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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다이어리 ⑮]무한 반복 갤러리 업무 ‘힐링’ 주는 작품에 위안

열정과 이해로 ‘마술’ 을 이루는 작가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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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3호 박현준⁄ 2013.04.30 17:56:37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들과의 미팅, 메일, 전화…. 하나의 전시를 위한 콘셉트가 정해지고, 작가 섭외, 도록 제작, 전시장 디스플레이와 홍보 그리고 나면 대단원의 전시 오프닝이 찾아온다. 치열했던 하루하루가 꿈같이 지나고 나서 책상에 앉아 쌓여있는 자료들을 펼치면, 하나의 전시가 막바지를 달리고 또 다른 전시를 위한 일정이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갤러리스트에게 있어 전쟁과도 같은 전시를 만들고 진행하면서 휴식과 힐링을 찾는다는 것은 업계 현실에서는 사치와 같은 일이다. 하지만 하얀 벽에 걸린 작품들에 조명이 비추어진 장면을 볼 때마다 잠시나마 휴식과 위안의 시간이 밀려온다. 사진전문 갤러리인 룩스에서 매일 접하는 작품들 중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이정현(36) 작가의 작품 ‘A Little More or Less than Nothing’시리즈는 필자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울림이 커서 지면을 통해 공유를 하고 싶어졌다. 이정현의 작품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국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담아낸 사진들로 스트레이트한 방식으로 포착한 사진들이다.

문득 사소한 일상적 순간이 묘한 느낌을 주며 신비스러울 만치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다.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이러한 기이한 아름다움을 읽어내고 이 불안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을 그대로 제시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을 얻어내는 것은 예술가의 역량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2010년 갤러리룩스의 신진작가로 선정됐던 이정현 작가는 이러한 일상적 공간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미묘한 상태와 기운에 대한 직관력이 탁월하다. 그녀는 일상의 비근한 한 장면들을 포착하여 차분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또한 상황을 읽어내고 표현하는데 뛰어난 재능과 감각을 지녔다. 특히 작가의 연작을 상세히 살펴보면 단순한 감각만으로 이루어진 몽상적인 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그녀의 사진에서 순간이 가지는 불안정함과 수많은 감정의 겹이 만들어내는 접점을 그녀 스스로가 본능적으로 발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순응적이고 직관적인 태도로 세계에 반응하고 관객으로부터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에 집중하게 한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 속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예술가들의 능력은 항상 경이롭다. 솔직한 말이지만, 건조대에 걸려 있는 빨래들이나 테이블 위에 와인 잔들이 ‘저러한’ 형태와 느낌으로 다가온 적은 개인적으로 한 번도 없었다. ‘저러한’ 이란 단어처럼 대치될 수 없는 또 다른 하나의 언어를 보여주고 있는 사진은 이정현식 사진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러한 작가의 시선을 통해 대상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력을 엿볼 수 있다.

사진전문 갤러리에서 만난 이정현 작가에게 배운다 비록 처음 본 순간부터 이정현의 사진에 끌리기는 했지만, 이를 이해하는데 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정현의 사진은 굉장히 아름다우며, 동양의 감성과 서양 미학 간의 균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설명하거나 묘사하지 않는다. 순응적이고 직관적인 태도로 시각적인 세계에 반응하고, 단순히 보이는 것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기록한다. 사진에 담긴 내용이 그 뒤를 따라 오지만, 결코 강요되지는 않는다. 그녀의 사진은 보는 사람들이 조금 더 파고 들어오도록 한다. 나는 바쁘고 지친 일상의 내가 아닌 내 안의 깊은 곳 어디에선가 그녀의 사진을 만난다. 그녀의 사진 속에는 상징들이 존재하지만 그녀의 사진을 단순히 상징적인 것으로만 읽는 것은 실수이다. 그 안에는 이성적이지는 않지만 굉장히 지적인 감정들이 담겨있다. 이는 그녀의 사진에서 나타나는 내용과 형식 사이의 이음새 없는 결합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의 사진에서는 주제와 배경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이정현의 사진은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가지고 무언가를 분명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술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 박혜림 갤러리룩스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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