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투표율 70%만 넘긴다면 무조건 이긴다고 판단하고 투표율 제고에 매달렸는데 자신들도 기대하지 못했던 75.8%라는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인과는 3.53%포인트 격차를 보이며 108만여 표차로 대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는 1469만여표를 얻었다. 야당 후보가 이렇게 많은 표를 끌어 모은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표를 모았지만 역부족에 그쳤다. 민주당은 선거가 끝났으나 좀처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모습이 역력했다. 사실 민주당의 이번 대선 분위기는 범야권이 총력 체제로 지원하는 등 적어도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볼 때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질수 없는 선거였다. ‘박근혜 대세론’을 뒤흔든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협상 중 사퇴했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물러나 자리를 넓게 내줬다. 재야는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를 구성해 세를 몰아주었다. 안철수 바람이 중도·부동층을 파고든 데다 좌파 총결집이라는 호재까지 작동한 것이다. 영남 출신인 문 후보에겐 지역감정의 벽도 높지 않았다. 이렇듯 야권이 소유한 정치적 자산을 모조리 끌어 모은 선거였다. 그리고 민주당은 선거 막판에 터진 각종 흑색선전, 편가르기 공방에서도 주도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문 후보는 4·11 총선에 이어 거푸 패배의 쓴잔을 들이켰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 패배한 것에 대한 자성론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여기에 휩쓸려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수권정당의 잠재력과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내부 정비에 하루빨리 착수하는 게 정답이다. 당의 인적자산과 지지외연, 정책개발 능력 등을 원점에서부터 재점검한 뒤 리셋팅 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민주당은 이제 의회권력에 이어 행정권력 마저 새누리당에 내주면서 적어도 차기 총선이 실시되는 2016년 4월까지 3년 4개월 간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이 될 것임에 틀림없겠지만 하루빨리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행정과 의회권력을 장악한 새누리당이 독선과 독주의 길로 들어서려 할 때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얻은 48%의 국민지지를 앞세워 비합리적이고 소모적인 정쟁을 유발하려 한다면 소수파의 ‘몽니’ 내지는 ‘실력행사’라는 원치 않는 꼬리표를 달게 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대선 일정 때문에 뒤로 밀렸던 새해 예산안 처리, 더 나아가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에 대한 인준동의 문제는 좋든 싫든 민주당에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박 당선인 보다 오히려 민주당이 이 문제를 슬기롭고 지혜롭게 풀어야 하는 이유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또한 민주당은 지금부터 차기 대선을 준비하지 않으면 정권탈환이 쉽지 않은 정치, 사회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 장년층 인구의 급증으로 보수층의 몸집이 불어나는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백인인구 감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대선에서 거푸 패한 미국 공화당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서울과 호남으로 축소된 지역적 기반을 확장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도 강구해야 함은 물론이다. 민주당이 인물과 전략의 부재 속에 ‘정권교체 10년 주기설’이라는 그릇된 믿음에 기대어 차기 대선에 임한다면 그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믿음직한 야당, 건전한 견제세력으로 재탄생해 ‘단독 집권’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이야말로 민주당이 현 시점에서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할 화두다. - 심원섭 정치전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