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공휴일 제도가 말만 무성했지 결국 흐지부지 단계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체 공휴일 제도는 법정 공휴일이 토-일요일과 겹칠 경우 금요일 또는 월요일을 쉬도록 하는 제도다. 문화부는 관광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체 공휴일제에 대한 관계 부처 협의를 2010년말까지 마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 현재까지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 부처간 협의가 지지부진한 것은 재정부,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등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대체 공휴일을 정해 놓으면 예컨대 1월1일이 일요일과 겹치면 1월2일을 놀게 해야 하고 공장을 계속 돌리려는 사업주는 공휴일 수당을 추가로 주면서 일을 시켜야 하는데, 그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공휴일 근무 수당이 업주에게 부담이 된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한국의 법정 공휴일(연간 14일)이 토-일요일과 겹치는 경우는 1년에 3~8일 정도라고 한다. 1년에 3~8일 공휴일 수당을 주는 게 아까워서 전국민이 해마다 연말이 되면 그 다음해 달력을 들여다보면서 ‘빨간 날’을 세고, 일희일비 하도록 만드는 것은 참으로 비생산적인 방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휴일에 공휴일 수당이라는 웃돈을 줘서라도 일을 시켜야 하는 일부 직장을 제외한다면 대체 공휴일 제도가 왜 그리 큰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공휴일도 요행수에 기대야 하니, 이건 참… 요행수가 판치는 이 나라에서 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쉬는 날마저도 요행수에 기대게 만들고, 그래서 작년처럼 설날 연휴가 토-일-월요일과 겹치는 고약한 경우를 만드느냐는 것이다. 작년 설날을 돌이켜보자. 설날 연휴가 주말과 겹쳤다고 해서 귀성 행렬이 없었냐 하면 그렇지 않다. 직장별로 ‘알아서’ 쉬는 바람에 쉴 사람들은 다 쉬었고, 고향에 다녀올 사람은 다 다녀왔다. 대체 공휴일제를 만들어 놓으면 작년 설날 때처럼 업주와 사원이 연휴 일정을 놓고 설왕설래할 필요가 없어진다. 어정쩡하게 다른 직장은 어떻게 하는지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올해는 설날 연휴가 토-일과 겹치니 연휴는 월-화-수요일까지”라고 법대로, 깔끔하게, 누구나 알 수 있게 정비해 놓는 게 법이 해야 할 일 아니던가? 산업화 시대에는 노는 게 죄악이었다. 생산 라인에 잠시도 쉬지 않고 근로자들이 붙어서 일을 하는 게 부국의 길이었다. 지금도 그런가? 21세기 스마트폰 시대에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생산라인’이 아니라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하지 않았던가?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도 나오려면 사회 전체가 ‘창조적으로 머리를 돌릴 수 있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며, 창조적으로 머리를 돌리는 데는 ‘자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라틴어에서 scole은 ‘한가함을 즐기는 것’이란 의미이고, 여기서 두 가지 단어가 나왔다고 한다. 하나는 여가를 뜻하는 ‘레저’로, 다른 하나는 학교를 뜻하는 ‘스쿨’로 됐다고 심리학자 김정운(명지대 교수)은 자신의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밝혔다. ‘쉰다’에서 ‘학교’란 뜻이 나온 것은, 쉬는 시간에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공부-연구이고, 쉬지 않는 환경에서는 공부-연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예도 든다. 두 농부가 추수를 하는데 쉬엄쉬엄 놀면서 한 농부가 더 일찍 일을 끝냈단다. 이유는? 쉬지 않고 일한 농부는 낫을 갈 시간이 없었지만, 쉬엄쉬엄 한 농부는 쉬는 시간에 낫을 갈아 면도날 같은 낫으로 생산성을 높였기 때문이란다. 제대로 쉬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창의성 때문에 큰 일 났다면서 왜 못 놀게 하나 공휴일을 구체적인 ‘날짜’로 잡아놓아 걸핏하면 공휴일이 화-수-목요일에 떨어져 직원이나 사장 모두를 난감하게 만드는 한국의 법정공휴일 시스템을, 미국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미련스럽게 살는지를 알 수 있다. 미국의 연방 공휴일은 연간 10일이다. 한국의 14일보다도 적다. 그래도 미국인들은 거의 매달 ‘알지게’ 연휴를 찾아 먹는다. 잊을 만 하면 한 달에 한번 꼴로 찾아오는 연휴는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
