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을 조성해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에게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이 사회봉사를 어디에서 실시할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정 회장의 사회봉사활동을 여수엑스포 유치활동에 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은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사들의 부당지원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63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이와관련 서울고법 형사10부(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6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정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사회공헌 약속의 성실한 이행,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전경련회원 상대 강연, 일간지 등을 통한 기고 등의 사회봉사명령을 함께 내렸다. ■해외활동에는 지장 없다 참여연대는 ‘역시나’ 규모가 큰 재벌총수일수록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러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는 그동안의 관행에서 사법부가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화이트칼라 범죄를 비롯한 기업범죄에 대해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는 사법부의 공언도 재벌총수 앞에서는 맥을 못춘 것에 비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 회장에게 적용된 죄명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으로 최저형량이 5년이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는 징역 3년형을 선고했고, 2심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1심에서 선고된 징역 3년형이 지나치게 가혹하다할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이를 집행유예형으로 바꾼 것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만 가중시켰다. 특히 실형선고 대신에 부과한 사회봉사명령 내용은 황당하다. 전경련 회원사 등을 대상으로 준법강연을 펼치라고 하는 사회봉사명령이 실형선고를 대신할 만한 것이라 볼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재판부는 사회봉사명령과 사회공헌기금 제공을 언급하면서 재능과 재력이 있는 피고인은 그같은 재능과 재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는 재벌총수와 같은 이들은 얼마든지 돈으로 처벌을 피하거나 감면받을 수 있는 길을 법원이 보장해주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막는 것도 시급한 상황에서 이를 더 조장하는 재판부의 주장에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고 참여연대는 말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6일 현대·기아차 그룹의 부당내부거래 혐의를 조사한 결과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글로비스, 현대제철 등 5개 계열사가 현대카드와 로템 등 다른 계열사들을 부당하게 지원한 사실을 적발해 631억5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현대차가 508억100만 원으로 가장 많고 기아차는 61억5400만 원, 현대모비스 51억2900만 원, 글로비스 9억3400만 원, 현대제철 1억3천900만원 등이다. 모비스로부터 자동차 새시모듈부품을 납품받던 현대차는 지난 2003년 6월 철판과 주철, 고무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모듈부품의 재료비를 8.5% 인상하기로 했으며 작년말까지 현대모비스에 소급분 320억1900만 원을 포함해 총 1067억8500만 원을 인상 지급했다. ■과징금 마련 위해 정 회장일가 주식처분해야 공정위는 그러나 모비스가 재료비를 올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에게는 재료비를 인상하지 않았고 당시 재정상황이 어려웠던 기아차는 모비스에 대한 재료비를 인상하지 않았으므로 이는 재료비 인상명목을 이용한 계열사 자금지원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대차는 2002년 10월말 모비스가 공급하는 모듈부품 단가를 인상키로 하고 기아차가 모비스에 인상해 지급해야 하는 196억원을 대신 지급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차와 모비스, 글로비스 등 3개사는 현대카드에 대한 지원을 위해 2003년 8월부터 작년말까지 66개 납품업체에 대한 구매대금 8674억6600만원을 현대카드가 발급한 법인카드로 결제했고, 이로인해 납품업체들은 총 161억9900만원의 가맹점 수수료를 현대카드에 지급해야 했다. 이와함께 현대차와 기아차는 2004년초부터 약 2년간 자동차용 강판 생산업체인 현대하이스코에 대해 냉연강판과 도금강판 가격을 타사의 가격보다 t당 3만5724∼5만3259원 높은 수준으로 정해 지급했다. 기아차는 프레스 및 자동차 운반설비 제작공사를 최저가 경쟁입찰에 부치면서 입찰에 참가한 업체들이 제시한 최저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계열사인 로템에 공사를 발주했다. 또 현대차·기아차·모비스·현대제철 등 4개사는 정의선 사장이 최대주주인 글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2001년 3월부터 작년 말까지 사업양수도나 수의계약 방식으로 1조3637억원에 달하는 물류거래 계약을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유리한 조건을 갖춘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부당지원행위를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자체 경쟁력이 아닌 재벌그룹 소속이라는 이유로 기업의 성패가 결정되는 부당 지원행위에 대해서는 제재를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물량몰아주기 행위에 대해 참여연대는 지난해 4월 11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참여연대는 이들 고발사건에 대해 조속히 수사하여 기소할 것을 촉구했다. <김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