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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 목사 식구를 안고 가나?

‘최태민 목사 사위,박근혜 비선조직 강남팀 운영중’제기
박 전 대표 최태민 딸 사위 3인 해외여행 행적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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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3호 ⁄ 2007.07.02 12:55:34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가 아니고 정식 기독교 목사였어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면 내가 상대를 안 했고, 나도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했어요” “저의가 뭐예요” 이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지난 2004년 모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최태민 목사에 대해 질문하자 격앙된 어조로 답변했다. 17대 대선정국에서 최태민 게이트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대선 비선조직인 강남팀이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씨가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박 전 대표와 최태민 목사의 관계에 무엇인가 베일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정윤회 씨는 지난 96년 최태민 목사의 비서였다가 2002년까지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민 목사의 딸인 최순실 씨는 지난84년 첫 번째 남편과는 이혼한 이혼녀로 압구정동에 자리한 초이종합학원 및 초이유치원 원장, 한국아동교육문제연구소 소장이며 정윤회 씨와 재혼해 슬하에 1녀를 두고 있다. ■ 최목사 딸 엄청난 재산형성 이같은 사실은 김해호 씨가 지난 6월17일 ‘박근혜의 육영재단 비리와 최태민·최순실 여사 철저한 검증을 한나라당 검증위원회에 바란다’는 내용을 밝히면서 드러났다. 김 씨는 박 전 대표에 대한 검증요구에 대해 “박 전 대표가 도덕하는데 더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보여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씨는 지난 90년이후 최태민 목사와 전혀 연락도 되지 않고 사망사실 조차 몰랐다고 하는데 최순실의 재혼한 남편인 정윤회 씨를 비서실장으로 10년 가까이 측근으로 두고 있었는데 이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박 전 대표는 명확하게 답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자료에 따르면 84년 이혼후 최순실 씨는 서울 압구정동 중심상가지역에 수백평대의 토지와 건물을 소지했고 당시 20대 후반이었으며 자금 출처 및 각종 부동산 취득 경위가 의심스럽다는 것. 김 씨는 뿐만 아니라 최순실 씨의 다른 자매들 역시 현재 강남과 동부이촌동 등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의 재산 역시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그 취득경위 역시 상당히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박 전 대표가 서울 강남 삼성동 최태민 목사 집앞으로 이사간 이유에 대해 “지금도 최태민 목사의 집이 어디고 최순실 씨가 어디 있는 지 모른다고 하는데 최 목사가 박 전 대표 집앞에 살았고 최순실 씨가 차로 5분 거리인 압구정동에 지금까지 살고 있다며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당시 농성사건으로 초이학원과 한국아동연은 곧 문을 닫았고 초이유치원을 운영하다 현재는 당시 위치에 소유하고 있던 두채의 빌딩을 소유만 하고 있다고 김 씨는 주장했다. 당시 한국아동교육연구소는 초이학원 주위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현재도 토지 및 건물 역시 최순실 씨의 소유로 되어있다. 지난86년 당시에 최순실 씨는 검은색 로얄 프린스와 흰색 스텔라를 직접 몰고 다녔으며 31세밖에 안된 그녀가 어떻게 수많은 재산을 가질수 있었는지에 대해 주위에서는 의문을 제기했으며 이와관련, 일부에서는 아버지인 최 목사가 빼돌린 각종 기금 및 공금이라는 설이 나돌았다. 또 최 목사의 친인척들이 여러 기관에 겸직하고 있었다. 당시 관장이었던 김모씨는 육여사 추모사업회 상임이사인 것을 비롯, 3명의 다른 이사들도 새마음병원 사무국장, 영남투금 회장, 명덕재단 사무국장을 맡았었다. 김해호 씨는 또 최순실 씨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모른다고 주장하면서 최순실 씨가 지난 96년에 재혼한 정윤회 씨를 비서실장으로 옆에 두고 최근까지도 핵심인물로 두는 이유에 대해 박 전 대표가 해명할 것을 주문했다. 김 씨는 이와함께 최태민 목사와 그의 가족 재산형성과정에 대해서도 해명할 것을 주장했다. ■ 박 전 대표, 최 목사 집근처 이사도 미스테리 김 씨에 따르면 최순실 씨는 이미 20대 후반에 압구정동· 반포 등에 현시세로 500억원이 넘는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김 씨는 최근 박 전 대표와 최순실, 정윤회 3인이 해외여행을 갔다 왔다는 제보도 있다며 지금도 정윤회 씨가 대선캠프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태민 목사가 죽는 날(1994년 5월 1일)까지 최 목사로부터 박 전 대표는 생활비조로 돈을 받아 왔다(중앙일보 1994년 7월12일자)며 최 목사가 죽은 것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에 따르면 최순실 씨는 어깨동무 발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편집부 직원들이 파업한적도 있으며 한국아동교육문제연구소의 간부를 잡지의 편집고문으로 내세워 잡지의 모든 사항을 체크 감독하기 시작해 당시 기자들과 업무부 직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하며 반항하자 최태민 목사의 사촌형으로 알려진 김창완 씨를 관장으로 앉혔다. 