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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다이어리 ⑫]미술계 콜라보레이션 열풍, 아티스트 정체성에 큰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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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19호 박현준⁄ 2013.03.25 13:25:01

미술계엔 지금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열풍이다.[Colla boration의 사전적 정의는 공동 작업, 공동 작업물 그리고 (전시에 자국을 장악한 적군에 대한) 협력으로 통용된다] 그리고 문화 기획자라 칭하는 광고 기획자들이 문화계를 접수했다. 패션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영역으로만 인식 되었던 기업 콜라보레이션이 이제는 순수 미술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수많은 작가들의 퍼포먼스라는 미명 아래 춤추고 노래하고 텔레비전에 나온다. 수많은 광고 기획자들이 미술계로 유입되어 일상에서의 예술을 제품의 이름으로 실현시킨다. 국립미술관마저도 광고기획자의 캔버스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은 갈 곳을 잃고 광고 기획자의 유연한 손놀림에 의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골목길을 방황하는 피에로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광고 기획자와 마케팅 종사자들이 진정한 예술가이며 기존의 예술가들은 그 기획자의 하청 업자화 되어가고 있다. 스트릿 아트와 운동복, 팝아트와 전화기, 미디어 아트와 텔레비전 등 여기도 콜라보 저기도 콜라보, 문화계 모두가 콜라보레이션이란 미명아래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찾으며 언젠간 나도 유명한 작가가 될 거라며 각자에 대한 배신을 꿈꾼다.

이러한 양태들은 장기적인 국내 경기 침체 속에 지속되는 미술계의 불황에 연유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술계의 불황은 단순히 경제적 상황 이전에 파행적 예체능 교육을 일삼는 연결고리가 있다. 교육 행정, 입시 미술로 그 생계를 이어온 미대 졸업생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대학 교육이 그것이다. 그리고 비정상적 상행위를 일삼는 갤러리, 조형물로 교환되는 공공미술계의 거대 카르텔 그리고 관료적 무사안일주의의 미술관과의 치밀한 역학관계에서 파생된 예술계의 자가당착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임 소재를 넘어 당면한 예술계의 현실은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작가와 비평가, 상업 큐레이터와 갤러리 심지어 사립 미술관의 숨통마저 조여가고 있다. 대다수의 90% 예술인들은 동년배 사회인들의 10% 미만의 삶의 질을 겨우 유지하며 삶을 연장하고 있다. 대중 미디어에서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그들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넘어 사회적 갈등의 대리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자본주의 논리에 미술계 숨통 조여선 안 돼 관념적으로나마 가졌던 천재의 자리는 광고 디자이너에게, 당연시 되던 인간적 고뇌의 자리에는 정치인에게, 꿈을 꾸던 사회적 명예는 기업인에게 그리고 사랑하던 연인은 ‘김중배’에게 시원하게 양보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발전된 서구사회의 위기가 문화와 사회간 분열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을 지배하는 모던니스트적인 현대 문화는 우리들 일상생활의 가치관에 침투하게 되었으며, 삶의 세계는 모더니즘이라는 정신병에 감염되어 버렸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영향에 의해 무한한 자기실현의 원칙, 진정한 자기 경험에 대한 요구 그리고 지나치게 자극된 감수성이라는 주관주의가 증폭되었고, 바로 이러한 기질이, 사회 내에서 직업적 생활의 규율과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쾌락주의 적 동기들을 풀어 놓는다. 현대적 형태의 문화는 일상생활의 관습과 미덕들에 대한 증오심을 일으켰으며 그것은 경제적 행정적 규범들의 알력 밑에서 자본주의라는 자본의 확대 재생산과 소비의 극대화의 정당화 논리에 의해 제품의 예술화와 예술의 제품화는 철저하게 합리화되어 왔다. 사실 존재론적 본질로써의 예술은 역사적 우연성에 처한 인간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바로 그 존재의 문제에 당면한 인간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다. 과거 예술가들은 우리들에게 예술 그 자체를 초월해서 도달하는 유토피아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그것들은 허구적 매개체의 표현, 예술 작품의 사회적 초월 또 취향 판단에 대한 특수한 인식뿐만 아니라 집중적이고 계획된 창작품의 특성에 대한 실험 그 자체가 목적인 예술의 새로운 합법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예술과 인생 허구와 실제 외양과 현실을 하나의 동등한 수준으로 맞추려는 시도들과 예술품과 일용품, 의식적 연출과 자발적인 흥분 사이의 구별을 제거하려는 시도들과 모든 것이 예술이고 모두가 예술가이며 미학적 판단과 주관적 표현과 동일시하려는 시도들의 연속적 실패를 통해 그것들 자체가 일종의 무의미한 실험임이 증명됐다. 자율적으로 발전된 문화 영역의 수용체들은 흩어질 때 그 내용도 분산된다. 승화되지 못한 의미와 탈 구조화된 형식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남지 못하고 해방을 가져다주는 효과도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들은 그들이 불식시키고자 했던 예술의 그러한 구조들을 더욱 더 눈부시고 정확하게 소생시키고 분명히 하는 데 봉사하고 있다는 역설을 창출했다. 상품으로 물질화된 일상에서 예술적 실천은 인지적인 요소와 제도적 관습 그리고 미학적 표현 요소들의 제약에 구속되지 않는 상호작용을 창조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껏 예술을 향유했던 문외한들이 전문가로써의 자기 자신을 재교육시켜야 한다. 관객은 예술을 활용하고 미학적 경험을 자기 자신의 삶의 문제에 관련시키는 유능한 소비자로써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기관은 행정적 지원의 내부적 역학과 의무에 한계를 설정해주는 사회 제도를 개발해야 한다. 장수종 메타스페이스 미디어 랩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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