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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노래하는 ‘희망’의 메시지

장애인가수 그룹 ‘빛된소리’, 첫 옴니버스 음반 ‘세상의 빛이 되는 노래’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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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0호 박성훈⁄ 2008.10.28 17:37:26

‘Isn’t She Lovely’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의 명가수 스티비 원더. R&B·컨트리·팝·재즈 등 장르를 섭렵하며 명실공히 미국 흑인 음악의 대부로 평가되는 레이 찰스. 1964년에 데뷔해 1990년 그래미상 최우수 라틴 팝 앨범상을 받은 푸에르토리코의 호세 펠리치아노. 이름만 들어도 대표곡이 흥얼거려질 정도로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외국 명가수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각장애를 앓고 있는 가수라는 점이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많은 장애인들이 신체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왕성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대중에 많이 알려진 장애인 가수라고 하면 ‘꿈에’와 ‘나의 옛날 이야기’를 부른 조덕배 씨 이외에는 떠오르는 이름이 많지 않다. 정부와 각계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문화라는 특수 영역으로 들어가면, 아직까지 장애인들에 대해 그 문호가 꽉 닫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음악·연극 등의 무대에서 장애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빈도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이를 반증하듯, 장애인들에게 전동 휠체어나 기초적인 생활비를 지급하자고 하면 정부나 공익단체·기업 등이 곧잘 모여든다. 여기까진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음반을 내거나 공연을 여는데 정부 기관이나 기업에 도움을 청하면 선뜻 스폰서를 해주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다”는 한 장애인 단체 대표의 하소연은 우리나라 장애인 문화복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대로 사회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문화의 장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판’을 벌이겠노라고 뭉친 사람들이 있다. KBS 장애인가요제 수상자들로 구성된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대표 배은주)의 ‘빛된소리’가 그들이다. 탄탄한 노래 실력과 다분한 끼로 무장한 이들은 모두 지체장애와 시각장애·안면장애·왜소증 등의 장애를 가진 예술인들이다. 이들은 장애인들에게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장애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과 문화적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모였다. 이번에 ‘빛된소리’가 ‘세상의 빛이 되는 노래’라는 제하의 옴니버스 음반을 냈다. 그리고 10월 24일에는 음반과 단체를 홍보하기 위한 ‘드림 콘서트’를 치르기도 했다. 동방신기나 원더걸스가 판을 내도 팔리지 않는 열악한 음반시장에 ‘희망’이라는 주제를 단 음반을 내던진 그들의 도전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비장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 눈물겹기까지 하다. 하지만, 바라고 바라던 음반 발매와 콘서트를 한꺼번에 치른 예술단은 지금 어느 장애인 단체보다, 어느 예술단체보다 에너지가 넘친다. 언뜻 볼 때에는 여느 연예기획사 못지 않은 활동 반경을 보이는 듯하지만,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도 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많은 ‘빛된소리’ 예술팀에게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에 위치한 녹음실에 한번 오르내리는 일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음반제작과 공연 스폰서를 구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기업의 무관심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취득한 이번 옴니버스 앨범에서 빛된소리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증권 시세의 폭락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증권가 직원 등 우울한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빛된소리의 구성원들은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더 힘든 우리도 사는데, 희망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그래도 “세상은 너를 위해 있어”라면서 말이다. 돈도 이렇다 할 ‘빽’도 없이 노래를 향한 열정만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참고로, 이들과의 만남은 콘서트를 3일 앞둔 10월 21일 마지막 총연습 및 리허설 과정에서 가졌음을 먼저 밝혀둔다.