김 씨는 박 전 대표가 최순실 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모른다고 주장하면서 최순실 씨의 남편을 비서실장으로 두고 최근까지 핵심인물로 기용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않된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이들 부부가 가지고 있는 빌딩들과 재산들에 대해서도 박 전 대표는 모른다고 하면 80년대이후 가장 큰 도움을 주고 형제자매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의 집도 모르고 재산상태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김 씨는 밝혔다. -김원섭 기자 월간조선 2004년 4월 박근혜 전 대표 인터뷰 내용 1980년대에는 뭘 했습니까 “경로복지병원이라고 나이드신 분들 무료로 침도 놔 드리고, 치료해 드리고, 육영재단·장학재단 운영하고, 수필집 내고, 아버지 기념사업도 2년여 했어요” 1990년 육영재단 파동이 나면서, 퍼스트 레이디 시절에 있었던 崔太敏 목사와의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1975년 5월13일 崔 목사가 임진강에서 2000여 명의 청중을 모아 놓고 구국기도회를 할 때 거기에 갔다가 그 자리에서 명예총재로 추대된 거죠 “맞아요. 그때 나라가 어려웠어요. 월남사태도 있었고, 국민들이 굉장히 불안해 하고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을 때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단결해서 나라를 구해야 한다」며 기독교 분들이 주축이 돼 하신 거예요. 퍼스트 레이디 역할 하면서 좋은 일 하시는 분들 있으면 격려해야 할 책임이 있잖아요” 구국선교단(뒤에 구국봉사단)의 명예총재하는 걸 아버지에게 허락받았습니까 “일일이 할 때마다 허락받는 건 아니에요. 하고 나면 말씀드리는 것도 있어요” 崔太敏 씨가 朴 의원에게 「陸英修 여사가 꿈에 나타나 도와드리라고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만나게 됐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입니까 “그런 건 아니에요. 만나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 싶어 하셔서 한 번 청와대에서 만났죠. 여러 가지로 나라를 걱정하시는 생각이 들어, 그분이 선교단을 할 적에 좋은 뜻으로 하니까 도와 드리기도 하고 일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했어요” 어머니가 現夢했다는 유의 얘기는 사실이 아닌가요 “그건 아니에요. 이런 문제들이 왜 나오냐면, 제가 보궐선거와 총선을 치렀는데 그 상대가 안기부 출신이에요. 자료가 엄청나게 많아서 이런 것 저런 것 마구 공격을 했어요. 한 가지라도 사실이면 제가 국회의원 됐겠습니까. 말할 가치가 없는 주장들이에요” 1975년 5월24일자 한 일간 신문 기사를 보면, 「기독십자군 창설을 위해 서부전선 5019부대에서 목사 100여 명이 3일 동안 군사훈련을 받았다. 명예총재인 근혜 양이 참석한 가운데 부대장으로부터 수료증을 받고 퇴소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朴 의원은 「군사훈련을 통해 참 신앙이 무엇이며, 자기 민족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는 데 모범이 되었다」고 격려사를 하셨더군요. 목사들을 군사훈련시키고, 총참모장·총사령관까지 둔 군대식 「구국선교단」이라는 조직이 시대착오적인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한가하게 말할 일이 아닙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비판하는 건 쉽죠. 목사님들이 훈련받고 하는 걸 유치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목사님들이 모두 공부한 분들이고 사회지도층인데 「나라 위기에 단결해야 한다. 정신무장하자」고 노력하는 걸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유치하다고 보면 안 되죠”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鮮于煉(선우련) 씨의 증언에 따르면, 崔太敏 씨가 道경찰국장, 道 지사에게까지 호통을 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고, 재벌 총수들이 崔 씨에게 줄을 대기 위해 자신에게 청탁까지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이 안 되죠. 5공 정권이 끝나고 청문회를 했잖아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20년이 흘렀어요. 온갖 이야기를 끌어내서 그럴싸하게 만들어 중상모략을 할 수 있습니다. 들어 보면 「그러냐」 이럴 수도 있어요. 문제는 그게 사실이냐는 거예요.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습니까. 崔 목사가 큰소리 쳐서 권력을 휘두르고 남의 재산을 탈취했다면, 벌써 내가 이렇게 억울하게 당했다고 얘기가 다 나왔을 겁니다. 崔 목사에게 사기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도 안 나오잖아요. 그것 하나가 백 마디 얘기를 다 해주는 것 아닌가요” 崔 씨의 횡령건수가 14건, 2억2000만원이라는 합수부 수사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감옥에 보내든지 책임을 물었겠죠. 