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동북공정이라는 말을 ‘고구려 역사 왜곡 또는 침탈’을 일컬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동북공정’이란 중국사회과학원과 동북3성이 연합하여 조직한 것으로, 지난 2002년 2월부터 2007년 1월31일까지 5년에 걸쳐 동북 변경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연구프로젝트를 줄인 말을 뜻한다.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위해 중국사회과학원과 동북3성 당위원회 선전부가 지도팀이 되어 18명으로 전문연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또 중국사회과학원과 동북 3성 사회과학 연구부분, 대학 연구기관까지도 여기에 참여, 단순히 연구기관이 아닌 중국의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중국은 지난달 31일로 끝난 동북공정과 별개로, 부여와 고구려가 포함된 랴오허(遼河)문명을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10단계 다민족통일국가론의 최종 단계인 중화문명탐원공정을 2006년부터 진행 중이다. 탐원공정의 책임자인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부소장 왕웨이(王W)는 “확실한 중화문명 기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시 두 번의 5개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고 말해 지금의 역사왜곡은 ‘서곡’에 불과함을 암시하기도 했다. 흔히 우리가 고구려 역사 침탈로만 알고 있는 동북공정은 고조선부터 고려까지 한국사 전반에 걸친 역사 왜곡이며, 또한 한국사 뿐 아니라 몽골과 러시아 등 동아시아에 대한 역사 왜곡까지도 포함된다. 중국은 국경을 현재 국경으로 보지 않고 청나라 당시의 국경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와 몽골, 동아시아까지도 국경으로 포함시키려는 계획으로, 치밀하게 오랜 준비를 거치면서 이제 정치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1980년부터 역사왜곡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으며, 동북공정이 시작된 2002년에는 이미 오랜 연구와 논문 발표로 역사왜곡의 발판이 다져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최근 중국이 창춘 동계 아시안게임을 백두산의 중국명인 창바이산(長白山) 홍보장으로 둔갑시켜,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을 이제는 현실에까지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지에 파견된 대한체육회 관계자에 따르면 각국 취재진들로 붐비는 메인프레스센터(MPC)에 대회와 직접 관련이 없는 ‘창바이산 보호관리위원회’ 이름으로 된 책자와 CD가 배포됐다. 표지에는 백두산을 ‘중국 자연유산 창바이산’으로 적어 놓고, 아시안게임장을 창바이산과 천지를 알리는 홍보장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 중국, ‘백두산은 중국땅’...역사왜곡 현실화 우려 중국은 앞서 2018년 동계올림픽을 백두산 일대에서 치르겠다는 구상을 발표했고 백두산의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재까지 추진해왔던 점을 비추어 본다면,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허전량 중국올림픽위원회 명예주석은 “이번 동계 아시안 게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동계올림픽 유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백두산지역 개발과 더불어 백두산동계올림픽 추진이 노골화되고 있다. 백두산에 대한 실효적 지배 강화를 위한 시도로 보기에 충분할 뿐 아니라, 이는 ‘동북공정’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와 지린성은 이미 백두산에서 서쪽으로 불과 30㎞ 가량 떨어진 푸쑹현에 내년 7월 완공을 목표로 ‘창바이산공항’을 건설 중이고 백두산의 생태환경을 주로 전시하는 자연사박물관도 지난해 새로 개관했다. 중국이 올해 첫선을 보일 고속열차 이름도 ‘창바이산’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아시안게임을 통해 ‘백두산공정’을 기정사실화하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서길수 교수(서경대)는 특히 최근 중국 연구소에서 백두산 관련 논문이 많아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동북사지’에만 26편의 백두산 관련 논문이 실렸으며, 2004년 11월 열린 ‘창바이산문화 연구토론회’에는 66편의 논문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않고 있다. 아시안게임 참관을 위해 창춘을 방문했던 박양우 문화관광부 차관은 28일 프레스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회조직위원회의 중국의 백두산 홍보에 대해 “동북공정의 차원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이슈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백두산을 비롯, 북한 지역에 대해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중국이 북한에 진입하기 위한 사전 준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제임스 릴리 전 주한미국대사는 지난달 18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 북한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예의주시해야 