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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진주 평거동유적에서 최대 선사·고대 경작유구발굴

집자리는 자연제방의 상면에 경작유구는 자연제방의 전·사면이나 배후저지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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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호 ⁄ 2007.11.05 15:48:39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는 지난 해 11월 1일부터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진주 평거 3지구 택지개발사업지구(Ⅰ구역)에서 구석기시대 유물 16점, 신석기시대 생활유구 12기, 청동기시대 생활유구 45기·매장유구 5기·의례유구 1기·밭, 삼국시대 생활유구 104기·논·밭, 고려~조선시대 밭, 조선시대 논, 시기불명의 수혈 34기와 주혈군 등 대규모의 유물과 유구가 확인되었다. 국내에서 발굴된 것 중에서 최대 규모의 경작유구로 파악되고 있다. 평거동유적은 남강댐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남강에 의해 퇴적된 충적지 및 배후 구릉의 기슭에 입지해 있다. 이는 다양한 퇴적환경 및 지형에 유적이 입지하는 것으로 지형에 따른 유구의 배치관계를 잘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집자리는 자연제방의 상면에 주로 입지하며, 경작유구(논·밭)는 자연제방의 전·사면이나 배후저지에 배치되어 지형에 따른 입지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규모의 취락은 크게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에 형성되었으며, 남강변의 자연제방과 배후저지를 중심으로 넓게 분포한다. 청동기시대 취락은 집자리(전기·후기)와 구덩이, 도랑 등으로 구성되며, 무덤(돌널무덤·고인돌)과 의례유구도 확인된다. 이 중 전기 집자리는 청동기시대 집자리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각목돌대문토기가 출토된다. 후기 집자리는 휴암리형 집자리로 민무늬토기·돌화살촉·돌창·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구양상은 보다 상류에 위치한 진주 대평리유적에서도 대규모로 확인된 바 있어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취락은 타원형집자리와 방형집자리에서 광구소호·연질소옹·연질고배편·단경호·파수부토기편·회청색경질토기편 등이 출토되었으며, 시기는 토기의 기종 구성과 형태 등으로 보아 4~5세기대에 해당된다. 경작유구(논과 밭)는 청동기시대~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현재까지 한국에서 발굴조사된 유적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논은 Ⅰ지구에서 확인되었으며, 현재 삼국시대 상층논을 조사중이다. 확인된 면적은 약 13,000㎡ 정도이며, 아래층으로 삼국시대 하층논과 청동기시대 논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삼국시대 상층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둑을 경계로 논과 밭이 함께 확인되어 주목된다. 이는 당시의 논농사 기술을 보다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밭은 Ⅰ·Ⅱ지구의 자연제방 전·후사면에 중층적으로 분포하며, 확인된 면적은 약 72,000㎡ 정도이다. 특히 Ⅰ지구에서 확인된 밭은 청동기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까지 층위별로 분포하고 있어 농업기술의 변화양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농지확보, 농사기술, 생산량, 식료상태, 경제활동, 사회구조 등 다양한 문화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중에 있어 유적에 대한 대략적인 양상만이 파악되었으며, 조사가 완료되면 보다 정확한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중층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경작유구인 밭은 청동기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까지 시대별 층위양상을 구분하여 분층조사 중으로 우리나라 농경문화를 파악하는데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김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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