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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과‘공구리 정신이’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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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호 ⁄ 2007.07.16 13:24:21

참여정부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사회적 자본’, ‘사회자본 투자’라는 것이 있다. 사회적 자본은 지금까지 자본의 영역에 분류되었던 인적 자본, 물적 자본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개인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며, 오랜 시간 동안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자원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좀 더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윤활유처럼 연결해서 공동이익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자산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비용을 사용하는 것을 사회자본 투자라고 한다. 가장 간단한 예로 복지지출 같은 것이 이 부분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예전에는 복지지출을 비용의 측면에서 보았다면 지금은 투자의 개념으로 보고 ‘사회자본 투자’라고 하는 것이다. “나에게 긴 지렛대와 지렛목을 놓을 자리만 준다면 지구라도 움직일 것이다.” 이는 아르키메데스가 지렛대 원리를 발견하고서 한 말이다. 인간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도구를 발명했고, 도구는 모든 생활의 중심에 서 있다. 무한경쟁 시대가 되면서 도구의 개념도 확대되었고, 이제 21세기는 사회적 자본이 가장 중요한 도구, 즉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수한 인적 자본, 처참한 사회적 자본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까지는 인적 자본이 성장의 동력이었다. 1960년대 우리나라 기업 현실은 암울했다. 예컨대 봉제회사의 경우를 보면 그들이 보유한 물적 자본은 재봉틀 몇 대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 기업들은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일하는 수준 높은 근로자들을 확보하고 있었고, 이들이 정성껏 만든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인기리에 팔려나갔다. 이런 현상이 경공업 분야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로 발전한 것이다. 세계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성장한 한국을 인적 자본에 의한 성공 모델로 평가한다. 그에 비해 우리의 사회적 자본은 우리의 사회적 자본실태는 처참할 정도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신뢰에 있다. 그러나 한국은 사회적 신뢰수준이 극히 낮고, 공적제도에 대한 신뢰성은 훨씬 낮다. 사회 신뢰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스웨덴이라고 한다. 가장 신뢰도가 높은 스웨덴이 6.63, 일본이 4.31, 미국이 3.36인데 비해 한국은 2.73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곳곳에는 늘 좁히지 못할 간극이 존재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작은 정책을 추진할 때도 당장 눈앞의 이익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대치하기 일쑤이다. 반목과 갈등의 반복은 당연히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고 미래를 향한 꿈을 접게 한다. 이런 부작용을 가장 많이 양산하는 곳이 정치권이지 싶다. ■복지예산 증가는 필수, 거꾸로 가는 한나라당 이런 의미에서 복지예산의 증가는 필수적이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불균형이 확산될수록 더욱 그러하다.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 주도적으로 대처하며, 내부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얼마나 복지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지는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나라를 확 바꿀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심상정 의원의 참여정부 복지정책에 대한 비판을 자주 접한다. 이건 비판이 아니라 비난에 가깝다. 방향이 맞다면 목표치만큼 성에 차지 않더라도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고 압박하는 게 훨씬 유용한 방법이다. 이렇게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때에 거꾸로 달리는 무리들이 있다. 다른 대안이 없다. 무조건 감세로 해결하고 복지 비중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복지공약을 내 놓고 있다. 정말 헷갈린다. 재원은 모두 감세로 그리고 절약해서 만든다는 방안이다. 계산해 보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공약 예산을 모두 감세를 하고도 예산을 아껴서 충당할 수 있단다. 계산기만 두드릴 수 있다면 누구나 말이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 정확한 수치는 안 내 놓고 얼버무리기 일쑤이다. 왜 모당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아직도 공구리 시대의 향수에 젖어 있고, 공구리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땅 파고 물 내는 것으로 모든 경제, 사회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그들의 머리가 부럽기까지 하다. 그러니 구체적 계산이 뭐가 필요하랴. 세금은 줄여도 할 일 다 할 수 있고, 규제만 풀면 자연히 경제가 살아나고 잘 사는 나라 금방 되는 데. 하나 더 있다. 공권력은 키워 분위기를 3공으로 가자는 거다. 땅 파다보면 일자리 생기고, 일자리 생기면 잘 살게 되고, 그러면 성장률은 7%씩 팍팍 뛰고, 당연히 국민소득이 4만 불은 식은 죽 먹기. 또 뭐 있나? 무협지 같은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공구리 정신으로, 국가발전을 위한다면 함께 가는 사회로, 이렇게 줄을 서는 것이 맞지 않을까? <김만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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