전 동아건설 회장, 김관수 한화S&C 대표를 비롯한 정치자금법 위반자 8명 등이 거론되고 있다. 즉, 「한국경제號」를 침몰시켜 IMF를 불러온 경제사범들을 대거 사면함에 따라 수조원대의 공적자금이 이제 다시 국민의 혈세로 돌아왔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면대상자는 이건희삼성그룹家 지금 ‘삼성그룹의 편법 상속’ ‘참여연대, 이건희 회장 등 검찰에 고발’ 건등 삼성그룹 관련 사건들도 3·1절 특별사면과 함께 수사가 종결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게 강조했던 부정부패 척결이 공염불이 되는 순간이 바로 대통령의 특별사면·복권이다. 검은돈으로 연결된 재계와 정치권의 비리 커넥션을 적발, 처벌하더라도 결국 사면으로 흐지부지된다. 그동안 실시됐던 그룹 총수 등 주요 경제인 특별사면은 국민들에게 허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역시 돈이 최고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국가경제의 건전성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정치권에 뒷돈을 대준 기업 총수 등이 사면받은 뒤 시간이 흐르면 다시 구태를 반복해 특별사면의 의미가 상당히 왜곡됐다는 지적이다. ■‘잡아넣고 빼주고 핑퐁식이냐’ 시민단체 비난 야당은 이같은 대통령의 사면 복권을 막기위해 법개정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였으나 흐지부지로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여야가 즐기고 있다. 지난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내걸었던 부정부패사범에 대한 사면과 복권을 엄격히 행사하여 법 집행의 실효성을 확보하겠다는 대선공약이 무색해졌다. 지난해 5월 불법대선자금에 연루된 경제인 30명의 석가탄신일 특별사면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비롯해 차떼기와 책떼기 등 신종 수법으로 수백억원의 불법대선자금을 여야에 전달했던 경제인 12명도 포함됐다. 더 나아가 지난 ‘8·15특사’로 최측근인 안희정씨를 풀어주었다. 정부는 이번 사면의 명분을 국민적 합의에 따른 국정 최대의 화두, 경제회생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지난 사면들을 비롯해 이번 특별사면까지 국민적 합의를 거쳐 이뤄졌던 것일까. ■권력형 게이트는 특별사면으로 통한다? 아니면 적어도 특별사면을 통해 국민들이 화합하는 양상이 나타났을까. 이 점에 대해서 각계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특별사면 대부분은 오히려 반국민 정서에 부합했다며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막기 위해서도 사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과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됐던 특별사면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는 살아났을까. 전문가들은 이 점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부정부패사범이 특별사면·복권을 통해 회생하면 부패의 연결고리만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지난 1998년 3월 13일 정부의 특별사면 조치로 공주교도소에서 풀려난 소설가 황석영씨가 기뻐하고 있다. 특별사면조치는 이처럼 양심수와 비전향장시수 등을 사면·복권하는데 긍정적인 면도 있다. 실제로 정경유착 등 권력형 부정부패와 비리는 우리나라에서 끊이지 않았다. 특별사면 조치도 덩달아 계속 돼 왔다. 이에 따른 특별사면의 형평성 시비를 가리는 논란도 마찬가지로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 경제인 특별사면도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주범들이 풀려났다는 점에서 별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은전이 권력형 비리 사범에게 혜택으로 돌아간 것은 노태우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2월 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특별사면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의 잔여 형기를 절반으로 줄여주는 특별감형을 결정했다. 이철희 씨도 이 때 사면돼 서슬 퍼렇던 5공비리의 청산이 화합이라는 명분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문민정부를 표방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3월 당시 건국이래 최대규모의 4만1886명을 대사면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비전향 장기수들의 형집행 정지와 범민련 사건 등 시국사범들을 대거 특별복권하는 인도적 차원의 사면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성탄 대사면에서 김 전 대통령의 야당시절 핵심 측근인 서석재 전 민자당 의원을 사면대상에 올리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또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개천절 특사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등 기업 총수 7명을 특별사면했다. 이들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이었다. 정부의 경제살리기라는 명분을 등에 업고 행해진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3월 특별사면을 통해 개인비리 등으로 구속됐던 장학로 전 청와대 부속실장과 이양호 전 국방장관을 사면했다. 문민정부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552만 여명을 대사면하면서 이들을 슬쩍 끼워넣었다. 이어 8월 건국50주년 기념 광복절 특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한보비리의 핵심 연결 고리였던 권노갑 전 의원과 정재철 전 의원을 사면했다. 12·12, 5·18 사건의 정호용·장세동 씨 등 12명과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안현태·이현우 씨도 특별복권시켰다. 이 때에도 정부의 논리는 국민화합차원이었다. 지난 2003년 노 대통령 역시 광복절 특사로 측근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비서관을 특별사면·복권해 논란을 빚었다. ■ 법관출신 대통령이 법 남용 경제인 사면의 명분은 역시 경제살리기로, 역대 정권이 사면할 때마다 내세운 단골 레퍼토리다. 그러나 사면과 경제살리기에는 별 함수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대선자금 수사 당시 정·재계는 국가경제가 위축된다며 수사 조기종결을 주장했다. 그러나 최단기 경제지표인 주가에 수사가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했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힘을 얻었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경제인 사면이 경제살리기 측면이라기보다는 정권과 재계의 관계 재설정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재계의 협조가 절실한 경우 사면을 통해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경제인의 사면은 추후 그 돈을 받은 정치인의 사면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역대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외쳤던 부패척결의 의지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약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각종 사건 등을 보면 되풀이되는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전·노 전 대통령에게 거액을 건넸던 기업들이 10여년이 지나 재범을 저지르고 있는 것. 삼성그룹은 지난 대선 당시 여야에 무려 400억여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했다. 또한 4년째 계속되고 있는 공적자금 수사에서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은 6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권에서 5500억원을 사기대출 받아 다시 처벌받았다. 김우중씨는 최근 대법원에서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 사상 최대인 23조원대 추징금의 공범으로 지목됐다. 전·노 비자금 사건과 대선자금 수사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재벌 총수의 연루 여부였다. 김영삼 정권 당시 호되게 당한 재벌 총수들은 2002년 대선 때에는 아예 전면에 나서지 않고 구조조정본부장 등 전문경영인 등을 통해 정치권에 불법자금을 전달했다. 그 결과 재벌총수들은 단 한명도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이처럼 특별사면과 사면법에 대해 각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재계의 입장은 이번 사면이 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했다. -김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