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이만저만하지 않다. 불러도 제때 도착하는 일이 없는 장애인 콜택시 때문이다. 호출 후 차가 도착할 때까지 1~2시간 정도의 지체는 기본이다. 길게는 4시간까지 기다린 경험을 가진 장애인도 있다고 한다. 장애인콜택시의 이용대상은 지체장애와 뇌병변·정신장애 등 중증질병 1, 2급 장애인들이다. 모두 신체적으로 장시간 바깥에서 대기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이처럼 장애인택시가 중증 장애인들을 장시간 밖에 세워두는 일이 본격적으로 발생한 시기는 택시요금이 획기적으로 낮아진 지난 7월 1일부터이다. ■ 원래 2만원 거리가 4000원이면 “OK” 심각한 경기침체로 “월급 빼곤 다 올랐다”는 서민들의 푸념이 관용어처럼 쓰일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장애인택시 요금은 오히려 낮아졌다. 장애인 교통복지를 위한 서울시의 배려조치 덕분이다. 서울시는 장애인의 재활치료와 사회활동을 위한 이동 비용을 절감한다는 차원에서 7월 1일부터 장애인콜택시 요금을 대폭 인하했다. 장애인콜택시 요금이 도시철도 요금의 3배 범위로 인하돼 적게는 269원, 많게는 8843원 가량 싸졌다. 기본요금(운행거리 5㎞ 이내)도 이전의 1600원에서 1500원으로 인하됐다. 5㎞ 초과 운행부터 420m당 또는 103초당 100원씩 추가 요금이 붙었지만, 거리당 붙는 요금도 훨씬 싸졌다. 7월부터 12시 이후 붙는 할증료도 사라졌다. 택시기사들도 공단 측에 계약직으로 고용돼 있기 때문에 임금에는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택시 요금 절감효과는 괄목할 만했다. 서울 중심부에서 경기도 부천까지 보통 2만 원 가량 소요됐던 장애인콜택시 요금이 지금은 4000원이면 해결된다고 한다. 요금 산정 방식도 거리와 시간을 합산한 비용이 아닌 거리만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교통체증으로 거리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아도, 일반 택시처럼 요금이 계속 올라 전전긍긍할 일도 없어졌다. 장애인콜택시를 자주 이용한다는 2급장애인 박모 씨는 “장거리를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지하철이나 일반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저렴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일산에서 당산까지 오는 데에도 단돈 몇천 원이면 해결된다”고 덧붙였다. 고유가 시대 속에서, 휘발유 1리터로 10km도 가지 못하는 일반 승용차의 연비와 비교해봐도, 자가용을 이용하기보다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 서울시, 올해 증차 없을 듯…공급적체 일어나
택시 요금이 싸지니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려는 장애인 수가 급증하는 일은 당연지사. 장애인콜택시를 운영하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7월 1일을 기해 인하된 요금제가 적용되면서, 장애인콜택시 예약건수와 문의전화가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요금 인하 전인 지난 6월의 콜택시 이용 희망자는 1997명이었으나, 7월에는 2279명으로 282명 늘었다고 한다. 요금 인하 전보다 14.1% 가량 늘어난 수치이다.
수요가 늘어나면 공급도 함께 늘어나야 원활한 택시 서비스가 가능하다. 하지만, 서울시의 장애인콜택시 차량 수는 주간 185대, 야간 10대로 종전 그대로다. 택시 요금을 낮추기 전인 2008년 4월에 택시 수를 늘린 이후로는 증차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2010년까지 장애인콜택시를 300대까지 증차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올해 안에 장애인콜택시를 더 늘릴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은 종전 그대로인 상황에서 요금만 내리자,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급적체 현상이 벌어졌다. 호출 대기자 수가 많아지다 보니, 예상 대기시간은 빨라야 30분이고 1~2시간씩 늘어지게 된다. 호출한 지 10분 안에 도착하는 일은 100번 중 한 번 있기도 힘든 일이다.
2급장애인 정모 씨는 장애인콜택시 요금 인하 이후 처음으로 4시간 반 동안 빗속에서 택시를 기다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금이 내리고 나서 대략 20일 간은 편하게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점차 대기시간이 늘어나더니 몇 시간씩 기다려도 오지 않는 일도 발생하더라”고 말했다.
