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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18]미드나잇 인 파리, 예술에 취한 밤

예술가는 상업과 타협하는 순간 작품세계의 빛깔이 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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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8호 박현준⁄ 2013.05.27 11:12:37

미국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는 낭만에 대한 인간의 판타지를 아름답게 그려낸 영화다. 시나리오 작가 ‘길’(주인공 오웬윌슨)은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삶을 살지만, 가슴 속으로는 소설가의 꿈을 키우는 인물이다. 약혼녀와의 파리여행은 길에게 순수예술가로 사는 삶에 대한 판타지를 더욱 짙게 한다. 현실적인 실리를 추구하는 약혼녀로부터 자신의 꿈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길은 쓸쓸한 마음으로 예술의 도시 파리 곳곳을 정처 없이 걸어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정 갑자기 클래식 푸조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얼떨결에 그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1920년 예술가들이 사는 공간이다. 길은 1920년대를 예술의 황금시대라 생각했다. 그 시기 활약했던 예술가들을 동경했다. 그들과의 만남은 길에게 있어 그야말로 ‘황홀한 사건’이었다. 헤밍웨이나 달리, 거트루드 스타인, 피카소 등 천재적인 예술가로 알려진 존재들과 어울려 예술을 논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가슴 벅찬 역사의 한순간이다. 길은 그 시간 속에서 예술이 진정 추구해야 하는 방향에 대해 배우게 된다. 한편,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시공을 초월한 로맨스는 길의 판타지를 극대화한다. 현실에서 목말랐던 부분이 채워지는 시간에 흠뻑 빠져있던 길은 결국 누구나 안고 있는 공허함을 채워주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임을 깨닫고 현실로 돌아와 홀로 파리에 남는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를 묻는다. 예술가의 책임은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존재의 공허함을 채워줄 해답을 주는 것이다”(거트루드 스타인) -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 중. 길이 지닌 예술적 감성, 상상력, 쾌감, 절망을 느끼는 지점에 필자는 전적으로 공감이 가고, 위안을 받는다. 필자가 순수예술, 예술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판타지, 이 때문에 겪게 되는 일들과 같은 차원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길처럼 예술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이 있다. 아마도 그러한 마음 없이 예술세계라는 산행에 오르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예술을 예술로서의 순수영역을 지키려면 상업의 힘을 빌려야 한다. 필수적으로 따르는 딜레마는 예술이라는 산을 오를 때 미끄러지게 하는 요소다. 예술가는 상업과 타협하는 순간 작품세계의 빛깔이 퇴색되는 것만 같은 씁쓸함에 빠지곤 한다.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상상해야 갤러리스트처럼 예술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이들은 예술의 순수성에만 연연해서는 결코 가치창출을 실현할 수 없다. 예술과 상업이 만나 긍정적 시너지가 나려면 딜레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는 체력을 저하해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산행의 동기가 된 판타지마저 점점 사라지게 할 수 있다. 필자는 예술 그 자체를 사랑한다. 그래서 예술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게 됐지만, 예술을 둘러싼 이면의 모든 일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원초적인 사랑의 마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예술의 판타지를 동경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만이 방법이다. 즉, 예술세계에서의 낭만적 순간을 찾으려는 노력이 지독한 공허함과 갈증을 채워주는 물이 돼 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에게 있어 가장 낭만적인 일은 예술에 대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다. 실없는 언어유희일지라도 예술로 이루고 싶은 꿈, 판타지에 관한 이야기를 끝없이 나누는 시간은 내 삶의 애환을 다독이기에 충분했다.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상상이 유일하고 독특한 것이라는 신념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관찰하는 성향은 그 가치를 이해 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누군가와 교감이 이뤄지게 되면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를 본 후부터 내 안의 나를 꺼내 카메라로 바라보듯 그 순간을 관조하는 버릇이 생겼다.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고 대화하면서 희열과 슬픔을 느끼는 내 삶의 어느 한 순간도 길이 겪었던 시간처럼 후에 되돌아봤을 때 역사적인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 나도 모르게 그 희열의 순간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쉬워 순간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낭만은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무엇’이다. 예술이 직업이 됐을 때 그것은 내 삶을 가장 피로하게도 할 수 있는 대상이지만 치유 역시 감성을 촉촉이 적시는 예술만 한 게 없다. 결국 필자는 예술에 울고 예술에서 낭만을 찾는다. 오늘 밤, 자신의 삶을 마치 ‘미드나잇 인 서울’의 한 장면으로 여겨보면 어떨까. 마음상태에 따라 보이는 풍경의 감흥은 달라진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촉촉한 가슴으로 서울 밤을 바라본다. 맘껏 공상도 펼쳐보니 예술은 곧 로맨스이자 마법과 본질이 같다. 현실을 벗어나는 여행, 비현실적인 로맨스, 부조리한 욕망이 가득한 세계, 그것이 인정되는 세계, 선과 악의 구분이 무의미한 제3세계, 불균형, 비합리적인 것이 오히려 아름다울 때가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세계, 현실과의 괴리감이 들게 함으로써 환각증상을 유발하는 그 세계는 두렵고도 좋은 기분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판타지에서 깨고 나면 허무하지만, 그 공허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또다시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예술이 남기는 묘한 쾌감이다. - 신민 진화랑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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