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대량 계약해지와 외주화로 불거진 홈에버·뉴코아·킴스클럽 등 이랜드그룹 유통업체의 점거농성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랜드 일반노동조합원 300여명은 지난 달 30일부터 홈에버 상암동 월드컵몰점에서, 뉴코아 노동조합원들은 서울 잠원동 뉴코아에서 지난 8일부터 점거 농성중이다. 노조는 15일 개장하는 광주 홈에버 매장에서도 농성을 벌이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노동당도 “12일부터 15일까지 전국 60여개 이랜드그룹 지점들에서 불매운동 1인시위를 벌인다”고 밝히고, 민주노총도 대대적인 이랜드 상품 불매운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10일 이랜드 노사는 교섭을 진행했다. 하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과 비정규직 외주화 철회를 요구하는 노조에 대해, 이랜드 사측은 ‘농성을 먼저 풀라’면서도 노조 지도부 등에 1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소송 청구는 포기하지 않는 등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유통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태변화’에서, “한국 사회에서 유통서비스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지난 몇 년간 거의 변화된 바 없으며 특히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 자본은 경총의 비정규직 대처방안을 이행하기로 하듯이 비정규직 차별시정과 정규직화를 회피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외주화했다”고 비판했다. ■ 휴지조각처럼 버린 고용승계 약속 이랜드 그룹은 지난해 4월 까르푸(현 홈에버)를 인수하면서 고용승계를 조건으로 인수에 성공했지만 이 약속은 ‘헛 약속’이었다. 이랜드는 당시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유통점 업계 1,2,3위 업체들을 제치고 까르푸를 인수했다. 이랜드는 당시 인수 희망가액으로 1조 7500억원을 제시했지만 인수업체 선정이 유력했던 롯데마트는 그보다 500억∼1500억원 많은 1조8000억∼1조9000억원을 제시해 까르푸 인수는 롯데마트 측이 더 유력한 듯 보였다. 하지만 까르푸는 이랜드측에 인수됐고, 이런 역전극은 이랜드가 롯데마트가 꺼려했던 고용승계를 보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노동계와 유통업계의 평가다. 까르푸 노조와 까르푸는 ‘18개월 이상 근무한 계약직 조합원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해지할 수 없다'’는 요지의 단체협약을 맺었고, 이랜드는 이를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권순문 이랜드개발 대표이사는 까르푸 인수 후에도 “고용유지는 기본원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랜드는 지난 5월 계약만료를 이유로 계약직 노동자 15명을 계약해지했다. 사측은 ‘인수 시점을 기준으로 이들이 18개월 이상 근무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6월 20일 15명의 해고와 관련, 호혜경 조합원 등이 제기한 구제신청한 사건에 대해 “사측의 조치는 부당해고”라며 복직명령을 내렸다. 또한, 이랜드는 본인이 희망할 경우 통상적으로 재계약하던 방침에서 벗어나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즉시 계약해지함으로써 올해 6월까지 400여명을 계약해지했다. ■ 노무현 대통령 왜 침묵하나 노사분규는 노사자율주의에 따라 노사 간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고 정부의 비정규직법으로 인한 사태이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동부의 중재 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등 범정부 차원의 해결책 마련이 필요할 때라고 지적한다.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 권영길·노회찬·심상정 의원도 지난 12일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며 사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권 의원은 “비정규 악법을 만든 사람 가운데 하나는 노 대통령이다”며 “이 법을 잘못 만들어서 결국 홈에버 노동자들과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고 비판했다. 노회찬 의원도 “매사에 말 많던 노무현 대통령이 홈에버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2주가 다 되어가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침묵은 이랜드 비정규직 탄압에 뜻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심상정 의원은 “노무현 정부가 만들어 놓은 악법에 의해 비정규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번지는 이때, 혹여 공권력을 투입하여 사태를 해결하려 한다면 노무현 정권은 비참한 말로를 맞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뉴코아 시흥점에서 점거농성중인 한 여성조합원에게 7월 12일 남편이 보내 온 편지 <약한 사람으로만 생각했었는데 파업에 동참하는 것을 보고 새삼 놀랬지> 깊은 이 밤에 박스를 깔고 잠자리에 든 당신을 생각하며 씁니다. 쉽게 생각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하는 당신의 모습을 볼 때 안쓰러움이 듭니다. 모든 게 내 탓인 것을요. 기왕 시작한 일 잘 이루어 졌으면 좋겠고 건강 해치지 않게 먹는 것에 각별히 조심하고요. 큰 놈 멀리 보내고 마음도 허전한 이때에 이런 일까지 생겨 당신 마음도 뒤숭숭 하겠지. 하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정도를 지켜온 당신이기에 항상 행운이 당신 곁에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며칠전 뜻하지 않게 당신의 편지를 대하고 따뜻한 마음에 살아가는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한편으론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뿐이었소. 항상 당신의 포근한 사랑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쩜 이 글을 읽을 때 쯤이면 박스를 깔고 잠을 청하지 않을지. 바로 지금 이 편지를 읽는 이 시간이 45번 째 맞이하는 당신의 생일 인 것을요. 생일날 아이들 같이 좋아하는 당신인데 박스 깔고 잠자리에 들게 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혜도 엄마 선물 때문에 걱정이 되는가 봅니다. 물론 돈이 없어서겠지만, 나 역시도 고민이 약간 되긴 하지만 이불 하나 사주면 안 될지? 약한 사람으로만 생각했었는데 파업에 동참하는 것을 보고 새삼 놀랬지. 당신은 날보고 허락 안하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아직도 남편을 모르나봐. 당신이 그렇듯 나 역시 당신을 믿고 사랑하고 항상 당신 편입니다. 그래야 나이 먹어서 당신이 같이 놀아주지요. 14일 날을 쉬면 안 될까? 그래야 13일에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하지요. 모쪼록 조속히 매듭이 지어지길 바라고 오늘 생일을 타지에서 혼자 맞게 해서 미안하고 축하합니다. 사랑하고요. 지금껏 처럼 앞으로도 포근한 여인으로 사모하며 살 것입니다. 예쁜, 건강한 두 딸 낳아준 것도 고맙고요. 생일 축하해 여보.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