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5호 박현준⁄ 2012.12.17 11:17:21
들어가며 우리나라 민법의 원칙은 ‘낙성(諾成)계약의 원칙’이라고 해서 구두상 합의가 있으면 서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계약으로서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구두 약속은 추후에 그 내용을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이유로 개인의 영역에서 또는 회사의 영역에서 우리는 수많은 계약서, 협정서, 약정서 등을 작성하게 됩니다. 일단 체결된 계약은 우리에게 불리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분쟁이 발생해 법정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계약서와 관련해 법정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잘 모르고 작성했습니다.”라는 항변입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잘 몰랐다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계약서를 작성해야, 정확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계약서의 처음 부분인 계약서의 제목과 계약 당사자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합의서, 계약서, 약정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 가장 먼저 고민되는 것이 제목입니다. “약정서라는 이름으로 서류를 작성했는데, 계약서로써 효력이 있나요?”라는 질문은 필자가 계약서와 관련한 법률 상담시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계약의 유형은 매우 다양합니다. 따라서 계약서의 유형도 계약의 유형만큼 다양한 것이고, 원칙적으로 계약서의 제목 보다는 내용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에 따라 계약의 내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계약서’라는 제목으로 작성이 된 문서라도, 그 내용에 당사자를 구속하는 내용이 아무 것도 없다면 계약으로의 효력을 갖기 어려운 것이고, 반대로 양해각서(이른바 MOU)를 작성했더라도 그 내용이 당사자를 구속하는 내용이라면 구속력 있는 계약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서, 약정서, 합의서, 의향서 등의 제목에 구애받지 말고, 구체적인 조항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제목이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계약서 당사자 표시의 중요성 가. 당사자를 표시하는 방법 계약 당사자가 법인이냐 자연인이냐에 따라 계약서의 효력 발생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통 계약서의 서두에서 ‘갑’은 ‘김갑동’, ‘을’은 ‘주식회사 고우’와 같은 형식으로 정해 놓고, 계약서 말미에서 위 당사자를 표시한 후 서명 날인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때 당사자를 정확히 특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사자가 일반 개인(자연인)인 경우에는 당사자의 이름, 주소, 주민번호를 쓰고 서명 또는 날인을 하면 당사자가 특정이 됩니다. 그러나 일방 또는 쌍방 당사자가 법인인 경우에는 정확한 특정이 필요합니다. 회사의 경우 회사명, 대표자, 대표자의 이름 세 가지 요소를 갖춰서 서명 날인을 해야 합니다. 예컨대 ‘주식회사 고우 대표이사 고윤기’의 형식으로 기재돼야 합니다. 만약에 ‘주식회사 고우’, ‘주식회사 고우 고윤기’의 형식으로 서명 날인을 한다면, 회사의 행위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 채무 또는 계약의 이행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의 기재는 아래와 같은 형식으로 하면 됩니다. (갑) 주식회사 고우(법인등록번호 0000-0000) 서울 광진구 자양동 216-6 대한빌딩 201호 대표이사 고윤기 (인) (을) 성영주 (인) 주민번호 791230-0000000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301
나. 신분증, 법인등기부를 확인하자 일방 당사자가 개인인 경우에는 계약 체결 전에 신분증을 꼭 확인해 계약서에 기재된 당사자와 신분증에 기재된 주민번호 등이 일치하는지를 확인 할 것을 권해 드립니다. 일방 당사자가 회사인 경우에는 꼭 법인 등기부 등본을 발급받아 법인 등기부에 기재된 대로의 상호를 기재할 것이 필요합니다. ‘주식회사 고우’와 ‘고우 주식회사’는 완전히 다른 회사입니다. 예전에 제가 맡았던 사건 중 피해자가 투자 계약사기를 당한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피해자는 ‘주식회사 DM레저산업’(가명)과 투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DM레저산업은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회사였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회사였습니다. 피해자는 위 계약서에 따라 투자를 했고, 나중에 투자금을 회수하려 했는데 알고 보니 위 회사는 유령회사였습니다. 사실은 ‘DM레저산업 주식회사’라는 회사가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회사였는데, 투자 사기꾼들이 ‘주식회사 DM’, ‘주식회사 DM레저’, ‘주식회사 DM레저’ 등의 여러 가지 유사 상호의 회사를 설립해 투자를 받고 잠적한 것입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명망 있던 ‘DM레저산업 주식회사’도 위와 같은 투자사기로 인해, 소송에 휘말리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투자금을 반환할 능력이 있는 ‘DM레저산업 주식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당사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패소했고 결국 자신이 투자한 돈을 하나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법인과의 계약 시에는 인터넷 대법원 사이트에 들어가서 법인등기부등본을 발급 받은 후, 계약당사자가 동일한지, 대표자가 동일한지 여부를 체크하고 계약서에 서명 날인 해야 할 것입니다. 다. 서명 날인의 방법 당사자의 표시는 가능한 한 자필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경우 반드시 인감을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니나, 인감을 찍고 인감증명서를 첨부하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인감을 날인할 수 없을 때는 무인(지문)을 찍고, 자필로 서명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법인의 경우 법인 인감을 날인해야 합니다(법인 인감증명도 꼭 확인해야 합니다). 라. 대표이사를 보증인으로 세우자 법인과 개인은 법률적으로 다른 사람입니다. 즉 법인과 계약을 한 경우, 계약에 대한 책임을 법인에 대해서는 청구할 수는 있지만, 대표이사 개인에게는 청구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 법인이 자력이 충분한 법인이라면 무관하겠지만, 영세한 법인인 경우 법인이 폐업하거나 파산한다면 계약의 이행을 청구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악용해 대표이사가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위와 같이 법인의 당사자 기재 밑에 “갑의 계약 보증인 개인 고윤기(인)”의 형식으로 대표자를 보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이 좀 더 안전한 계약을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어떻게 보면 상대방에게는 좀 가혹할 수도 있는데, 계약상대방 법인의 계약 이행능력이 의심스러울 경우 계약의 진정성 확보를 위해서 보증인을 내세우는 것도 필요한 행위입니다. 마. 대리인인 경우 대리권을 명확히 하자 법인과 계약하는 경우 대표이사가 계약서 날인 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보통 실무자가 참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법인으로 발급된 계약서 체결에 관한 위임장을 요구해 이를 계약서에 첨부하고, 대리인에 의해서 계약이 체결됐음을 명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 계약당사자 관련 체크리스트 위의 내용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었을 때 아래와 같습니다. ·신분증 또는 법인등기부와 당사자가 일치하는가. ·당사자를 양식에 맞게 기재하였는가. ·인감증명서를 첨부하였는가. ·대리권을 증명할 위임장이 첨부되었는가. 마치며 필자는 개인적으로 나중에 법률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적은 계약서를 ‘깔끔한 계약서’라고 부릅니다. 일방 당사자가 계약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그 계약의 이행을 청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계약서 내용의 미비 또는 잘못으로 인해 계약의 이행을 청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깔끔한 계약서는 계약 분쟁을 방지하는 첫걸음입니다.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