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호 박성훈⁄ 2009.04.20 21:53:51
“고리사채 때문에 아버지가 딸을 목 졸라 죽인 사건에 가슴 아팠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 때에 사회불안을 가중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법무무와 금융위원회에 고리사채업에 의한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고리사채업자들이라는 게 정말 지나치다”며 “법무부와 금융위원회, 두 부처가 협의해 어려울 때 피해자가 생겨 사회적 불안을 더욱 조장하는 것을 막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요즘같이 우리 사회가 불안할 때 사람들이 고리채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아진다”면서 “고리채를 써야 될 사람들이 금융위 등을 찾아올 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주면 사전 예방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 사람들이 돈을 빌릴 데가 없으니까 거기로 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노당도 “대통령 고리채 관심은 다행” 한 아버지가 사채 빚 1500만 원에 독촉을 받다가 성매매를 강요당한 딸을 죽이고 본인도 목숨을 끊은 사건은 고리사채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죽은 딸의 빚은 원금이 300만 원이었다. 이는 1년이 지나면서 1500만 원으로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 사채업자 일당은 연 120~680%의 고리로 대출을 해준 뒤 이자만 33억여 원을 챙겼다. 이 대통령이 예시한 이 사건 외에도, 고리사채로 발생한 불미스런 사건은 부지기수이다. 더구나 경제가 어려울 때 더욱 기승하는 고리 사채 문제는 서민들의 경제사정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어 이 대통령이 직접 대수술을 지시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에서는 “이처럼 대통령이 고리사채 문제의 심각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라고 논평했다. 그런데도 경찰·금융위원회·지방자치단체는 사채업에 대해 제대로 된 단속을 하지 못해 왔다. 기획재정부도 고리채 폐단 해결의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이번 추경에 저신용 영세서민의 사채를 금융권 융자로 전환하기 위해 360억 원을 배정하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이 예산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요구안에서 빠졌다. 행정집행단위들은 고리사채 문제에 대하여 우선순위를 부여할 만큼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저신용자 816만 명, 고리채 유혹에 노출 우리 사회의 고리사채 문제는 실로 심각하다. 사채 이자율이 연이율 2,400%에 이르는가 하면, 채무자에 대한 협박·폭행·성매매 강요 등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연말 기준 저신용자는 816만 명에 이르러 처음으로 800만 명을 넘어섰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고리사채 관련 피해 상담과 신고는 지난해 4075건이 접수됐다. 이는 전년 대비 19.1% 증가한 수치로, 현 경제상황을 반영한다. 고리사채업은 워낙 음성적으로 운영돼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어렵다. 그렇다고 서민들이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이처럼 고리사채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는 현상은 일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없어 사채를 끌어다 쓸 수밖에 없는 신용등급 7∼10등급인 저신용자 수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반증이다. ■저축은행·캐피탈 등 건전한 소액대출 가능해야 이 대통령은 “경제사정이 어려운 서민들일수록 고리사채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며 “사채 이외의 방법으로 급한 돈을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리사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서민들이 사채가 아닌 융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저축은행·캐피탈·등록대부업체 등에서 건전한 소액 신용대출이 가능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민들이 불법 대부업체로 가지 않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주장이다. 검찰과 경찰·금융감독원 등은 지난해 말부터 고리사채업자에 대한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고리사채 피해는 줄지 않고 있다. 아무리 잡아들여도 대부분 약식기소돼 벌금형 정도만 받고 풀려나 다시 영업을 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신고도 못하는 피해자들도 많다고 한다. 관리·감독의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중앙정부가 대부업 등록 등을 지자체에 맡겨두는 현행 구조에선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피해 근절을 위해 직접 나선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특단대책 마련 중 고리사채 문제 해결 지시를 받은 금융위는 금감원과 함께 특단의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서민들의 고통을 덜고 사회가 해체되는 것을 막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정부도 실효성 있는 대책 강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당수 피해자들이 생활정보지나 인터넷 등에서 광고를 보고 사채의 문을 두드리는 만큼, 생활정보지와 인터넷 포털업체 등에 등록대부업체 위주로 광고를 게재하도록 협조를 구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고리사채로 피해를 본 이들의 형사·민사적 대응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고리사채 피해자들은 가족에게도 쉬쉬하며 개별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 적절한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법원의 개인회생제도, 재산담보부 생활급여제, 저신용자 대출 보증제 등 정부가 이미 마련한 서민 지원책과 ‘서민금융 119’ 사이트 등 도움이 되는 정보의 홍보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법률구조공단에 변호사 인력 등을 지원해 취약계층의 개인회생· 파산신청 등을 돕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파산신청 비용 마련을 위해 다시 사채의 문을 두드리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이 같은 대책만으로는 고리사채 피해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