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비어(陳碧娥) 대만 ‘군중인권촉진회’(軍中人權促進會) 대표가 12일 한국을 방문해 국내 군경 의문사 유가족들과 만났다. 대만의 평범한 주부에서 군 인권활동가로 활약 중인 천 대표는 대만에서는 ‘황마마’(황 씨 성을 가진 아이의 엄마란 뜻)로 더 유명하다. 1995년 6월 군복무 중이던 아들 황궈장(黃國章)이 배에서 뛰어내렸다는 군 당국의 설명과 달리 며칠 뒤 발견 된 아들의 시신은 상처투성이에다 머리엔 쇠못이 박혀 있었다. 군대문화와 관련 법률까지 공부하면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그녀를 대만 ‘군인의 어머니’로 거듭나게 했다. 한 때 ‘미친 여자’라는 비난까지 받았던 그녀는 이젠 대만 군인권 개선의 상징이 됐다. 대만 국방부도 그녀를 국방정책의 입안·집행 감독기구인 ‘관병권익보장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천비어 대표는 강연에서 아들의 죽음 당시 겪었던 아픔을 이렇게 회상했다. ■ 대만 400명의 군내사망자수 절반으로 ‘뚝’ “진실을 밝히려 군대와 접촉하려 노력했고, 그때서야 병사들에 대한 대우가 얼마나 가혹한지 알게 됐습니다” “난 군내 사망 사고의 진실을 규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또 보상 기준은 얼마나 터무니없이 엄격한 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군인의 인권보호를 촉구하는 싸움을 벌이게 됐습니다”
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군의문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 못했다. 그녀는 “당시에 놀란 것은 대만에서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군대에 있으면서 400명 이상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과 국방부장관이 이를 속이고 있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결국 천비어 대표는 1998년 3월 25일 국방부장관 면담을 통해 군인 보험제도 도입을 요구했다. 그해 7월 1일 모든 장교와 사병을 위한 사고보험이 실시됐고, 등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수령 가능한 보험액은 2000년 현재 350만 대만화(약 9,800만원)이다. 또한 중증장애를 입은 군인을 위한 종신 보호제도가 도입돼 전역한 뒤에도 무료로 치료받고 요양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군내 사망사건의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운동을 꾸준히 벌였다. 결국 그녀의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대만에서 1995년에 408명에 달했던 군내 사상자 수는 1999년엔 270여명, 2002년엔 200명으로 줄었다. 천 대표는 “아직 사망 사건의 조사결과가 유가족이 받아들일 정도로 밝혀지진 않았다”면서 “군대가 사망사건 문제를 전보다 공개하고 있으며,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황궈장 사건 때보다 훨씬 나아진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12년동안의 싸움,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그녀는 군내 인권문제를 일깨우는 험난했던 12년의 세월이 “결코 혼자만은 아니었다”고 회상하며 국내 군경의문사 유가족들을 격려했다. “곡절 많은 시간을 지내며 낯모르는 따뜻한 분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분들은 인생과 용기, 지식에 여러 면에서 받쳐주고 이끌어주었습니다.” 현재 대만에는 우리나라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같은 국가기구는 없지만 유가족들이 주축이 된 민간단체의 활동이 활발하다. 그녀는 “한국 정부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립하고 진상규명 노력을 하는 것에 존경을 표한다”면서도 “정부가 빠른 시간 내에 유가족들에게 진상을 객관적으로 밝히고 공정하게 유족들의 상황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