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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큐레이터 다이어리 - 16]생활로서의 예술, 삶의 위안과 경제적 해결로 우선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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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4호 박현준⁄ 2013.04.30 17:55:54

도시 생활에 지친 많은 사람들의 은퇴 후 계획 중 하나가 전원생활, 귀농이다. 바쁜 일상 속에 맛보는 며칠간의 휴가는 저마다의 가슴속에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하나씩을 품게 한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생활이 될 때는 그간 꿈꿔왔던 낭만적인 것과는 많이 다름을 실감케 될 것이다. 직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직업 중 예술을 업으로 삼은 지인이 있다면 한번쯤 부러움 섞인 질투도 해봤을 것이다. 비단 예술관련 종사자가 아니라도 반복된 일상에 찌든 자신의 직업 보다는 다른 사람의 직업이 훨씬 우아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일 수 있다.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갖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필자도 또한 때때로 이런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루 종일 좋아 하는 그림 보면서 그림에 둘러싸여 일하는 것이 매일매일 기쁘고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그것에 관련해 종사하는 사람한테도 예술은 생계이다. 더구나 그것을 취하고 누리는 사람은 하나의 취향일 뿐이기에 많은 예술관련 종사자들이 지나야 하는 생계의 문턱은 좁고 힘들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굳이 생계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좋아서 시작한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권태와 매너리즘에 빠지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본인도 그랬다. 심지어 내가 과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던 적이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예술을 생활처럼 가까이 하는 품격 있는 집안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좋은 작품 하나 맘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벌이가 좋지도 않은 자신이 이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이 마치 남의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불편했다. 수 백 점의 그림을 보고, 전시회를 다니고, 매 번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을 걸고 나르면서 관람자의 시선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몇 해 전 주은지 큐레이터의 강연을 들었을 때, 그녀가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해 얘기하면서 세 가지를 꼽았던 것이 기억난다.

공공의 교육에 힘쓸 것, 출판에 집중할 것, 무엇보다 작가의 결과물에 애정을 갖고 관람할 것. (과정의 노고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전제로) 강연을 들은 지 몇 해가 지났는데 그 중에 한 가지 역할이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 자괴감과 권태 속에서 방황할 즈음 가까운 작가의 전시가 열려 인사동을 찾게 됐다. 시간도 보낼 겸, 아무 기대 없이 들른 전시장에서 이름도 생소한 신인 작가의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 그 자리에서 구매를 했다. 작은 소품이긴 했지만 그 작품이 배송되어 오길 기다리면서 어디에 걸지, 어떤 액자에 그림을 넣을지, 설렘과 흥분으로 한주를 보내면서 뜻밖에도 큰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간 내 자신이 작품을 작품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분류하고 머릿속에 새겨놓은 선입견에 따라 멋대로 단정하고 재단하기 바빠서 있는 그대로 감상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작품이 작품으로 보이지 않고 아무리 좋은 그림도 좋아 보이지 않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제야 깨달은 것은 내가 구태여 콜라나 사이다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큐레이터는 맹물이 되어야만 어떤 맛도 녹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안이 되는 무색투병의 기획자 되기를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내가 직접 연주한다고 생각하며 들으면 더 좋다. 또 실제로 내가 그 곡을 연주하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나는 내 일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관람자인 동시에 기획자가 될 수도, 판매자인 동시에 구매자가 될 수도 있다. 입장의 차이를 받아들일 때 관계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자면 나는 이제야 내 직업과의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때로는 작가의 마음으로, 때로는 관람자의 시선으로, 운영자의 자세로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위안이 되는 무색투명의 기획자가 되기를 바란다. - 고경 갤러리 산토리니서울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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