한다”며,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은 북한이 무너지면 진입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릴리 前 주한美대사, “中 북한 무너지면 진입하려는 속셈” 그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북한 지역의 절반 이상을 중국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미국이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과의 국경 지역에 대규모 군부대를 전진 배치한 것도 북한이 붕괴될 경우 북한 진입을 위한 것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그는 또 “중국이 북한의 신의주 특구 추진을 무산시킨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라고 했다. 신의주 특구가 성공할 경우 중국의 동진(東進) 정책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6일부터 3일 동안 지린성 창춘과 지린시 등 북한과 접경한 동북지방 순시에 나선 점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중국에서는 후 주석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동북지방 개발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동북지방은 현재 중국 전체 경제성장률을 크게 앞지르는 고도성장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0.7%지만, 지린성은 13.7%, 랴오닝성은 13%. 헤이룽장성은 11.6%에 이르렀다. 중국 경제전문가들은 “동북지방이 창장삼각주와 주장삼각주, 환보하이만 지역에 이어 중국 4대 경제 중심지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분석하며, 경제 중심지로서 부각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후 주석이 지린시 창이구에 있는 조선족 농가를 찾아, 조선족 농민과 생활 형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이에 대해 중국이 소수민족에 대해 추진하고 있는 중국인 정체성 확립 노력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얼마전부터 MBC드라마 ‘주몽’을 방영 중인 홍콩의 지상파 방송사 ATV가 드라마 해설을 담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는 고조선과 다른 별개의 민족”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홍콩 ATV의 ‘주몽’ 홈페이지(www.hkatv.com/drama/07/jumong)의 ‘고구려 역사’는 고구려가 고조선과 별개의 민족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홈페이지는 “고조선과 고구려는 당시 2개의 서로 다른 부족(古朝鮮與高句麗當時是兩個不同的部族群體)”이라며, “이는 고조선과 고구려(구려)가 당시 2개의 서로 다른 부족이라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고구려와 고조선의 연관성을 배제하는 의미로 “고구려는 당시 조선을 영유하지 않았고, 조선도 고구려를 포괄하지 않았다(高句麗當時幷不領古朝鮮, 古朝鮮也不包括高句麗)”고 적고 있다. ■ 이어도 둘러싼 韓·中간 분쟁, 중국의 속내는? 중국은 동북지역을 비롯, 백두산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려는 움직임에 이어 최근에는 해양분쟁까지도 감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9월 중국 외교부는 “쑤옌자오(蘇岩礁·이어도의 중국명)에서 벌이는 한국의 일방적인 행동에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이어도 종합 해양 과학 기지에 대해 5차례 순항 감시를 벌이기도 했다. SBS는 지난 24일 <뉴스 추적> ‘이어도 공정-中國, 그들의 노림수는?’에서 이어도를 둘러싼 일련의 중국 측 반응이 단순한 해양 활동인지, 동북 공정에 이은 새로운 영토 전략인지 분석했다. 제작진이 찾은 중국 칭다오에 위치한 한중 해양 과학 공동 연구 센터에 파견된 한국 연구원들은 “중국이 이어도를 자신의 영토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중국의 언론과 인터넷 상에는 “한국이 중국 영토를 빼앗으려 한다”는 글로 가득했다.
이 같은 한중간 분쟁의 발단은 2001년 ‘한중 어업 협정’부터 시작된다. 당시 양국은 배타적 경제 수역(EEZ)을 설정하지 않고, 이어도 지역을 한중 어선의 조업이 가능한 공해 성격의 기타 수역으로 남겨두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어업 협정과 EEZ 협정은 별개”라며 “한중간 중간선을 기점으로 이어도는 한국의 수역이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중국은 “해안선의 길이·인구 등을 고려해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 이어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제작진은 중국의 전략에는 경제적인 이유 외에 군사적인 이유가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 측 해역은 대륙붕으로 수심이 얕기 때문에 이어도 해역을 거치치 않고는 칭다오의 북해 함대와 상하이의 동해 함대가 태평양으로 진출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의도적으로 2001년 협정 때 이어도를 한국의 배타적 수역으로 포함시키지 못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제작진은 이번 갈등이 ‘제 2의 독도’와 같은 해양 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보다 전략적인 정부의 접근의 필요하다고 