■ ‘씩씩한 애엄마’ 배은주 씨 “용기를 내 힘을 내/바라는 것 모두 해낼 수 있으니/세상은 너를 위해 있어/내 안에 간직한 희망들이/내 삶을 빛나게 세상을 아름답게 하리라.” ‘네 바퀴의 꿈’을 부른 지체장애1급 가수 배은주 씨. 배 씨는 희망에 찬 위의 가사 내용과 다르게, 작사 당시 극도의 역경을 겪고 있었다. KBS 제3라디오에서 ‘소리로 보는 세상’ MC와 CCM팀 ‘희망새’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때, 출근길에 갑작스런 어머니의 변고를 접한다. 골다공증을 앓으시더니 끝내 척추가 주저앉았다는 것이다. 평소 몸이 불편한 배 씨를 위해 가사 육아를 도우시던 어머니가 갑작스레 몸져 눕게 되면서, 아끼던 희망새팀을 탈퇴하게 된 것이다. “3년간 몸담아 온 ‘희망새’에서 나오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어요. 저도 장애가 있는데 어머니도 못 걷게 되시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일기도 했죠. 그때 이 노래가 생각나더라고요.”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던 배 씨의 자아가 비쳐진 곡이 ‘네 바퀴의 꿈’이라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그가 영락없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믿겨진다. 6살 난 딸 이예슬 양과 함께 부른 이 곡에는 어린 딸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대해 배 씨가 하고 싶은 답을 얘기해 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테면, 하늘에는 ‘꿈’이 있고, 별은 ‘너만을 위해 빛난다’는 식이다. 배 씨가 공저한 육아일기 <엄마, 나 낳았을 때 아팠어?>에도 싣지 못한 내용이다. 예술단의 대표인 만큼 음반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정 씨는 음반에 담긴 곡의 질에 대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다”고 자부하고 있다. 다만, 제작비가 부족해 뮤직 비디오는 고사하고 홍보도 제대로 못해 좋은 곡들이 사람들에게 외면당할까봐 걱정이다. 휴대폰 컬러링 서비스에 앨범 수록곡들이 서비스된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저희 음반 중에 한 곡이라도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성공으로 삼고 싶네요. 그렇게 되면 제2, 제3의 음반을 낼 수도 있잖아요. 장애인들이 이런 곡도 불렀는데, 듣기 좋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 ‘솔로 예찬’ 이윤경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Life is’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라고 소개된다. 이 곡을 부른 지체장애 가수 이윤경 씨는 불혹을 넘어섰지만 아직 미혼이다. “사람들은 내게 묻곤 하지/왜 아직도 혼자냐고…혼자여서 자유로워 보인다고”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가사만 보면, 이 씨가 마치 혼자 살 팔자를 타고난 사람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독신주의자가 아니다. “외모나 성격이나 특별히 빠지는 데도 없는데 결혼을 일부러 안 한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씨는 “아니에요. 못한 거예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라며 웃는 얼굴로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그의 결혼관에는 단서가 붙는다. “단, 결혼을 위한 결혼은 싫어요. 요즘은 결혼하고도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좋은 사람 나타나면 몰라도, 남들이 하니까 나도 꼭 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이 씨의 해사한 웃음 뒤에는 오랜 시간 솔로였던 사람들만이 지닌 고독의 그늘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 가사가 말하듯 남들이 “왜 혼자냐”고 물어도 동요하지 않는 이유는 이 씨에게 일과 노래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과 일과 노래가 있어 감사하고 행복해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죠. 달걀도 힘주어 움켜쥐면 깨지듯이, 너무 욕심 부리지 않으려고요.” 현재 KBS 제3라디오 ‘강원래의 노래선물’에서 MC를 맡고 있는 이 씨는 이 일에 대해 “큰 축복이자 인생에서 가장 값진 선물”이라며 “도움을 준 주위 사람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다. 또한 “내 모습을 보면서 ‘나도 방송인이 될 수 있겠다’는 모티브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씨가 방송인과 가수가 된 결정적 계기는 장애인 가요제였다. 하지만 이 씨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고 웃음을 주는 주체는 “주위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내가 밝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주위 사람들이 웃음을 주어서이지, 제가 잘나서 웃는 것이 아니에요.…어릴 적부터 노래가 좋았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치켜세워주지 않았다면 지금 가수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죠.” 이 씨는 주위 사람에게서 받은 사랑을 다시 제3자에게 더 크게 나누려는 ‘유쾌한 채무감’에 오늘도 방송을 하고 노래를 한다.

