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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동아일보, 청와대 입 통해 잃어버린 27년 탈환

김병관 회장, 측근 이동관 적극 지원 청와대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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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호 ⁄ 2008.02.11 18:02:18

‘옛날 중국 진(秦)나라 때 조고(趙高)라는 간신이 있어, 황제 호해(胡亥)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강변했다.’ 이는 고사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인가. 공무원 사회에서는 청와대 홍보수석실을 두고 ‘특명전권수석실’이라 부를 정도로 홍보수석실은 그 위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무소불위로 군림하고 있다. 언론계에 이어 정치권, 나아가 시민단체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정부의 ‘브리핑룸 통폐합’안이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위세가 드러났다. 홍보수석실이 이렇듯 위세를 부리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엄호’아래서 국정 전분야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180도 되돌리려는 이명박 정부. 이를 위해 국정홍보처가 폐지되고, 언론정책은 원래대로 문화관광홍보부로 이관된다. ■ 이동관, 의원 접고 ‘울며 겨자 먹기’ 대변인으로 이에 따라 청와대의 입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 대변인실의 위상이 다시 높아질 전망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서 핍박 받아온 조·중·동 소위 3대 일간지가 청와대의 대변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암리에 혈투를 벌여왔다. 특히 이명박 당선인이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인 신문을 즐겨 읽어, 이들 3대 일간지는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잃어버렸던 10년을 찾을 절호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김대중 정권 시절 왕수석으로 불리우던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 이동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 낙점됨에 따라 일단 조·중·동 싸움은 동아일보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1980년까지만 해도 동아일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언론사였지만, 전두환 정권 들어 조선일보에 1위의 자리를 내주고, 지난 1990년부터는 그나마 중앙일보에 밀려 3위 신세로 전락했다.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1위를 탈환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특히 같은 호남 출신인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동아일보는 1위의 기회를 잡은 듯했으나, 삼청동의 부지 관계로 틀어져 적과의 동침을 해야 했다. 게다가 언론사 세무조사로 인해 김병관 회장은 아내까지 잃는 치욕을 당했다. 이러한 충격으로 김병관 회장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주인 없는 CEO를 앉혀 사세확장에 마이너스가 됐다. 고려대학교의 대주주인 동아일보는 이번 대선기간 동안 고려대 출신인 이명박 후보를 적극적으로 밀기로 하고 김병관 회장의 최측근인 이동관 기자를 이명박 캠프에 파견, 동아일보의 위세를 회복하는데 적극 활용했다. 이러한 결과로 동아일보는 대선기간이나 대선이 끝난 후에도 각종 특종 기사를 싣기도 했다. ■ 조선일보 독식시대 막 내리나 정치인이 태어나서 딱 한 번만이라도 하고 싶은 직이 국회의원이다. 이동관 특보도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희망했다. 그러나 김병관 회장의 “청와대 대변인을 맡아야 한다”는 특명을 무시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인수위 대변인에 앉았고, 차기 청와대 대변인 의자를 차지했다.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 기구 축소의 일환으로 홍보수석실을 폐지하고 대변인실로 낮췄다. 그러나 말이 축소이지 청와대 대변인은 왕수석으로 불린다. 왜냐 하면 국정홍보처가 폐지돼 청와대 대변인이 각종 언론사를 상대하는 기관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청와대 대변인을 놓고 조·중·동 싸움에서 동아일보가 승리함에 따라 동아일보는 전두환 정권 때 조선일보가 청와대 대변인을 장악해 조선일보를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명예회복을 기필코 할 각오이다.

특히 ‘해병대’ ‘호남향우회’와 함께 3대 마피아로 통하는 ‘고려대 교우회’가 동아일보의 뒷전에서 지원하고 있어 ‘이명박 정부’ ‘동아일보’ ‘고려대 교우회’ 3트리오가 3박자를 맞추면 1위 탈환은 문제 없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국정홍보처 폐지로 정부의 입이 청와대로 쏠림에 따라 이동관 차기 청와대 대변인의 비중이 높아지고 각 기관의 언론정책에도 관여할 수 있는 힘이 있어 왕수석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이런 힘을 배경으로 동아일보는 전두환 정권 때 조선일보가 청와대의 입을 대변해 오면서 각종 사업과 사세를 확장 해온 구도를 통째로 장악, 잃어버린 27년을 회복한다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 이명박은 ‘신문광’…오프라인 시대의 부활 이명박 당선인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을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에서는 종이신문의 사세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당선인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신문 10여 종을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읽는다고 한다. 이 당선인의 신문 탐독은 기업 최고경영자 시절부터 이어지는 습관이어서 활자문화에 애착을 갖고 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댓글 대통령’이란 별명까지 달았다. 이런 탓에 노 대통령은 e-메일 정치를 해와 신문은 찬밥 신세였다. 이런 탓에 노 대통령의 전위부대인 홍보수석실은 ‘미디어 오늘’‘한국일보’출신으로 구성됐다. ‘미디어 오늘’ 출신은 비서관으로 있다가 국정홍보처 차장으로 자리를 옮긴 안영배 씨를 비롯, 양정철 비서관, 정구철 비서관, 장현철 전 행정관, 백승훈 전 행정관, 구은정 행정관 등이다. 또 홍보수석을 지낸 이병완 전 비서실장과 컴백한 이백만 특보도 한국일보 출신이다. 그래서 정도(正道) 언론의 길을 걷도록 인도한 이들이 오히려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그래서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여당 위에, 국무총리 위에 군림하는 특명전권수석실로 통했다. 홍보수석실 한마디에 장·차관의 목줄이 추풍낙엽이 되는 상황이니, 모든 공무원들이 직속 상관보다는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김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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