밝혔다. ■ 동북공정은 역사침탈의 ‘조족지혈’ 지난 1월30일 고구려연구회가 주최한 ‘중국의 동북공정 5년, 그 성과와 한국의 대응’ 세미나에서 서길수 교수는 “중국의 역사침탈이 동북공정이라는 말로 일반화되어 있는데, 동북공정은 한시적인 것으로, 이제는 동북공정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역사침탈의 극히 일부분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역사왜곡 작업이 이뤄져왔고, 동북공정은 그 수단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동북공정 고구려 연구 결과에 대한 평가에서 서 교수는 “실제 동북공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고구려 연구과제로 선정된 것은 27과제 가운데 3건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고조선부터 신라까지 다양하게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이유는 고구려사 왜곡이 이미 기초가 완성된 상태에서 동북공정이 시작됐기 때문. 서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은 1980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미 1980~1990년까지 1단계로 학자들에 의한 역사침탈 준비기가 시작됐다. 이후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국책에 의한 역사침탈 추진과 1차 왜곡의 완성기를 2단계로 나눌 수 있다. 중국사회과학원과 동북 3성이 연구비를 후원하고 있고 실제 ‘고구려=고구려사’ 작업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단체들도 있다. 동북공정 성과가 가장 왕성하게 발표된 2004년 한해 길림성사회과학원에서 발행하는 <동북사지>라는 잡지 하나에만도 54편의 논문이 실렸다. 이와 같은 동북공정의 1차연구 성과는 이미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속론>에 종합적으로 발간되어 이미 두 번째 단계가 완성됐다는 것.
3단계는 2002년부터 2002년까지로 2차 역사 침탈의 실시(동북공정)와 완성기라 할 수 있다. 2002년에는 2월에 동북공정, 연변에서 3관교육을 시작했고, 2003년 2월~9월까지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속론>의 발행과 고구려 유적 정비(세계유산 등록 목적)를 2차 침탈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 25년간 이뤄진 중국의 역사 창조(?) 중국이 동북공정을 실시하게 된 이유에 대해 동북공정은 중국의 ‘새로운 역사만들기’라는 큰 줄기의 하나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구려·발해사를 비롯한 압록강 북녘 고구려 옛 땅에 대한 정체성 문제에 대해 중국은 반드시 다루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1979년 이후 중국은 개방과 동시에 소수민족 문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소수민족은 전체 민족의 8.41%에 불과하지만, 그 수가 1억을 넘고, 더군다나 소수민족이 차지한 땅은 중국 국토의 6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은 자원 문제와 더불어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의 생존과 연결되는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은 ‘통일적다민족국가’ 논리를 내세워, 80년대 이후 중국 민족과 역사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를 시작한다. 이 후, 현재 중국사의 범위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청나라 당시의 영토안에 있던 모든 지역의 역사가 중국사라는 것으로 확대된다. 청나라 때의 영토를 주장하는 것은 고구려사 뿐 아니라 상당 부분 몽골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는 중국땅이 아니지만, 몽골·러시아 투바공화국·알타이·연해주를 비롯한 상당부분의 동부 시베리아가 모두 청나라 영토였기 때문에, 이런 영토는 모두 중국사에 속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청나라 영역 안에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사 속의 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구려를 국가로 보지 않고,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1983년, 국무원 산하 중국사회과학원(CASS)에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을 세워 국경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고구려와 조어도 뿐 아니라 남사군도·탕누 울량하이·동돌궐 등 중요 국경분쟁지역 역사를 핫 이슈로 삼고 있다. 또한 중국 역사문화정보센터와 신강발전연구센터 등 각종 지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1986년부터 중국은 중국장학연구중심이라는 티베트지역 전문 연구기관을 설립, 외국의 장학 현상과 동태를 연구하는 국가급 연구기관을 설립한다. 1990년부터는 중국 북부 국경, 즉 몽골의 귀속에 대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한다. 1990년 10월 <몽골족통사> 3권을 출간하고, 2005년 8월에는 <몽골민족통사>를 출판, 몽골족이 통일적 중화민족의 한 조선부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고구려 귀속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진다. 