말도 많고 모함도 많았지만 증거가 없잖아요.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권력이 무서워서 그랬다 쳐요. 그후 저도 청와대에 있다가 반대편에서 얼마나 어렵게 살았어요. 그때 저한테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당했다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1977년 9월 아버님께서 中情부장과 崔 목사를 직접 심문했죠 “謀略(모략)이 들어가니까. 아버지 성격에 가만 계실 분이십니까. 아버지는 분명히 조사시키고, 더군다나 딸 문젠데. 조사해서 뚜렷한 증거가 없으니까 없던 걸로 덮으신 거예요” 中情을 제쳐두고 경호실 정보처에서 다시 崔 목사를 조사하려니까, 朴 의원이 밥도 안먹고 1주일 간 두문불출해 조사를 포기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 적 없어요. 저는 두문불출하고 밥 안 먹고 그런 일 안 해요. 얼마나 엄청난 모략이에요. 제가 편안하게 온실에서 자랐다고 잘못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제가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세상이 어떻다는 걸 잘 아는 이유가, 너무 많은 경험을 해서 일 거예요” 국가정보기관에서 崔 목사의 전력이 의심스럽다,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를 하면 따르는 게 온당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권고하던 사람이 아버지를 암살하지 않았습니까” 崔太敏 목사가 신군부에 구속돼서 강원도 인제로 쫓겨 갔을 때 全斗煥 대통령을 상대로 석방운동을 하셨나요 “그런 적이 없어요. 제가 말한다고 됩니까. 그때 「유신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崔 목사를 한 번 더 조사했지만, 혐의가 없으니까 뭘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 양반이 감옥에 간 게 아니고 무슨 군부대에 가 있었어요. 문제가 있었으면 진짜 감옥에 갔든지, 돈을 물어냈든지 그렇게 됐겠죠” 지금도 대통령 주변의 친인척들이 大統領을 빙자해 축재를 하고 이권에 개입하는 일이 잦습니다. 사실상의 영부인을 자기 단체의 명예총재로 모신 崔 목사가 위세를 이용해서 官에 압력을 가하거나, 건어물 도매상 허가를 내달라거나, 공금을 횡령했다는 주장은 개연성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이런 식으로 저한테 질문하시는 底意를 의심하고 있어요” 저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저의를 의심합니다. 이분은 돌아가셨어요. 건어물 도매시장 허가를 받아 누가 손해를 봤다든지 한 사실이 있다면, 여러 가지 다 물으실 수 있어요. 그런데 한 건도 사기당한 사람이 없었어요. 金 기자님은 수십년 간 떠돌았던 의혹을 다 열거하면서 묻고, 나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얘기하지만, 그게 그대로 기사로 나가면 돌아가신 분이나 그 가족은 또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뭡니까. 월간조선이 그분과 무슨 억하심정이 있습니까” 朴 의원이 육영재단 이사장을 물러날 때도 崔 목사가 전횡을 한다는 얘기가 나왔죠 “그때도 별별 얘기가 다 나왔잖아요. 崔 목사가 한 건이라도 감옥에 갈 만한 일을 했다든지, 피해본 사람이 있다든지, 권력을 빙자해서 뭐 한 게 없잖아요. 그게 없으면 그 다음에는 얘기하면 안 됩니다. 모략하는 사람들 얘기를 책에다 다 내실 겁니까. 왜 그러세요” 왜 이런 식의 인터뷰가 필요하냐면, 이미 朴 의원이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가장 유력한 大選후보의 한 사람이 됐기 때문입니다 “좋아요. 제 개인에 관해 검증하는 것은 좋지만, 세상을 뜬 사람과 그 사람 가족들에 대한 거잖아요. 잘못했으면 세상 떠나고도 욕먹어야죠. 그러나 하나도 없는 것이 밝혀졌는데 모략을 쭉 나열한다는 건 안 되죠” 쭉 나열 안 하겠습니다. 崔 목사와 일한 것 때문에 유신시절, 5共시절 마음의 고초를 겪었는데 1990년까지 계속 崔 목사의 도움을 받은 이유는 뭡니까 “그때 저를 도와주고 그런 분들이 별로 없었죠. 아버지가 매도당하던 시절이고, 누가 있었나요. 저를 와서 돕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세상 인심이라는 게 그래요” 육영재단 이사장을 물러날 때 다른 분도 아니고, 동생 분과 육영재단 직원들이 「최태민이 전횡을 하니까 물러나라」고 했지 않습니까 “전횡해서 뭐 나쁜 일 한 게 있었어요? 그때 육영재단이 얼마나 잘 되고 있었는데. 전횡해서 사기를 치고 한 일이 있나요” 같이 일을 한 사실만 있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그렇게 일할 수 있죠. 재단에 손해날 짓, 또는 사적으로 뭘 챙긴 게 한 건도 없는 겁니다. 10원 한 장이라도 잘못했으면 감옥에 백번이라도 갔을 분위기였어요” 崔 목사가 목사가 되기 전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가 아니고 정식 기독교 목사였어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면 내가 상대를 안 했고, 나도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했어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崔太敏 목사의 사위를 비서로 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朴 의원이 아직도 崔 목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능력이 되니까 쓰는 거예요. 대개 사람을 쓰고 일을 할 때 가까이 잘 알던 사람들을 쓰는 것 아닌가요” -김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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