또한 한 달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연휴는 전체 경제가 돌아가는 데도 큰 기여를 한다.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달 한번씩 큰 ‘연휴 대목’이 서기 때문이다. 이때마다 미국 소매업계는 연휴 세일을 실시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 연휴 때는 돈을 더 쓰게 된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다.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경제에서는 있는 사람이 국내에서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 돈을 써야 일자리도 생긴다. 매달 절묘하게 돌아오는 미국의 연휴 시스템 정말 영리하다고 생각되는 미국의 연방 공휴일 제도를 한 번 훑어보자. 우선 1월1일. 당연히 요일이 아닌 날짜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대체 공휴일제가 있기 때문에 1월1일이 일요일에 떨어지면 당연히 1월2일 월요일을 쉰다. 1월에는 또 ‘마틴 루터 킹 데이’가 있다. 자유민권 운동을 펼치다 암살 당한 흑인 목사 마틴 루터 킹을 기리는 날이다. 그의 생일은 원래 1월 15일이지만 법정 공휴일은 ‘1월 셋째 월요일’로 정했다. 그래서 1월 셋째 주는 미국에서 항상, 예외없이 연휴로 시작한다. 만약 이 날을 한국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의 생일날로 정해 놓았다면 올해의 경우 1월15일 토요일이 공휴일이 돼 ‘짜증나는 날’이 돼버린다. 2월에는 ‘프레지던트 데이’가 있다. 2월 셋째 주 월요일로 정해 놓았다. 원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일(2월22일)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지만, 우악스럽게 2월22일로 못 박지 않고 셋째 주 월요일로 정해 ‘자동 연휴’를 만들어 준다. 3-4월은 봄이니 열심히 일하고, 5월에는 한국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 데이가 돌아온다. 5월 마지막 월요일로 정해 놨으니 또 연휴다. 7월에는 미국 전역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독립기념일 7월4일이 있다. 이 날은 요일이 아니라 그냥 7월4일이다. 독립기념일마저 요일로 정할 수는 없었나 보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에는 노동절(9월 첫째 주 월요일)이 돌아온다. 그래서 9월 첫째 주 역시 무조건 연휴로 상쾌하게 시작한다. 10월 달에는 콜럼버스의 미국 신대륙 도착을 기념하는 콜럼버스 데이(둘째 주 월요일)가 돌아와 또 연휴이며, 11월 달에는 ‘퇴역 군인의 날(Veteran's Day)이 있다. 퇴역 군인의 날은 2차 대전 종전을 기념해 그냥 11월11일 날짜로 지정해 놓았다. 11월 달이 시작되면 미국은 벌써 연말 휴가 분위기다. 그 첫 절정을 이루는 게 추사감사절(11월 마지막 목요일)이다. 목요일을 공휴일로 정해 놓아 자동적으로 목-금으로 이어지는 장기 연휴가 된다. 우리의 추석처럼 전국민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 귀향하는 때이니 목요일로 정한 게 아주 타당하다. 그리고 미국 사람들이 ‘환장’하는 크리스마스가 12월25일에 돌아온다. 이때는 사실 ‘12월15일이 지나면 거의 모든 업무가 중단된다’고 할 정도로 연말 휴가 시즌이기 때문에 대체 공휴일이고 뭐고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보면 미국 공휴일은 날짜를 꼭 준수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융통성있게 ‘몇 째주 첫 월요일’로 정해 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계 최대의 경제국이며, 서비스업의 생산성 역시 우리보다 훨씬 높은 미국의 지혜를 우리가 배울 때가 되지 않았나? 공휴일마저 짜증스럽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면 우리는? 짜증스러운 일이 많은 이 나라에서는 공휴일 시스템마저 요일이 아니라 날짜를 꽉꽉 박아 놓아 시시때때로 짜증이 치밀게 만든다. 주간 단위로 일하는 직장에서 수요일 쯤에 공휴일이 떨어지면 참으로 난감하다. 일주일이 두 조각으로 나눠져 업무에 정말 큰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정말 미국처럼 공휴일을 ‘몇 번째 월요일’ 식으로 정해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간 한국에서 논의된 대체 공휴일 제도는 공휴일 시스템 전반을 미국식으로 바꾸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공휴일이 주말과 겹치면 평일에 하루 놀게 하자는 것이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걸 해 봐야 연간 3~8일 정도의 공휴일이 살아날 뿐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정말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쉬지 않고 뛰어야 한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는 70년대식 방식을 벗어나지 못해 대체 공휴일 문제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허리띠 졸라매는 것도 다 때가 있는 거지, 세계 10위의 부자 나라가 계속 허리를 졸라매야 하나? 그러다 허리 끊어지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