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으로서 녹취록의 내용을 알리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국회의원이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은 것인지 재판부가 기준을 제시해 달라. 저는 똑같은 상황이 반복돼도 마찬가지로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삼성 X파일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을 근거로 전·현직 검사의 ‘떡값수수 의혹’을 제기했던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장에서 이같이 말했다. 노 의원은 지난 2005년 8월 18일 국회 법사위원회 발언을 앞두고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안기부 X파일에서 삼성그룹의 떡값을 받은 것으로 언급됐다’며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 5월 노 의원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과 명예훼손으로 기소했다. “허위 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고 적법하지 않은 절차로 입수된 타인 사이의 대화 녹음 내용을 누설하게 되면 처벌한다”며 “당시 보도자료를 발표·배포했고 인터넷에 실명도 거론했다”는 것이 검찰의 기소 이유다. 안기부 X파일 사건은 2005년 MBC 이상호 기자가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당시 큰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국정원의 불법도청 실태가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삼성그룹의 전방위적인 로비의 실체도 밝혀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검찰은 “불법적인 증거자료는 증거자료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이 사건의 실체를 완전히 밝혀내지는 못 했다. 그러면서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4부(김득환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11일 ‘안기부 X파일’ 내용을 보도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상호 MBC기자에 대해서는 “X파일 사건의 보도행위는 공적인 관심사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는 정당행위로 판단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노 의원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보다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지낸 전·현직 검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쪽에 무게가 쏠리는 양상이다. 하지만 노 의원은 명예훼손을 판단하기에 앞서 노 의원이 제기한 의혹들을 과연 검찰이 충분히 수사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 노 의원, “명예훼손 판단하려면 사실부터 규명해야 하지 않나” 노 의원은 “이명박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사건과 관련해서 명예훼손으로 고소가 있자,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 검사는 ‘명예훼손 여부를 다루려면 사실규명이 필요하다. 신속한 실체규명을 위해서 모든 수사방법을 동원하겠다’라고 공언한 바가 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그런데 똑같은 명예훼손 사건인데 제가 고소된 사건과 관련해서는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 과연 검찰은 어떠한 수사방법을 동원했는가”라며 “검찰은 실체적 진실규명의 노력 없이 명예훼손과 관련해 저를 유죄로 기소한 것은 대단히 모순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검찰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씨, 이학수 씨 등을 비롯해 이른바 떡값수수의혹 검사 20여명을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서도 “안기부 X파일은 불법으로 수집된 증거이므로 그것을 수사의 단서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 의원은 “불법으로 수집된 증거라 해서 수사의 단서로는 삼을 수 없다고 하면서 그 내용을 제식구들 감싸는 데는 유감없이 사용했다”며 “검찰이 과연 이 나라의 국가기강을 세우는 집단인지, 아니면 자기 패거리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활동하는 기관인지 국민들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검찰을 강하게 질타했다. ■ 노 의원, “국회 회기중에만 소환 통보 이유는 무엇인가” 한편, 노 의원은 검찰 수사과정에 왜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8~9번 정도의 소환 통보가 있었는데, 검찰은 국회 회기중에만 소환통보를 했다”며 “회기중이므로 소환에 응할 수 없으니 비회기에 가겠다고 서면통보를 매번했음에도 비회기에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이어 “지난 5월 17일 단 한번 비회기중에 소환통보가 왔는데, 그날 광주 5·18 묘역에서 당의 중요한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갈 수가 없다고 서면으로 통보를 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5월 20일 전격기소가 된 걸로 보아, 기소를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비회기에 소환통보를 했다”며 “전화 한 통이면 다른 날로 협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절차 없이 바로 나흘 후에 기소방침을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노 의원은 “검찰의 수사만 종결됐을 뿐 X파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계속해서 앞장서려고 한다”며 “X파일 테이프 공개와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련된 법안이 여야 주요정당들에 의해서 3개나 국회에 상정되어서 계류중에 있다”고 말했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