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교수’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

오해와 편견으로 발목 잡힌 교수노조 합법화
3년째 잠든 법안, 올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까

  •  

cnbnews 제6호 ⁄ 2007.07.03 13:51:27

‘employee’를 흔히 ‘피고용주’로 직역하는데 교수들 역시 대학에 고용되어 강의와 연구를 대가로 임금을 받는 ‘employee’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employee’를 ‘노동자’로 번역할 경우, 우리사회는 ‘교수들을 어떻게 노동자로 볼 수 있냐’는 강한 정서적 거부감을 드러낸다. 초·중·고 교사는 10년 전, 공무원은 1년 전부터 교원노조법과 공무원노조법으로 적어도 노동조합이 합법화됐지만, 교수들은 여전히 법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는 유일한 집단으로 남아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교수들의 노조활동을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김한성 연세대 법학부 교수(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는 “교수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학습 분위기를 해치고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고 하지만, 이제 교사와 공무원까지 노조가 결성됐기 때문에 합법적인 직종 가운데 법외노조로 남아 있는 것은 교수노조뿐이다”라고 말했다. ■교사·공무원은 ‘합법’, 교수만 ‘불법’인 현실 2001년 11월 결성해 법외노조로 활동하고 있는 전국교수노동조합(교수노조)은 6년째 ‘교수노조 합법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합법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국공립 대학교수들은 ‘국가공무원법 제 66조 1항’과 ‘지방공무원법 58조 1항’에서 “공무원은 노동운동 기타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해 노조활동이 금지되고 있고. 사립대학 교수들은 교원노조법과 사립학교법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와 국제인권기구의 시정권고와 교원과 공무원들의 노동3권 확보를 위한 노력으로 1997년 교원노조법, 2006년 공무원노조법이 특별법으로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은 교원노조법 제2조 ‘교원’의 범위에서도 빠져있고 공무원노조법 6조의 가입대상 공무원 범위에도 제외돼, 노조설립 등 노동운동이 법적으로 금지된 유일한 집단으로 남아 있다. 실제로 전국교수노동조합(교수노조)는 2005년 10월 7일 노동부에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제출했지만, 노동부는 ‘현행 법상 대학교수 노동조합 설립의 근거 규정이 없다’며 교수노조 설립신고서를 돌려보냈다. ■“‘교수님’들이 무슨 노동자냐” 뿌리깊은 오해와 편견 교수노조 합법화에 가장 크게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은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엄숙주의와 우리사회의 정서적 거부감이 가장 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5년 10월 발표한 결정문에서 “대학교수가 학생에 대한 교육 및 강의라는 노무에 종사하고 그 노무제공의 대가로 임금의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고 있는 자”라며 “그러면서도 직무의 특수성을 내세워 노동법상 근로관계 규정의 적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모순적인 논리”라고 지적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소 연구원은 “교수노조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교수들은 엄연히 대학과 고용계약을 맺고 있는 관계”라며 “교수가 무슨 노동자냐 하는 선입견은 전교조가 만들어졌을 때와 비슷한 것으로, 기존의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배규식 연구원은 또, “교수들이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특수성을 이야기하고 소위 잘 나가는 교수들에 대한 인상이 굳어져 있지만 교수사회 내부도 다양하다”며 “매스컴에 자주 눈에 띄는 교수들이 있고 영향력 있는 교수들이지만 지방의 작은 대학의 교수 등 더 많은 교수들이 열악한 현실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어렵게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에 임용됐지만 첫달 월급은 50만원에 불과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2년을 넘게 버텼고 이제는 무슨 일을 해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 재임용에 탈락해 실업자가 된 한 지방대 교수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교수사회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교수와 비정규 교원 문제 박경양 동덕여대 이사는 “현재 국내 대학의 90% 가까이가 사학으로 대학교육의 공공성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며 교수의 신분보장도 불안한 상황이다”며 “교수 재임용과정에서도 교수의 연구역량 등 교수가 갖추어야 할 가장 고려되어야 할 부분보다 외적인 측면들이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박경양 이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사회에서 다양한 자치적인 그룹들이 생겨야한다”면서 “재단에 의해 승진이나 임용에서 불이익을 받는 교수들이 아무리 소수라고 할지라도 교수들이 외적인 상황에 좌우되면 대학의 원래 목표인 자유로운 학문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교수들의 고용불안이 심각한 현실은 최근 도입한 ‘비정년트랙 교원 제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비정년트랙 교원 제도란 ‘정년을 보장하지 않고 승진도 없는 시한부 단기임용제의 형태’로 단기계약이지만 교육인적자원부는 비정년트랙 교원을 전임교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가 200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비정규트랙 교원 제도를 도입한 대학은 국공립 대학 2개와 사립대학 97개 학교로 전체의 49.5%에 달한다. 2004년 불과 전체 대학의 19%인 38개교가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불과 2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비정년트랙 교원들의 처우는 급여와 강의시수, 연구비 지급 등 모든 면에서 정년을 보장하는 교원에 비해 열악하다. 