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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부부란 이유 가정폭력 이젠 끝내!

대법원, “어떠한 경우에도 가정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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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호 ⁄ 2007.07.03 13:51:51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은 오히려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그 폭력성도 심각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정폭력 피해자는 결혼 10∼20년 이내인 30·40대인 것으로 조사되어, 젊은 부부층에서의 가정폭력이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연예인 부부가 결혼 직후,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이혼을 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부간 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눈길을 끌만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지난달 12일 ‘부부간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혼사유가 된다’고 판결한 것. 특히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부부 사이의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혀, 기존 부부간 폭력이 있더라도 상대방(폭력의 피해자)이 주된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이혼 사유가 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바꾼 것이어서 주목된다. 내용인즉슨, 40대 주부 박모씨는 자신의 불륜을 의심하는 남편에게 얼굴 등을 맞아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남편의 음주 문제 등으로 고통을 받아온 박씨는 즉각 이혼소송을 냈지만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법원은 남편이 폭력을 휘두른 배경에는 잦은 가출 등 박씨에게도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 특별3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민법 제840조 6호 소정의 이혼사유인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 함은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원심은 아내 박씨가 수시로 가출하는 과정에서 다른 남자와의 불륜을 의심할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남편의 폭력행사에 상당부분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고 이혼청구를 기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그런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상호 간의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부부 관계에 있어서 폭력의 행사는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재판부는 “원심으로서는 남편 정씨의 반복되는 이성과의 의심스러운 행동과 폭력행사가 혼인관계에 미친 영향을 세밀하게 살펴봐서 애정과 신뢰가 상실돼 혼인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고, 그 책임이 원고에게 전적으로 또는 주된 책임이 있는 경우가 아니며, 혼인생활을 강제하는 것이 원고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볼 여지가 있으면 원고의 이혼청구를 인용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을 놓고,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 등 여성계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은 대법원이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부부 관계에서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 환영논평을 냈다. 여성의전화는 “이제 가정폭력은 부부갈등이나 부부싸움이 아니라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라는 사실을 대법원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라며 이번 대법원의 결정을 지지했다. 또 지금까지 가정폭력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폭력으로 온몸에 멍이 들어도 ‘뭔가 맞을 짓을 했겠지’ 라고 생각되는 사회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여성의전화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인간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아내를 때릴 권리도 없고 또, 아내는 맞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인권에 기반한 당연한 판결”이라며, 이를 계기로 “앞으로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폭력을 눈감아주거나, 적당히 봐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도 “이번 판결이 가정폭력을 가벼이 여겨 온 사회적 관행을 제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국가차원에서 가정폭력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의미 있는 판단”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 가정폭력, 가장 심각한 범죄임에도 가장 쉽게 용인되는 범죄 사실 부부간 폭력의 실태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부부’라는 이유에서 묵인되거나, 사회적 그릇된 인식으로 묵인되어 오고 있다. 또한 부부간 폭력은 수위와 빈도면에서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통계도 나오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담 건수 1,992건 가운데 가정폭력관련은 모두 880건에 달하고 있는 실정. 특히 가정폭력상담소가 개소한 2005년 10월부터 12월까지 가정폭력 상담건수는 102건인 반면 지난해 같은 기간은 138건으로 나타나는 등 35% 증가했다. 피해자 상담자의 경우 30·40대가 557명으로 전체 63%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극소수이긴 하지만 ‘아내에게 매맞는 남편’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이다. 