■ 요금인하 이후 ‘장거리 손님’ 늘어
7월의 새로운 요금제 시행 이후 ‘장거리 손님’이 많아진 현상도 본 취지와 다르게 대기시간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장애인택시를 6년 간 운행하고 있는 이호일 씨는 “7월 이후 서울 중심부에서 안양·일산·분당 등 외곽 도시까지 가고자 하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새 요금제에서는 운행거리에 따라 5∼10㎞는 ㎞당 300원, 10㎞ 초과 때부터는 ㎞당 35원씩 요금이 추가된다. 의료기관으로부터 먼 지역에 거주하는 특수장애인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택시를 이용하는 장애인으로서는 멀수록 싸지는 요율제 덕분에 10km가 넘는 거리를 운행하면 훨씬 유리하다. 그렇다 보니, 택시 한 대가 장애인 손님 한 팀을 받는 데에는 길게는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외곽 지역으로 나갔다가 서울 지역으로 다시 들어오는 데에도 짧지 않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장애인택시 기사 이 씨는 “서울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택시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손님을 받으려면 반드시 서울 안으로 다시 들어와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도 시간이 소요돼 대기 중인 장애인 손님을 더 기다리게 만든다”고 말했다.
또한, 선물을 전해주거나 약국 등에 다녀오기 위해 중도에 잠시 내려 용무를 보는 일은 허용돼 있다. 목적지까지 갔다가 출발지로 다시 돌아오는 ‘왕복’ 운행도 가능하다. 장애인콜택시를 한번 잡는데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용 장애인 박모 씨는 “일부 장애인들이 콜택시를 대기시켜 놓고 30분 이상 개인용무를 보는 일이 있다”며 “다음 차례의 이용 장애인들을 위해서 장시간 대기시켜놓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 장애인 가족이 콜택시 불러 시장 가기도
장애인 보호자나 가족 등 일반인 이용자들의 장애인 콜택시 편법 사용도 대기시간이 길어지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반인 입장에서도 장애인콜택시는 일반 교통수단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장애가족의 용무가 아닌 자신의 개인사를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부 장애인의 가족과 지인들은 장애인택시를 이용해 마트나 백화점에 쇼핑을 가기도 한다. 일반인의 편의를 위해 장애인들의 교통 이용권이 침해당한 사례이다.
장애인택시 기사 이모 씨는 “장애인 아이를 둔 일부 엄마들은 시장 보러 가는 일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일에 택시를 부르기도 한다”고 편법이용 사례를 들었다.
아침에 배우자나 가족들의 출근을 위해 장애인택시를 호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2급 이상 장애등급을 받은 노인들은 손주들의 등하굣길을 바래다주기 위해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기도 한다는 것.
콜택시 이용 장애인 박 씨는 “동승한 가족이나 친구들을 목적지에 내려주고 도로 집으로 돌아오는 장애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1급 장애를 겪고 있는 근육장애인협회 정영만 기획실장은 “불법이 아니라도 다른 장애인들의 편의를 해친다는 의미에서 편법행위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기획실장은 택시 기사가 장애인의 편의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택시를 호출한 이용자들에게 페널티 점수를 주는 ‘고객평가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물론, 서비스 제공자에게 손님을 평가할 권한을 주는 일이 이용권을 해칠 우려가 있지만, 택시 이용자들의 인식변화와 보다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서라면 고육책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안이다.
■ 사전예약제 활성화 및 행정 유연성 필요
장애인콜택시의 사전예약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장애인들의 대기문제 해소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제안도 있다. 장애인택시의 사전예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라 즉시호출만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수도 적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용 장애인들은 택시를 즉시호출하더라도, 대기시간을 고려해 예상 도착시간보다 1시간 가량 여유를 두고 호출한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택시가 5분 만에 도착해 뜻하지 않은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정영만 기획실장은 “호출부터 해 놓고 외출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택시가 예상 외로 일찍 도착해 기사 분을 30분 가량 기다리게 한 일이 있다”며 “결과적으로 다른 이용 장애인이 쓸 수 있는 시간을 더 허비한 것”이라며 예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공단 측에서는 하루 전이나 한 시간 전에 택시예약을 접수하고 있다. 그러나, 밤 12시 이후에는 예약이 접수가 되지 않고, 한 시간 전 예약 역시 1시간을 넘는 시간에는 접수가 안 된다고 한다. 또한, 오전 예약은 출근시간인 7시와 10시에만 가능하다고 한다.
정 기획실장은 “전에 택시가 도착하기 1시간 반 전에 예약을 신청했는데, 정확히 한 시간 전이 아니면 예약접수를 할 수 없다고 했다”며 “공단 측에서는 시간적 지침을 세운 것이겠지만, 다소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날이 밝는 대로 콜택시를 이용해야겠다는 계획이 12시 이후에 생길 수도 있고, 택시를 타야 할 일이 수시로 생기는데, 정해진 예약시간에 얽매여야 한다는 사실은 불합리하다”며 유연성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행정구역상의 유연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불거졌다. 서울의 장애인콜택시는 역내에서만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서울 경계선을 조금만 벗어나도 호출이 허가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장애인은 서울 경계선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병원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상담원이 서울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호출접수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명확한 책임과 업무 구분도 중요하지만, 인접지역에 위치한 의료기관과 장애인 시설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기해야 할 필요도 있다는 지적이다.
■ 장애인 택시 직접 타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