급여는 정년교원과 비교해 평균 76.9%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는 반면 주당 최대 수업시수는 정년 교원의 경우 9시간 보다 많은 11시간의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비정규트랙 교원제도가 도입되고 비전임교원의 채용이 증가하는 원인은 ‘누리사업 및 수도권대학특성화사업’, ‘대학구조개혁지원사업’ 등 교육부가 추진하는 각종 재원지원사업에서 교원확보율이 중요한 사업 참여조건과 평가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 교수협의회가 있잖아? 한편, 교수노조 합법화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교수협의회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 일부 대학에서 교수협의회가 학칙기구로 인정받거나 학교 행정에 일부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임의단체인 교수협의회는 총장이나 재단이 교수협의회를 인정해주지 않거나 권한을 주지 않으면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고, 무엇보다 해당 학교 내 문제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2006년 등록금투쟁 과정에서 교수노조가 제안한 ‘등록금후불제’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한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동덕여대 학생회 불인정 사건이나 고려대 출교사태 등 개별 대학의 학내 문제에도 교수노조는 적극 참여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이렇듯 교수노조 합법화가 이루어질 경우, 개별 학교 차원의 문제를 넘은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또한 교수노조가 합법화할 경우 교육인적자원부를 상대로 대학이나 학문 정책에 대한 교섭을 요청할 수 있다. 교수노조가 법적으로 인정받는다면 학교당국이나 재단이 교수노조의 교섭을 정당한 이유없이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교수노조 합법화는 교수들의 노동조건 향상은 물론 대학의 정책을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의견그룹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노동부 입장은 여전히 ‘국민 정서를 수렴해야 한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김민석 노동부 공공노사관계대책팀장은 “교수들도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교수라는 직군의 특징이 일반 근로자들과 좀 다른 부분은 있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 눈치보는 노동부, “국민여론 수렴해야” 그는 “법적인 가치판단만을 고려한다면 당장 보장해야 하지만 허용시기와 범위 그리고 노동법 개정을 통해 할 것인지 특별법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이면서 특히 “공감대와 국민여론 수렴 절차도 거쳐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민석 팀장은 “국공립 대학교수들의 임금이 국민들의 세금과 연결되기 때문에 일반 근로자와 다른 부분이 있고, 교섭단위를 전국이나 시·도단위로 할 경우에도 각 대학의 재정수준이나 근로조건의 차이 등 고려할 부분이 많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잠들어 있는 법안, 올 2월 깨어날까 현재 교수노조 합법화와 관련해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은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이 발의한 것이 각각 3년, 2년동안 잠들어 있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이 지난 2005년 11월 대표발의한 ‘교원의 노동조합설립및운영등에관한법률 일부개정안’은 1999년 만들어진 교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에관한 법률에서 ‘교원’을 초중등 교원으로만 적용한 것은 형평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학 교수 역시 이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앞서 2004년 9월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 내용은 한 발 나아가 특별법 형태인 교원노조법도 폐지하고, 일반법인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개정을 통해 초중고 교원은 물론 대학 교원들도 완전한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단병호 의원은 “이목희 의원이 발의한 법안 내용과 중요한 차이점은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 5조를 고쳐 일반법으로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며 “자꾸 특별법을 만들 필요 없이 공무원노조법과 교직원노조법을 폐지하자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6년째 합법화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김한성 교수노조 부위원장은 “물론 현행 노동법 개정을 통해 교수들도 노동기본권을 보장받는게 목표이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특별법을 통해서라도 교수노조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노동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을 통해 교수노조 합법화 방법이 논의되고 있지만, 2007년 대선정국 상황에서 열리는 올해 2월 임시국회에서 교수노조 합법화 관련 법안이 통과될 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김한성 교수노조 부위원장은 “교수노동조합의 합법화는 조합원들의 권리를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사문화되고 있는 대학교육의 공공성과 자주성을 위해서도 시급하다”며 “신자유주의라는 대학에 불어닥친 광풍을 막고 대학운영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합리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합법조직이 있어야 하고 교수노조 합법화는 그런 의미에서 노동운동이며 교육운동이고 학문운동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재현 기자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