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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노동환경 4편 싱가포르

[인터뷰] “시간 외 추가노동이 경제를 위해 당연하다는 한국의 현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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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3호 ⁄ 2007.07.02 12:57:26

요 몇 달 간 미디어다음의 블로거 기사에서 야근 기획을 진행하고 있는 김욱 기자는 최근 기자에게 “야근 기획 기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반론 중에 하나가 ‘그 나라와 우리는 다르다’는 것”이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김 기자에 따르면, “국민소득이 높고 복지역사도 오래된 선진국의 노동환경과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갓 진입한 정도인 한국의 노동환경을 어떻게 단순비교 할 수 있느냐는 말”이라는 게 그런 주장의 주된 이유다. 김 기자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야근을 경제적 문제로 인식하고 한국이 부유해지면 야근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 것”이라면서 “과연 한국이 잘 살면 고질적인 야근은 개선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기자에게 던지기도 했다. 김 기자가 이번에 기자에게 보내온 인터뷰 파일은 싱가포르의 노동환경에 관한 것이다. 인터뷰에 응해준 이는 ‘먼지’라는 닉네임을 쓰는 현지 교포다. 김 기자에 따르면 ‘먼지’님은, “IT분야 노동자”라고 한다. 다음은 김욱 기자와 ‘먼지’님의 일문일답이다. ■ ‘먼지’님 대략적인 신상을 부탁드립니다 “20대 후반의 남성이고 미혼입니다.” ■ 싱가포르 얘기를 좀 해주십시오. 밖에서 보기엔 민주체제라 볼 수 없는데, 정치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는 어떻습니까. 3개 민족으로 구성되어있다는데 인종문제는 발생하지 않는지요. 각 민족의 특성은 어떻습니까 “싱가포르는 일본으로부터의 독립 후 한 번도 정권이 교체되지 않았습니다. 단일정당이 지금까지 의회를 독식하고 있습니다. 언론 자유화 지수 같은 것도 낮게 나오는 편입니다. 흔히들 싱가포르의 후진적인 정치제도와 선진적인 사회제도를 대비해서 말합니다. 태형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데 길거리에서 침을 뱉으면 우리 돈으로 60만 원 정도의 벌금을 낸다던지 법이 엄격합니다. 성범죄를 아주 엄격히 단죄하고 있는데 이점을 외국인 여성분들이 매력적인 점으로 꼽더군요. 독재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총칼로 이룬 것도 아니고 거대한 권력형 비리 같은 것도 없어서 국민들은 크게 불만이 없습니다. 정치에 관해서는 거의 완벽한 무관심입니다. 싱가포르은 중국계가 정치·경제 전반의 주류를 점하고 있고 나머지는 인도계, 말레이계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종문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건 없습니다. 저 역시 느낀 적이 없습니다. 처음엔 저도 중국계 싱가폴리안, 인도계 싱가폴리안,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구별해서 생각하곤 했는데 개인들은 모두 자기의 뿌리보다는 자신은 그저 싱가폴리안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마다의 종교와 문화를 지켜가고 있긴 합니다.” ■ IT디자이너라는 게 어떤 건지 “웹디자인 일을 했었고 모바일회사에서 있었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보시면 됩니다.” ■ 해외 취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한국의 모바일 회사에서 2년 몇 개월을 일하던 중에 싱가포르로 파견근무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싱가포르에 오자마자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싶어졌고, 파견근무 기간 중에 싱가포르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취업을 하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것저것 정리한뒤 다시 돌아와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파견기간까지 치면 9개월째 싱가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해외취업을 준비했던 게 아니라 좋은 기회가 생겨서 그에 맞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제가 이쪽 회사에 들어올 무렵에 한국말을 할 직원이 필요했는데 제가 코리안 네이티브스피커라 그게 먹혔던 것 같습니다. 싱가포르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있는 국가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에서 철저하게 영어교육을 하고 있고 또 워낙에 다인종에 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나라라 자연스럽게 국민들 모두 영어를 잘합니다.” ■ 의사소통엔 별 문제가 없으셨습니까 “저는 해외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가지 않아 영어가 형편없었는데 파견기간 몇 개월 동안 혼자 공부하고 현지인들과 같이 일하고 놀면서 늘리긴 늘렸습니다. 공부하면서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멀었다고 생각해서 계속 공부중입니다. 영어 잘 못하는 저와 같이 일해준 회사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 언어 말고 외국인으로 일하기에 다른 애로점은 없으신지요 “싱가포르은 한국 사람들이 살고 일하고 하기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동양권 국가라 인종차별 같은 것도 없고 한류다 뭐다 해서 한국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이곳에 온 한국 사람들도 대체적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쓰기 때문에 그 점도 편한 점이고요. 