■ 안면장애 심보준 “꿈 갖고 가수의 길 갈래요” 2008 장애인 가요제의 금상 수상자이자 현재 꿍따리 유랑단(대표 강원래)의 단원인 안면장애 심보준 씨(24)는 가수이면서 연극에도 참여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이지만 스스로를 ‘가수지망생’이라고 부른다. 아직까지 ‘진정한 뮤지션’의 꿈을 이루어가는 여정에 서 있기 때문이다. 심 씨는 어릴 적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얼굴 한쪽이 부푼 외모와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주변 친구들의 만류 등 가로막는 장애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달력공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창시절을 보내던 심 씨는 어느 날 “평생 꿈만 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음악 CD를 많이 구입했다. 하루는 CD값 1000원이 모자라 교통비까지 몽땅 털어낸 기억도 있다. 그러다 올해 장애인가요제 소식을 듣고 주저없이 도전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2달간 한 곡만 연습했다. “1000명 넘게 참가한 가운데 12팀을 뽑는데 제가 그 안에 들었죠. 본선에 나가 마지막에 ‘참가번호 12번 심보준’이란 말을 들었을 땐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죠. 그날 꿈에도 ‘참가번호 12번’이란 호명이 맴돌더라고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반학교를 졸업한 심 씨에게 안면장애는 시련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주변 학우들의 놀림과 따돌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주변 사람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고, 서서히 친구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얼굴의 혹은 심 씨에게 장애가 아닌 단지 개성이 강한 외모일 뿐이었다. 마치 얼굴에 큰 점이 난 사람이나 다리에 털이 많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결국, 심 씨의 자신감 있는 모습이 친구들의 편견을 바로잡은 결과를 낳았다. “가끔 친구들이 ‘얼굴에서 햄버거 꺼내봐라’고 장난치면, ‘꺼내줄게 먹어라’하고 받죠. 난 좀 특이하게 생겼지만 친구들과 다르지 않아요. 아직 안면장애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안면장애인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무대에 서는 일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지만, 박수를 받고 많은 힘을 얻었어요. 다른 안면장애인들도 용기를 갖고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심 씨가 부른 ‘길’이라는 곡은 4, 50대 중년이 밟아온 세월을 반성하고, 다시금 앞으로 나아간다는 내용이다. 이 곡에서 심 씨는 꿈을 갖고 계속 전진하는 사람이길 원한다. “뒤를 보면서 나를 보면서/내가 나를 사랑하면서/해를 닮은 미소로 내 길을 가리라.”

■ ‘하나될 때’ 조연 정택진·임기수·나용희 씨 마지막으로, 앨범에 개인곡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합창곡 ‘하나될 때’를 풍성하게 만든 조연을 빼놓을 수 없다. 장애인 가요제의 최고참인 정택진 씨는 앞에 나서서 노래를 하기보다 코러스 등으로 뒤에서 지원해주는 역할이 편하다고 한다. 무대 울렁증이 있어서도 아니고 대중을 두려워해서도 아니다. 수화통역사이다 보니 스텝과 같은 역할이 편해진 것이다. 방송에서만 수화통역을 10년 가량 진행해 온 전문가이다. 현재 평택대와 한국재활복지대에서 수화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정 씨는 외관상 장애가 없어 보이지만, 현재 뇌병변을 앓고 있다. 제1회 장애인 가요제에서 장 씨는 윤복희 씨의 ‘여러분’을 불러 동상을 탔다고 한다. 입상의 비결은 수화로 함께 한 점이다. 정 씨는 “마지막 대사가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날 위로해 주지? 여러분’이라는 부분이 좋아서 하게 됐다”며 “아내도 농아인이라 보여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정 씨와 1회 가요제 동기인 임기수 씨는 각종 공연과 생계로 바쁜 와중에도 이 앨범의 녹음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가 참여하거나 개최하는 공연은 반 이상이 봉사 혹은 무료위문 공연이라고 한다. 그의 원래 직업은 조각가이다. 상업 조각으로 생계를 이어 오면서 작품활동으로 눈을 돌려 각 대회에서 입선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에 현재는 체계적인 예방접종으로 사라진 소아마비에 걸려 지금의 장애를 갖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더 어렵고 불편한 장애인들도 많은데 그에 비하면 우린 행복하다”며 “앞으로도 봉사 공연을 계속 하고 싶다고 전했다. 여러 목소리 중 구성지고 힘있는 여성의 목소리는 저신장애(왜소증) 나용희 씨의 것이다. 나 씨는 2001년에 장애인 가요제에서 입상한 이후로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한 뒤 예술단과 인연을 맺고 가입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111cm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지는 폭발적인 가창력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예술단의 유일한 트로트 가수인 나 씨는 유일한 개인 앨범 소지자이기도 하다. 3년 전 ‘모래성 사랑’이라는 앨범에 ‘보고 싶은 당신’이라는 노래를 실었다고 한다. 경쾌한 템포의 이 곡은 역설적이게도 일찍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만든 노래라고. 유난히 국악을 좋아하는 나 씨는 민요를 부르는 장애인 가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전한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사랑은 사랑을 만들고 기쁨은 기쁨을 만들어가죠 우리 하나될 때”라는 가사로 노래를 맺는다. 여기서의 ‘우리’는 이 사회 구성원 모두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아우르는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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