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도 막바지에 성큼 다가섰다. 술 마시는 송년회가 예년보다 줄었다고는 하지만, 연말은 연말이다 보니 송년모임·회식자리도 잦아져 음주의 기회가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경기가 어려워도 연말연시에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1년의 크고 작은 일들을 정리하는 일이 많다. 과음으로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주취자에 대한 신고가 연말연시에 늘어난다는 경찰의 전언은 연말연시를 추태로 얼룩지게 만든다. 또, 취객들을 상대로 일명 ‘아리랑치기’나 술 취한 사람을 부축해주는 척하면서 지갑을 빼는 ‘부축빼기’ 사건도 심심치 않게 늘어난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뒤늦게 경찰에 신고해도 절도범들은 경찰 검거에 대비해 철저하게 자신들의 범행을 은폐하기 때문에, 범인을 검거하고도 확실한 물증이 없어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과도한 술자리로 인해 심각하게 불거지는 또 다른 문제가 바로 음주운전이다. 술을 먹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음주운전의 유혹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요즘은 대리운전 업체가 많이 생겨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편리에도 불구하고 일부 취객들은 “이 정도는 괜찮겠지” “딱 한 잔 먹었는데” “설마 내가 단속에 걸릴까”하는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게 된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심각한 문제가 시작된다. 음주단속에 적발되면 면허정지·면허취소 등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하지만 법적 처분을 떠나, 음주운전으로 발생하는 교통사고로 자신만 아니라 상대 운전자나 보행자에게 씻을 수 없는 인적·물적 피해의 고통을 주게 된다. ■ 해마다 증가하는 음주운전 사고 음주운전은 도로교통법 제44조 1항에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된 엄연한 범죄행위이다. 하지만, 음주운전의 유혹이 드는 단서가 있으니, 운전이 금지되는 주취상태의 기준이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 이상이라는 조항이다. 이 기준이 자의적으로 해석되면 음주운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술이 세기 때문에 괜찮다”거나, 아니면 “한두 잔인데 뭐 어때 ”라는 식의 해석이다. 1990년부터 2007년까지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발생건수와 사망자수, 부상자수 모두 꾸준히 늘고 있다. 발생건수는 1990년에 비해 2007년에 3.9배 증가했고, 사망자수는 2.6배, 부상자수는 4.8배나 증가했다. 이렇게 되면서 전체 교통사고 가운데 음주운전 사고의 점유율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음주운전 사망자수는 90년에 전체 교통사고의 3.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6.1%로 5배 이상 급증했다. 12월의 음주운전 적발은 해마다 늘어 2006년에는 3만4952건이나 됐다. 더욱이 작년의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는 991명으로 2006년에 비해 7.6%나 늘었는데,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6166명으로 2006년보다 2.5%나 감소했다. 교통사고 전체 사망자는 줄어들고 있는데,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 숫자는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연말연시를 맞아 음주운전 특별단속을 내년 1월 말까지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 술 먹고 변속기만 작동해도 ‘음주운전’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음주상태에서 차를 움직이기 위해 변속기를 움직이기만 해도 음주운전이다. 자동차 히터를 켜기 위해 시동을 걸었거나 만취상태로 오토바이를 끌고 간 경우는 음주 운전이 아니더라도, 변속기를 주행이나 후진 쪽으로 옮겨 놓는 순간부터 차가 움직이지 않아 음주운전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이를테면, 박모 씨가 술을 마시던 중 도로변 주차구역에서 차를 빼려고 시동을 걸었는데, 차의 오른쪽 바퀴가 50cm 정도 도로로 넘어간 순간 음주단속에 걸려 벌금 150만 원을 부과받은 케이스가 이 같은 법규 적용에 해당한다.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경우도 대리운전사가 낸 경미한 사고는 원칙적으로 차량 소유주가 책임져야 한다. 문제는 대리운전자가 1억 원 이상의 피해를 낸 경우이다. 삼성화재의 한 관계자는 “대리운전 사고라도 자동차보험 약관상 1억 원 이하의 대인사고에 대해서는 차주가 가입한 보험으로 배상해야 한다”고 전했다. 1억 원까지는 차주가, 1억 원 초과 부분은 대리운전자가 배상하도록 돼 있지만, 대리운전자가 보험에 들지 않았다면 차주가 고스란히 개인 배상해야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럴 때를 대비한 보험 특약에 들거나, 무엇보다 대리운전자의 보험 가입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 음주운전 사망사고, 1년 이상 징역형 정부도 음주운전 사고의 심각성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분위기다. 지난해 연말 ‘음주운전 치사상죄’가 도입된 것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에는 ‘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낼 경우, 벌금형이 없어지고 무조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받게 된다. 아울러, 정부는 향후에도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규정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단순히 법적인 처벌만 두려운 것이 아니다. 음주운전으로 적발될 경우, 사회적으로 각종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얼마 전, 수차례에 걸쳐 무면허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들에게 법원이 잇따라 실형을 선고했다. 