각종 전문 연구기관을 탄생시키고, 연구 결과를 완성시켜, 1996년에는 환인 각 기관에 고구려사가 조선역사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다며, 귀속문제를 공문으로 보내기에 이른다. 이후 중국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하·상·주 단대공정을 통해, 구체적인 연계를 확정짓는 단계를 거쳐, 2000년~2005년에는 중국 고대문명 탐원 공정을 벌이며, 역사 연구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왔다. 이후 2002년부터 2007년 1월까지 동북공정이 실시됐으며, 2006년부터 2010년까지는 중화문경탐험공정과 요하문명론에 대한 연구가 실시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 정부가 동북 3성의 소수민족 문화 등을 연구하기 위해 랴오닝성 선양사범대학에 ‘중국북방 소수민족문화 연구기지’를 설립키로 해, 동북공정의 맥을 잇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동북 3성과 네이멍구는 현재 만주족·몽고족·회족·조선족·석백족을 비롯한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거의 모든 소수민족이 한족과 어울려 살고 있는 지역이다. 또한 고대 부여족과 고구려족, 말갈족 등의 발원지이기도 한 이 지역의 연구기지가 향후 어떠한 활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기 동북공정에 대해 우리나라는 동북공정의 목적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한정해 그 내용과 목적, 파급효과에 대해 정확한 파악 및 대응책 마련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한 즉흥적·편향적으로 일회성 반응에 한정된 경우가 많았던 것도 문제이다. 서길수 교수는 이런 의미에서 “동북공정 그 자체의 결과에 한해서 우리가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1980년이후 꾸준히 이뤄져온 역사왜곡에 보다 깊이 분석하고, 앞으로 장기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병률 동북아역사재단 실장은 “동북공정의 목적에 대해 현재 국내에서는 상반된 인식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러나 동북공정이 미치는 결과가 현실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중국은 위구르-신장지구나 티벳, 몽골자치구 등에서도 먼저 그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시행한 후 지역개발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생활권이나 의식면에서 하나의 중국을 실현하는 작업을 추진한 바 있다. 중국에서는 하상주단대공정·중국문명탐원공정·서북공정·서남공정 등과 같이 ‘중국의 역사늘이기 또는 중국민의 자부심고취와 결집을 위한 역사프로젝트를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했던 것이다. ■ 방어적 대응 아닌 적극적·체계적 전략 필요 반병률 실장은 “이와 같은 전례로 보아 동북공정 역시 학술사업임과 동시에 정치적인 목적이 강한 국가적 전략사업의 일환이라는 것은 분명하다”며, “역사학의 속성상 연구물이 학계에 제출되면, 그 자체가 3차 자료로서 존립하면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우려했다. 반 실장은 “우리 정부는 6자회담 및 북핵문제 등과 연관된 중국과의 관계와 국민들의 분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향후의 동북아 및 국제적 상황을 고려한 가운데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문제해결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의 파급력과 계속성으로 인해 한국사 왜곡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한국사 왜곡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것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국가간 분쟁거리로 커질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 학계와 정부의 이 문제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임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방어적·대응적 차원에서 벗어나 우리 주도의 아젠다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 실장은 △역사교육강화와 연구자 지원, 양성 및 국제교류를 통한 역사갈등 해소에 필요한 역량을 강화하고 △주변국가의 역사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올바른 역사상과 역사인식의 수립이 필요하며 △세계사적인 시각과 국제적 안목에 근거한 보편타당한 이론을 정립하고 △세계역사학계와 국제NGO와의 네트워크 형성과 협력 강화를 과제로 꼽았다. 신형식 교수(인화대)는 “많은 중국사에 대한 이론 정립되어, 결국 그 이론의 영향을 받게 되고,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길수 교수는 “한국사 전반을 다루는 대규모 연구소가 대통령이나 총리실 산하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계의 이러한 지적과 반성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보다 적극적인 대응과 깊이있는 연구로서 맞서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와 국회가 더 이상 이에 대해 미온적인 자세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영유권 분쟁 가능성에 대비하고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