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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암사동·미사리 선사유적지를 가다

가족단위 나들이 장소로 ‘딱’…역사와의 대화, 자연과의 대화, 일거양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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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12호 편집팀⁄ 2009.04.07 11:35:04

송영순 자유기고가 ■암사동 선사유적지 1 -요즘처럼 먹고 살기 바쁜 때, 중국의 고대문명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처럼 눈으로 보이는 선명한 것이라면 모를까, 국내의 선사 유적지에 대한 인기는 많지 않을 터. 그래서 이번 테마는 저렴한 비용으로 갈 수 있는 서울시내의 문화 테마로 ‘유적지 탐방’을 기획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영국의 역사학자 E.H.Carr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서….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 유적지(국가 지정 문화재 사적 267호)는 멀리 나가지 않고 가족 단위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로 추천하고 싶은 곳. 따스한 날씨에는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보며 식도락을 즐기면서 자연과 함께 휴식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선사유적지라고 고리타분하게 생각지 말고, 역사와의 대화, 자연과의 대화라고 생각하면 일거양득이다. 그리고 인근 지역인 하남시의 미사리 유적(269호)도 찾아가보자. 2 -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약 500여 곳에 이르는데, 신석기시대 초기에는 바닷가와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한 패총 유적이 많이 분포하며, 중기 이후에는 하천가나 언덕을 중심으로 한 주거 유적이 성행했다. 암사동 유적지는 1967년 대학연합발굴단의 조사를 시작으로 1971~75년 사이에 네 차례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굴조사하여 한국의 신석기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총 31기의 집터가 밝혀짐에 따라 우리나라 최대 집단취락지로 등장을 했으며, BC 5,000~1,000년경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 9개의 움집을 복원하였다. 암사동 유적은 6개의 자연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신석기 문화층은 발굴 전역에서 출토되었는데, 빗살무늬토기, 갈돌과 갈판, 어망추, 탄화된 도토리 등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 나왔다. 암사동 움집은 한강을 끼고 널찍한 평지에 자리 잡고 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 기반이 고기잡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나타내준다. 이것은 어망추·작살 등 어로도구들의 출토로 뒷받침되며, 화살촉들의 발견으로 인근 야산에서 수렵을 했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다. 또 도토리·갈판·갈돌의 발견은 신석기인들의 주 식량이 도토리였으며, 보습·돌낫 같은 농기구의 출토는 밭농사가 일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3 - 암사동 선사 유적지 입구에 도착해 매표소 앞으로 가면, 그리 부담이 가지 않는 입장료가 방문객들을 환영한다. 성인 500원(18세 이상), 초중고 청소년 300원…. 입구로 들어가니 움집터가 나온다. 움집은 신석기인들이 살았을 당시를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7개의 움집이 만들어져 있고, 1군데는 실제로 움집 안에 들어가 현장을 구경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움집을 보면서, 신석기인들의 집이 참으로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많겠지만, 시골에 산다면 이런 움집을 방갈로식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관광객이나 방문객들을 위해 움집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라인도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움집을 보고 난 뒤, 암사동 유적지를 알릴 수 있는 전시관에 들어가 보자. 정중앙 바닥에는 실제로 발굴된 유적 현장에 2m 정도의 복토를 한 다음 복원을 시켜 놓았는데, 복원된 바닥에는 인형으로 만든 원시인들이 모양새를 갖추고 있으며, 바닥에는 기둥을 세운 흔적인 듯 구멍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 주변에는 어린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꾸며져 있고, 선사 유적에 무관심한 어른들이 오더라도 관람이 편하도록 되어 있다. 복제품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무늬와 모양의 토기들이 단아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치 후손들에게 “너희들이 먹고 마시는 그릇의 원조가 바로 빗살무늬토기이니라” 하고 강조하는 것 같았다. 전시관 정중앙의 전면에는 움집 앞에서 가족들이 모여 토기 만들기, 사냥하기, 조리하기 등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미사리 선사유적지 4 - 암사동을 다 보고 난 뒤, 이왕 온 김에 미사리 유적지도 가보기로 했다. 암사동에서 불과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미사리도 유명하니, 아마 잘 꾸며져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내비게이션을 체크하고 출발했다. 오잉~! 그런데 미사리에 도착하니, 내비게이션에는 위치가 찍혀 있는데 길이 나타나지 않았다. 왜 이럴까? 아무리 여기저기 이동해도 미사리 유적지에는 접근이 되지 않고 그 주변만 빙빙 돌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위치를 찾기 힘들었던데 대한 불평은 뒤에 하기로 하고) 미사리 선사 유적지는 1960년에 김원룡 서울대 교수가 확인한 후, 1979년에 사적 269호로 지정되었다. 1980년에 한 차례 조사한 뒤, 1987년~92년 간 3차례의 발굴조사를 거친 결과, 신석기 문화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문화층 등에서 466개의 유구를 확인했다. 이곳은 암사동과 더불어 한강 하류지역의 선사시대 및 역사시대 연구의 중요한 유적 중의 하나이다. 목적지까지 찾아가려면 미사리 카페촌까지 가서 16번 버스 종점 주변에 차를 두고, 종점 쪽으로 30m 정도 한강변 방향으로 가서 계단을 올라가면 왼편에 입간판이 보인다. 그게 바로 미사리 선사 유적지 입간판이고 설명서이다. 간판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논밭 같은 땅이 바로 유적이라고 한다. 허탈한 심정! 그냥 그러니 그런 줄 알라고 하는 것 같다. 암사동과 미사리의 차이점이 뭐길래 이렇게 다른지 묻고 싶다. 입간판 하나로 그토록 미사리 고대 유적지라고 소문을 낸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여기저기 안내간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는 바로 미사리 카페촌이고 음식촌이었던 것이다. 카페촌의 음식점 주인들도, 심지어 부동산 아저씨도 미사리 유적지는 모른다고 하니 한심할 지경이다. 나중에 미사리 유적지를 보고 난 뒤에 골목길을 나오면서 ‘시드니’라고 하는 유람선 겸 범선으로 만든 레스토랑에서 커피 향기를 맛보는 것도 좋으리라고 본다. 5 - 끝으로, 내비게이션을 가진 독자를 위해 안내를 한다. 암사동 선사 유적지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 139-2번지’(전화 3426-3867)가 소재지로서, 주차장(주차요금: 하루종일 2,000원)이 잘 되어 있다. 미사리 선사 유적지는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557-1’ 16번 버스 종점에서 50m 지점이다. 차를 가져간다면 버스 종점 근처에 대충 세워 두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지하철 8호선을 타고 가다 암사역에 내리면 인근에서 금방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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