현재 이곳에 한국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IT쪽이라고 월급이 특별히 낮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느꼈던 IT업계 종사자들이 가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조적인 한탄 같은 것도 없습니다.” ■ 싱가포르엔 ‘먼지’님 같은 한국인 IT 전문가들이 많은가요. IT 분야에선 인도인들이 뛰어나다고 하던데, 거기도 인도인들이 많습니까 “저는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쪽 IT업종에서 일하는 한국 분들은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작은 나라고 무역·정유·금융 중심의 국가이다 보니까 그런 쪽이 부각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이나 한국만큼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시장이 존재하지 않아서도 그렇고요. 인도가 IT기술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싱가포르에서 크게 부각이 되거나 하진 않는 거 같습니다.” ■ 연봉은 어떻습니까. 싱가포르에서 IT 분야의 월급은 많은 편인가요. 싱가포르 사람들 평균 연봉수준은 “저도 처음엔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아서 급여가 높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졸 초임 같은 우리보다 더 낮습니다. 하지만 경력이 많이 쌓이면 연봉의 상승폭이 높아집니다. 물가는 한국보다 많이 낮습니다. 여기에서 서울의 보통 한 끼 식사 가격으로 밥을 먹을 때 굉장히 비싸다고 느낍니다. 싼 물가와 이에 더해서 인근 국가인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에서 취할 수 있는 싼 노동력과 기타 다른 외국인들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노동시장 같은 이유가 기대보다 낮은 싱가포르의 급여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같은 IT업계라도 어떤 회사인지, 맡은 업무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월급 차이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IT쪽이라고 월급이 특별히 낮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느꼈던 IT업계 종사자들이 가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조적인 한탄 같은 것도 없습니다. 그런 부조리는 한국만의 특수한 문제라고 봅니다. 실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그에 걸맞지 않게 높은 자리에 있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 근무환경에 대해 얘기해주십시오. 근무시간·휴가·오버타임에 대한 보상 등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제가 다니는 회사는 직원 20명이 안되는 작은 회사입니다. 그래서 저의 노동환경이 싱가포르에서 얼마나 일반적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 점을 인식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회사에 다니는 현지인 친구들 보면 다들 조금씩 틀리지만, 싱가포르 역시 주 40시간 노동이 대체적입니다. 저희 회사는 아침 9시 반쯤 출근해서 6시면 퇴근입니다. 야근은 거의 없습니다. 아주 가끔 일이 바쁠 때는 야근을 하는데 야근수당은 없고 대신 다음날은 반만 일하는 ‘Half-day’입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는 습관적으로라도 야근을 했었는데 여기는 그런 습관적인 야근이나 직장상사 눈치 보느라 하는 야근 같은 건 없습니다. 같은 업계에 다른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도 야근 같은 건 거의 없다고 합니다. 회사가 조금만 크면 물론 추가수당 역시 있고요. 휴가는 일 년에 얼마를 쓰는지 각자 다릅니다. 보통 크리스마스 시즌에 몰아 써서 여행을 갑니다. 저희 회사의 다른 외국인들은 휴가에 2주 정도 고향에 다녀오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일반적인 노동환경은 한국보다 훨씬 선진적입니다. 여유롭게 일한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만난 싱가포르 사람은 다른 서구 국가들의 노동환경을 부러운 듯 얘기하더군요. 자기들은 너무 힘들게 일한다고 하길래 제가 ‘한국이랑 일본도 있는데 너희가 그런 소리 하면 안된다’ 이러니까 웃으면서 ‘한국·일본사람들 일 많이 하는 거 자기도 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싱가포르의 노동환경이 어떤 면에서 많이 선진적이지만 고용자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수 있는 점이나 취약한 노조는 서구의 그것과 또 다릅니다.” ■ IT맨의 사직서 기사를 보면 한국 IT업체의 간부들이 업무 파악이 형편없고 프로그램 개발에서 기획이 전혀 없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싱가포르는 어떤가요. 개발 업무가 철저히 기획에 의해 움직입니까. 어떤 식으로 기획이 되는지요 “전에 다녔던 회사도 지금 다니는 회사도 큰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 경우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도 IT맨 기사의 그분처럼 고되게 일하진 않았습니다. 야근도 많지 않았고 주말에도 쉬었습니다. 싱가포르는 상명하복 같은 수직적인 조직구조가 없기 때문에 업무에 있어서 IT맨 기사처럼 비효율적인 경우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 부조리는 한국만의 특수한 문제라고 봅니다. 