남편의 경우 기존에는 경제력이 이유인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경제력과 상관없이 아내에게 맞는 남편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 남성고민 상담전화인 ‘남성의 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아내로부터 폭행을 당한 남편의 상담전화는 1,142건으로, 이들 중 상당수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해 기혼 남성 2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폭언·무시 등 정신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남성은 59명(19.9%)이었으며 구타당한 사람은 33명(11.1%)이었다. 특히 흉기로 맞은 사람 5명, 목을 졸린 사람도 4명이나 있었다. 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도 4명이었다. 부부간 폭력은 ‘부부’라는 이유로 넘어가거나 수치심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폭력과는 다르게 부부간 폭력은 만성화·극단화되기 쉽다. 실제로 살해된 여성을 가해한 사람의 21%가 남편과 배우자이며, 남성의 경우 그 절반 수준이라는 보고도 있을 정도로, 부부간 폭력은 극단적인 결말을 부를 수 있다. 특히 부부간 폭력에서 희생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은 사회와 국가로부터도 ‘제 2차 희생자’가 될 수 있다. 피해자를 피해자로 보지 않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피해자는 더 큰 정신적 피해를 입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현재 가정폭력가해자 처벌에관한특례법과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에관한특례법 등이 마련돼 있지만 법률이 있어도 실제 처벌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 유교적 사상과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가정폭력은 폭력이 아닌 ‘가정사’의 일부로 여기는 인식도 거기에 큰 몫을 한다. 서울여성의전화 이화영 사무국장은 “죽을만큼 폭행을 당하는 여성이 살기위해 한 순간 방어하는 것은 과잉방어로 인정되고, 평소 늘 죽을만큼 때리는 남편들은 일상적으로 가하는 폭행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야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가정폭력의 실상”이라고 밝힌다. 이 사무국장은 “가정폭력은 남편의 외도나 경제적인 학대, 의처증 등 여성에 대한 부당한 학대와 폭력이 복합적으로 동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폭력이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상실된 상태에서 행사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여러 형태의 학대와 폭행을 당한다”고 설명한다. ■ 피해자의 사회적 안전망 구축과 가해자의 처벌 시급 가정폭력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폭력은 생존본능인 공격성이 파괴적으로 남용된 결과이며 가해자의 무의식에 잠재된 열등감이 상처를 입을 때 폭발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성장기 때 욕망을 참는 법을 못 배워도 폭력을 쉽게 행사할 수 있다. 또 폭력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 자연스레 폭력을 ‘대물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화영 사무국장은 “상담을 하다보면 가정폭력이 이뤄지는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 대부분이 자신들의 결혼생활에서 또 가정폭력을 경험하게 된다”며, “가정폭력을 묵인하는 현실에서 가정폭력은 계속 대대로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가정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어떠한 대처를 하는 것이 좋을까.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대응이라고 강조한다. 처음에는 약하게 폭력이 시작되지만 이를 참고 넘길 경우 더 빈번하게, 더 강한 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연애시절 한 번이라도 폭력이 있었던 커플 중 절반 이상은 신혼 초에 폭력을 경험한다고 한다. 따라서 피해자는 폭력은 절대 용납 못하며 재발할 땐 이혼 등 단호한 조처를 취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만일 반복되면 즉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 폭력 사실은 주변에 즉각 알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도 좋다. 이 사무국장은 “가정폭력을 처음 당한 경우 가족이나 친정, 경찰 등 주위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며, “가정폭력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명확히 범죄라고 인식시키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정폭력에 대해 사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를 ‘범죄’로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실천적 의식이 시급하다. 법률에서 실질적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수위를 강화하고 보다 가정폭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다. 또한 피해자의 보호와 지원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가정폭력에 대한 교육적 프로그램도 확충해 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여성가족부가 올해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연 1회 이상 가정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또한 현재 가정폭력 피해자의 의료지원을 위해 행정기관의 치료비 지급이 의무화됐고, 피해자의 자활을 위한 직업훈련비와 법률적인 조력을 위한 소송비도 무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가정폭력 피해자의 긴급 구조를 위한 여성긴급전화 1366센터, 상담-의료-수사-법률지원을 일시에 제공하는 여성폭력피해자 ONE-STOP 지원센터 등 지원기구와 상담센터 등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부부간 폭력은 명백한 ‘범죄’임에 틀림없다. 이는 자녀들에게까지 확대되어 가정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가족의 해체’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가족사회의 붕괴로 연결될 수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의 경우 이혼 등 가정해체로 이어지면서 부부 뿐 아니라 자녀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며 “부부간의 정서적·신체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사회적 프로그램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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