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경호관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는 일종의 ‘타살설’ 등 각종 음모론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일축했다. 천 전 수석은 27일 밤 봉하마을에서 기자들과 만나 브리핑을 열고 ‘타살설’ 등이 유포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선택하신 것에 대해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다만, 천 전 수석은 “노 전 대통령을 당일 수행했던 경호관의 최초 진술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경찰이 뒤늦게나마 사실관계를 밝혀낸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수사본부’는 27일 오후 경남 창원시 경남경찰청 2층 회의실에서 2차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5월 23일 오전 5시 44분 노 전 대통령이 사저를 나선 후부터 투신한 것을 발견한 6시 45분까지 1시간여에 대한 행적이 당초 경호관의 주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공개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5시 44분경 김해 봉하마을 사저에서 유서 파일을 컴퓨터에 최종 저장한 후 오전 5시 45분께 당시 당직이었던 이모(45) 경호관에게 “등산 나갈게요”라고 말한 뒤 이 경호관과 함께 오전 5시 47분께 등산길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은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 뒤 마늘밭에서 일하던 박모 씨에게 “일찍 나왔네요”, “마늘 작황이 어떻노” 등 인사를 건넸으며, 이에 박 씨는 “반갑습니다”, “작황이 안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경호관, 노 전 대통령 찾아 30여 분 헤매 이후 약수터 입구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약수는 마시지 않고 곧장 돌아 나와 등산을 계속했으며, 정토원 앞에서 100m 떨어진 이정표(봉수대 0.37㎞) 10m 앞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이 경호관에게 “힘들다. 내려가자”고 말했고, 이 경호관은 사저 경호동에 있는 신모(38) 경호관에게 “하산하신다”는 무전을 보냈다. 이곳에서 117m 정도 떨어진 부엉이바위로 향한 노 전 대통령은 오전 6시 10분께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후 “부엉이바위에 부엉이가 사나?”, “담배 있는가?”라고 질문하자, 이 경호관은 “없습니다. 가져오라 할까요”라고 되물었고 노 전 대통령은 “아니, 됐어요”라고 답했다. 또 폐쇄된 등산로에 사람이 다닌 흔적을 발견한 노 전 대통령은 “폐쇄된 등산로에 사람이 다니는 모양이네”라고 물었고, 이 경호관은 “그런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어 5m 정도 뒤에 있는 묘지 옆 잔디밭에 앉은 노 전 대통령은 이 경호관에게 “정토사에 선 법사가 있는지 보고 오지”라고 심부름을 시켰고, 이 경호관이 “모셔올까요”라고 묻자 “아니, 그냥 확인만 해봐라”고 지시하자, 이 경호관은 곧장 부엉이바위에서 247m 떨어진 정토원으로 뛰어갔다. 이 시간이 오전 6시 14분경으로서, 선 법사가 있음을 확인한 이 경호관은 오전 6시 17분께 다시 부엉이바위로 되돌아왔지만 노 전 대통령이 보이지 않자, 이 경호관은 소지하고 있던 휴대폰의 단축키를 눌러 신 경호관에게 “잠깐 대통령님 심부름을 다녀온 사이에 대통령께서 보이지 않는다. 나와서 내려오시는지 확인 좀 하라”고 전화한 뒤, 149m 떨어진 마애불 위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 경호관은 인근에서 나물을 캐던 오모 씨(57·여)에게 “등산객 한 명 못 보았습니까”라고 물었으나 오 씨가 “못 보았습니다”라고 답하자, 다시 봉화산을 찾아 헤매던 이 경호관은 오전 6시 23분께 신 경호관에게 전화를 걸어 “찾았나? 안 보이나?”라고 물었으나 신 경호관의 대답은 “안 보인다”였다. 이 경호관은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목격자를 찾았으나 노 전 대통령을 본 사람은 없었고, 오전 6시 30분께 사자바위 쪽으로 뛰어가면서 또다시 신 경호관에게 전화를 걸어 “저수지나 연꽃밭 쪽을 찾아보라”고 했다. ■음모론 주장하는 추측성 글들 빠른 속도로 확산 이 경호관은 정토원에 들러 선 법사로부터 “무슨 일이지? VIP 오셨어?”라는 질문을 받았으나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답한 뒤 다시 부엉이바위로 내려가던 중, 오전 6시 35분께 이 경호관은 “정토원 법당에 있을지 모르니 한번 보시죠”라는 신 경호관의 전화를 받고 “아니 없더라”고 답했다.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이 경호관은 순간적으로 ‘바위 밑에 있을지 모른다’는 직감에 바위 밑에 있는 흰 옷을 발견하고 곧바로 뛰어 내려갔으며, 오전 6시 45분께 추락지점에 도착한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을 확인하고 무전기를 이용해 경호동에 “사고가 발생했으니 차 대라”고 지시했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흔들고 목부위 경동맥 맥박을 확인한 뒤, 자신의 우측 어깨로 노 전 대통령을 메고 공터 쪽으로 뛰어왔다. 인공호흡을 2차례 하던 중 차량이 도착해 이 경호관은 차량 뒷좌석에 노 전 대통령을 안고 탑승한 뒤 세영병원으로 호송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 천 전 수석과 경찰 발표에도 불구하고 주요 포털 등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한 시해설·유서조작설 등의 음모론적인 추측성 글들이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통해 확산하고 있어 관련자들을 황당케 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현장에서 고인의 점퍼가 발견된 것을 문제 삼아 “어떻게 바위에서 뛰어내린 분의 점퍼가 저절로 벗겨질 수 있는가. 고인의 사망 경위가 조작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또 “경호원이 높은 곳에서 떨어진 고인을 발견하여 112를 부르지 않고 혼자 업어 후송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고인이 실제로 추락사를 했는지부터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투신 현장을 발견한 이후의 초동 조치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낸 네티즌도 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의혹에 대한 충분한 해명이 이뤄졌음에도 이 같은 음모론이 계속 나도는데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국민의 답답하고 억울한 감정이 투사된 결과라고 진단하고 있다. 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원은 “국민이 평소 존경하는 인물이 자살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보니 상실감에서 오는 분노를 다른 대상으로 돌리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음모론이 제기된 원인은 매머드급 수사 인력을 갖추고도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기본적인 행적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혼선을 빚은 경찰의 무능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수사 초기에 경호관이 진술을 번복하여 다소 혼란이 있었지만, 국민의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며 “그러나 일부에서 제기된 각종 음모론은 전혀 근거가 없다”라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