실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그에 걸맞지 않게 높은 자리에 있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 한국 IT 기업의 많은 야근들이 원청의 무리한 요구 횡포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싱가포르도 이런 원청의 횡포가 있습니까 “한국의 모바일 업계에서 거대 이통사들이 하청업체와 기술제공 업체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상황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휘두른다고 하기보단 이통사들이 가진 거대한 힘 때문에 작은 회사들 스스로 어쩔 수 없이 휘둘린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야근 같은 경우도 윗사람들이 보기엔 직원들을 가장 간편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죠. 어차피 원청회사에서 들어오는 돈은 한계가 있고 이제 할 수 있는 건 직원들의 노동력을 있는 대로 짜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일의 효율이라는 게 근무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야근을 하고 주말도 받쳐가며 일을 하는 건 적어도 눈에 보이는 거니까 위에서 보기엔 그나마 안심이 되고. 그런데 직원들은 힘들게 일하는 것도 일하는 거지만 윗사람들 눈치 보느라 할 일도 없는데 야근을 하기도 하고 여러 악순환들이 계속 발생합니다. 물론 이건 고용주 한 사람만의 잘못은 아닐 겁니다. 누구 하나를 탓할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병폐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계속 덮어두고 갈 문제도 아닙니다. 일단은 초과 근무시간에 해당하는 보상이 큰 회사부터 작은 회사들에게까지 이루어질 수 있게 법적인 장치가 빨리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가끔 노동자들의 시간 외 추가노동이 경제를 위해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하는 정치인들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땐 한국의 현실이 무섭기까지 합니다.” ■ 싱가포르 사람들은 퇴근 후나 휴가를 어떻게 보냅니까 “음주문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정기적인 회식이라든지 음주 후에 따르는 여러 가지 유흥문화, 이런 게 없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한국이나 일본의 문화보다 서구 쪽에 훨씬 가깝습니다. 결혼을 한 사람들은 굉장히 가족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저 정도의 나이의 젊은이들 문화 역시 굉장히 건전합니다. 포켓볼을 친다던지 TV가 있는 야외 식당에 모여서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보거나 하면서 놉니다. 술이 곁들인 자리라면 펍에서 맥주 한잔정도를 한다던지 아니면 클럽에서 술 한 잔 하고 춤추고 노는 정도입니다. 음주문화라고 한다면 법이 엄해서 그런지 한국처럼 막가는 분위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문화가 없습니다. 휴가 때는 여행을 주로 갑니다. 최근에는 한국이 매력적인 관광지로 꼽히는 분위기입니다.” ■ 한국에 다시 돌아오실 생각은 있습니까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한다면, 또 허락 된다면 계속 외국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저한테 맞는 것도 있고 또 더 재밌습니다. 일 때문에 가게 되지 않는다면 대선 때 투표하러 가고 싶습니다.” ■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느끼신 점이 있으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 흔히 하는 외국과의 비교를 통한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을 저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약 서구선진국에서 첫 외국직장생활을 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서구 선진국가와는 또 차이나는 싱가포르에서 일하면서 조금 중용적인 시선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이를테면 척박한 근무환경과 과도한 업무 같은 것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후발주자 위치에서 어쩌면 비극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선진국과 비교해가며 그저 비판만 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문제는 지금부터죠. 한국의 노동환경이 문제가 있다는 건 이제 모두가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께 얘기하고 인식하고 합의를 이끌어가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도가 그걸 뒤따라가려면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간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 야근은 한국경제의 동력이 아니라 장애이고 수치일 뿐 얼마 전 한국의 장시간 노동빈도가 세계 2위라는 ILO의 보고서가 각 언론에 기사화 된 적이 있다. 당시 기사에서 익명의 관계자는 “선진국은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경쟁력을 노동시간 위주에서 자본집약적 방식이나 작업조직의 개편 등을 통해 확보하는 쪽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으나, 한국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노동시간 위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세계 평균에 크게 떨어지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라면서 “조직의 문화로 인해 노동시간을 줄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대체로 후진국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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