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를 축적해 활용하는 인간의 능력은 최초의 디지털 계산기인 에니악(1946)과 개인용 컴퓨터(1970년대 초), 하이퍼텍스트와 그래픽 프로그램의 개발(1980년대)로 이어졌다. 이런 활동의 중심에 과학기술자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데이터와 관련한 코드와 프로그래밍 개발에서 아티스트들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1968년 영국에서 컴퓨터 아트가 소개된 후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와 코드는 예술가에게 창조의 도구로 이용됐다. 아티스트들은 반복, 시각화, 시뮬레이션, 변환, 매개 변수화 등 과정을 통해 데이터 값을 도출해내면서 새로운 스타일과 미학적 요소를 탄생시키고 있다. 서울대 미술관이 데이터의 생성과 활용, 해석을 조명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23일 문을 연‘데이터 큐레이션(Data Curation)’이다. 데이터를 형태로 변화시키는 프로세스와 프로그램에서 아티스트들이 거둔 성과를 전시장에 펼쳐 놨다. 건축의 국형걸, 그래픽디자인의 김수정, 섬유미술의 김채영, 미국의 데이비드 보웬과 위버지 등 19개 팀이 참여했다. 캐나다의 디지털아티스트 제르 소프는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작업 ‘인피니트 웨프트(Infinite Weft)’ 프로젝트, 미국의 설치미술가 위버지는 미국의 하츠필드 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설치된 공공미술작품을 영상 프레젠테이션으로 보여주는 ‘에어필드(airfield)’를 선보인다.
‘에어필드’는 수천 개의 액체 크리스털 디스크들의 투명도가 바뀌면서 애틀랜타 공항 상공의 항공기 운행 데이터를 실시간 반영한 작품이다. 이/비 오피스(E/B Office·이용주 + 브라이언 브러시 건축사무소)는 한국에 거주하는 불특정 다수가 트위터에 올린 내용을 기쁨·긍지, 사랑, 공포, 분노, 연민, 슬픔·좌절 등 6가지 감정을 나타내는 키워드로 분석해 색과 빛으로 전환한 '무드 맵(Mood Map)'을 내놓았다. 이후 각 종류를 고유의 색으로 구분하며, 일루미네이터로 연결된 광섬유에서 보인다. 관람객들은 30초마다 업데이트 되는 정보의 시각적 구현을 확인하게 된다. 제르 소프는 유전학을 전공한 디지털 아티스트다. '인피니트 웨프(Infinite Weft)' 프로젝트는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작업으로 40여 년간 직물디자인을 해 온 그의 어머니, 다이앤 소프와의 협업에서 나온 작품이다.
아티스트의 데이터 재해석 이해 그의 디지털 프로그램은 1940년대에 소개된 전체의 계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 각각 아주 단순한 규칙만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전체의 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 '셀룰러 오토마타(cellular automate)'이론을 적용한 것이다. 작가는 셀룰러 오토마타(cellular automata)이론을 적용하여 무한한 ‘패턴’을 생성해냈다. 우리가 직물의 컴퓨터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패브릭의 정형화되지 않는 패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인간의 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패브릭의 패턴은 오래전부터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고 문화공동체의 영역을 구분하는 등 구체적이고 틀에 짜인 방식이 요구되어 왔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패브릭의 패턴이 물리학에서 비롯된 이론에 근거하여 오히려 생성되는 이미지의 반복과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가져다주는 상상력의 확장과 이미지의 무소속성을 다시 보여준다. 전시를 기획한 노정민 선임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데이터를 형태로 변화시키는 프로세스와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생성, 선택, 활용하는 주체가 누구이며, 그 의도가 무엇인가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어 "디지털 시대에서의 큐레이션은 데이터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그 의미를 활용하는 맥락과 터전을 발견하는 개인에게 그 역할이 돌아간다"며 "각각의 작품을 통해 아티스트가 제시하는 데이터의 재해석 방법을 이해하고, 데이터의 형성과 이용, 전환의 주체가 누군 인지를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작품 해석의 주체가 미술평론가, 큐레이터와 같이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들에게 제한되던 관례가 2000년대에 이르러 변화하고 있고, 이는 곧 기존의 큐레이션(curation)의 의미가 도전받게 된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큐레이션이 가지는 '선택'의 중요성과 책임감을 디자이너, 작가, 관람객이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의 장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전시는 8월18일까지 계속된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