청주지법에서는 11월 8일 무면허로 음주운전을 한 김모 씨와 박모 씨에 대해 도로교통법 위반죄를 적용하여 각각 징역 6월을 선고해 실형을 살게 됐다. 당시 판사는 “피고인들은 동종 범죄를 저질러 집행유예 형을 선고받고도 또다시 범행을 저지르는 등 반성의 기미가 없어 실형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결문을 냈다. 김 씨는 지난해에도 혈중 알코올 농도 0.127% 상태에서 무면허로 승용차를 운전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박 씨는 지난 7월께 법원에서 음주운전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한 달도 안된 8월 20일 새벽 1시 30분께 혈중 알코올 농도 0.102% 상태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지난 7월 음주, 신호·보행자보호 의무 위반 등 3대 중과실 사망사고 운전자에 대해 유족과의 합의를 불문하고 구속하기로 음주 교통사고 처리기준을 강화한 뒤, 처음으로 최근 서울중앙지검이 음주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 3명을 구속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1% 이상으로 전치 10주 이상의 상해사고를 낸 운전자 6명도 구속했다. ■ 공무원, 2회 이상 면허취소·사망사고 땐 중징계 특히, 공무원들에게는 인사상 불이익까지 뒤따르게 된다. 국가공무원법에는 형사사건으로 기소될 경우 직위해제가 가능하고,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당연퇴직된다. 앞으로는 공무원이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 2회 이상 운전면허가 취소되거나 사망 사고를 내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받게 된다. 행정안전부는 ‘공무원 음주운전 사건 처리지침’ 등 16개 예규를 통합·정비한 ‘국가공무원 복무·징계 관련 예규’를 제정해 각급 기관에 통보했다고 12월 10일 밝혔다. 예규에 따르면, 지금까지는 공무원이 음주운전으로 3회 이상 운전면허가 취소된 경우 파면·해임·정직 등 중징계 처분을 하도록 했지만, 앞으로는 2회 이상 운전면허가 취소된 경우 중징계를 받게 된다. 중징계 대상에는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경우도 새로 포함시켰다. 또, 음주운전에 따른 면허정지나 면허취소 상태에서 무면허운전을 하다 적발된 공무원은 그 동안 경고처분을 내렸지만, 앞으로는 면허정지 2회나 최초 면허취소 때와 마찬가지로 감봉이나 견책 등 경징계하기로 했다. 실제 인사에는 이보다 더 엄격한 법 적용이 이뤄지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10년 간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 이상 적발되거나 한 차례 적발되더라도 뺑소니를 치거나 신분을 속이는 등 죄질이 나쁜 경우 임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른 정부 부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직생활에서 음주운전은 치명적이라는 의미다. ■ 외국 음주운전 처벌, 심지어는 총살형도 그런데, 우리나라의 음주운전에 대한 강경한 분위기가 선진 외국의 사례와 비교하면 아직도 한참 모자란다는 평가다. 미국에서는 ‘상습적 음주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내 사람을 사망케 하는 경우 1급 살인죄를 적용해 종신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도 7번에 걸쳐 음주운전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해 생명경시를 이유로 20년형을 선고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2001년에 위험운전 치사상죄를 도입해 악질적 교통사고 야기자를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여기에는 음주운전은 물론이고 과속·무면허·신호위반 등도 포함돼 있다. 일본에서는 이 법률 시행 후 5년 만에 음주운전 사망자가 48.7%나 감소했다. 프랑스에서도 매일 120만 명이 술에 취해 운전을 할 정도로 음주운전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가운데, 음주운전 사망자수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수의 26%에 이를 정도다. 더구나, 18~24세 청소년은 음주운전 사망자수가 42%나 된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도심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강화하고, 음주운전 재범으로 적발된 차량을 압류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 주유소 내 술 판매를 금지하고, 나이트클럽 내에 음주측정기 비치를 의무화하고, 스쿨 버스 등에서는 주취상태에서 시동방지 장치를 의무화하는 등 강력한 음주운전 추방정책을 추진 중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음주운전자와 그 배우자를 함께 유치장에 넣는 경우도 있고(태국), 음주운전자를 집에서 30km 떨어진 곳에 내려놓은 뒤 걸어서 집에까지 오게 하는 나라(터키), 심한 경우 총살형이나 교수형 등 사형에 처하는 경우(엘살바도르·불가리아)까지 있다. 이런 분위기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의 음주운전 단속과 처벌은 아직도 약하다는 평가다. 특히,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기준으로 하는 음주운전 단속기준은 1962년도에 만들어져 47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골동품’이라는 지적이다. 가령, 스웨덴 0.02%(1990년), 일본 0.03%(2002년), 프랑스 버스 운전자 0.02%(2003년) 등 세계 각국에서는 음주운전 기준 역시 한층 강화하는 분위기다. 특히, 초보운전자나 저연령 운전자에 대해서는 아예 술을 입에도 댈 수 없도록 하는 제로 알코올 법을 적용하는 나라도 미국·호주·독일·캐나다 등이 있다. 음주운전의 폐해를 아는 이상 이를 묵인하거나 용납해주는 국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 어디서든 ‘술을 마시면 운전대를 잡을 수 없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음주운전 피해자는 누가 될지 모른다. 음주자가 운전하는 차는 이동수단이 아니라 살인도구다. ‘술 먹고 운전하다 사람을 다치게 하면 무조건 구속’이라는 인식이 운전자들의 뇌리에 박혀야 한다. 법원도 양형을 무겁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