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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여름엔 논에서 피 뽑고, 겨울엔 몸에서 피 뽑자”

헌혈하자던 한나라당, 정작 헌혈 행사장은 ‘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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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호 ⁄ 2008.02.11 18:11:46

지난 1월 10일 한나라당 전재희 최고위원이 혈액 부족의 심각성을 제기하면서 “어려운 부탁이지만 건강상태가 허락하는 한 당 대표님을 비롯한 지도부부터 헌혈에 동참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라는 말을 했다. 이때 기자들과 의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이라는 수식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언(流言)처럼 나온 이야기이지만 속개된 비공개 회의에서 전재희 최고위원의 제안으로 한나라당은 ‘사랑의 헌혈 캠페인’을 하기로 결정했다. ■ 적정 예비재고량 14일분, 실보유량은 하루분 기실, 혈액으로 인한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들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들이 하소연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수혈용 혈액의 부족 사태가 심각해서 수술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최근에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의 혈액 보유량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의 자료에 따르면, 인천혈액원의 혈액 확보량은 일일 평균 혈액 예상소요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혈액의 적정 재고량은 14일분인데, 2008년 1월 9일 현재 사용 가능한 혈액재고는 하루분 밖에 없다. 게다가 O형 같은 경우에는 0.6일분, A형도 0.6일분으로, 쉽게 말하면 반나절분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여의도 성모병원, 고대 구로병원 등 서울 서부지역 병원의 경우, 혈액을 공급하는 서부혈액관리원이 병원에서 10개를 달라고 하면 1.5개 또는 2개를 주는 실정이어서 나머지 환자는 수술을 못하는 상황이다. 혈액 보유량이 줄어들면 긴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제때 수혈을 받지 못해 더욱 위험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온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한 중국 동포는 당장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데 병원측에 혈액이 없어 수술이 지연되는 등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 심각한 일은 백혈병 등 혈액적합판정이 까다로운 질환을 겪는 환자들의 경우, 수술요건이 갖춰져도 신체조건에 부합되는 헌혈자를 찾지 못해 치명적인 상태에 빠지는 일이 일선 병원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 이한구 의원 “곧장 집에 가시라” 여하간, 한나라당은 1월 29부터 2월 1일까지를 한나라당 헌혈주간으로 선포하고, 29일에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중앙당 ‘희망충전 사랑나눔’ 헌혈행사를 가졌다. 헌혈에 대한 국민적 인식부족으로 헌혈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당이 먼저 모범을 보임으로써 국민의 실천을 유도한다는 취지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헌혈행사가 열린 29일 국회 헌정기념관은 다소 썰렁한 모습을 보였다. 중앙당 헌혈행사는 정몽준 의원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한 제5차 전국위원회를 마친 뒤 곧바로 실시됐다. 이날 강재섭 대표는 전국위원회 인사말에서 “우리는 수시로 피를 뽑아야 한다”고 헌혈에 대해 운을 떼면서 “적십자사에 피가 모자르다는데 한나라당이 뽑아야 한다. 건강한 전국위원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위해 피를 뽑고 돌아가길 바란다"며 위원들의 적극적인 행사참여를 주문했다. 그러나 뒤이은 이한구 정책위 의장의 말은 엉뚱했다. 강재섭 대표의 모두인사에 뒤이어 이한구 정책위 의장은 “강재섭 대표님께서 부적절한 발언을 하신 것 같다”면서 말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위원회가 끝나고 곧장 헌혈하라고 하셨는데, 곧장 집으로 가야지 곧장 헌혈하겠나. 곧장 댁으로 직행하시라”면서 농담을 건넸다. 좌중에서는 잠시 웃음이 터졌다. ■ 다량 헌혈 기대한 혈액원측 맥빠져 농담 때문인지, 강 대표의 우려대로 건강한 전국위원이 적어서 그랬는지, 전국위원회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인원수에 비해 이후의 헌혈 참여는 매우 저조했다. 이날 전국위원회에는 강재섭 대표 등 당내 주요 당직자를 비롯한 국회의원 70여명을 포함, 약 500여명의 전국위원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날 헌혈에 참여한 국회의원은 강재섭 대표와 이날 선출된 정몽준 최고위원, 권영세 나눔봉사위원장 등 세 명 밖에 없었다. 전국위원회에 참여했던 이상득 부의장, 김학원 최고위원 등 모범(?)을 보여야 할 여러 국회의원들이 있었으나 헌혈 행사장에서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 이번 헌혈 이벤트를 제안한 전재희 최고위원은 말라리아 지역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헌혈자 명단에서 빠져버렸다. “곧장 집으로 가자”며 농담을 건넸던 이한구 정책위 의장의 모습도 전국위원회 이후 보이지 않았다.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혈액보유량 제고를 통해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일에 일조하고자 한다”며 캠페인의 당위성을 주장하던 정종복 의원도 정작 캠페인 행사장에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모습을 감추었으니, 전국위원들이 자리를 지킬 리 만무하다. 전국위원회에서 정몽준 의원의 이름을 연호하던 수많은 전국위원들도 대부분 자리를 뜨고, 70명 정도만 헌혈을 하고 돌아갔다. 당 차원에서 먼저 사랑을 나누자는 취지로 마련한 헌혈행사에서 많은 혈액 수급을 기대했을 적십자 혈액원측은 다소 힘이 빠지는 모습이었다. 강재섭 대표는 이날 인사말에서 “저희들은 앞으로 국민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했다. 또한 헌혈대에 누워서는 “한나라당은 여름에는 논에 가서 피(잡초)를 뽑고, 겨울에는 몸에서 피(혈액)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피를 뽑아야 한다는 뜻은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실천하는 자세로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헌혈 행사의 취지는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고귀한 취지는 결국 한나라당에서 지양하고자 하는 ‘탁상공론’에 머물게 될 것이다. <박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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