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입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젊음과 예술의 거리로 불린다. 평일과 주말, 밤낮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서울의 명소이다. 2012년 한 매체의 조사에 따르면 홍대입구역의 일일평균 유동인구는 5만 1188명에 달한다. 화려한 밤 문화와 다양한 볼거리, 쇼핑까지 더해져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빠질 수 없는 여행 코스가 됐다. 더불어 홍대입구 주변 서교동 일대에도 크고 작은 갤러리와 대안 공간 등이 존재한다. 인사동, 북촌 등 종로구 일대나 강남 지역처럼 갤러리가 밀집해 있지는 않지만 각각의 특성을 간직한 색깔 있는 공간들이 즐비하다.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서교예술실험센터, 상상마당 등 구석구석 자리한 전시공간을 찾아 하루를 보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홍대를 찾는 많은 사람들, 특히 20,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홍대입구 근처 전시공간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공연과 버스킹, 그래피티 등 자유롭고 형식이 없는 퍼포먼스만을 젊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어떤 퍼포먼스보다도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현대미술 작품에서 오히려 더 큰 자유와 도전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실험적인 작품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모두 거리로 나와 전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곳에 전시공간이 있다면 잠깐의 시간을 내서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신이 생활하는 곳 또는 약속장소 등에서 가까운 미술관, 전시장 찾아보기와 같은 간단한 수고와 노력은 문화 선진 국가 구성원으로서 지녀야할 기본적인 소양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다소 거창한 표현 같지만 우리가 왜 예술을 가까이 두어야하는지, 청소년부터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문화생활의 부족이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라 느꼈던 계기가 있다. 얼마 전 SNS상에 떠돌던 글 중에 ‘각 나라별 중산층의 기준’이라는 게시물을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아주 인상 깊었다. 월수입과 자동차, 통장잔고 등이 중산층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 미국, 프랑스가 제시한 중산층의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와 확연히 다른 선진국의 ‘중산층 기준’ 페어플레이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나만의 독선을 지니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한가지분야 이상의 스포츠나 악기를 다룰 것, 그 외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을 것 등 등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기준을 제시한다. 실제 외국의 경매장을 방문해 보면 우리나라와는 다른 즐거운 분위기의 경매를 많이 볼 수 있다. 경매사의 위트 있는 진행 아래 부모와 함께 경매장을 찾은 아이가 직접 패들을 들어보기도 하고 경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구매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평생 예술을 삶속에 가까이 하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건강한 사회, 건강한 문화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경제적인 수준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라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성장이 아닌 문화의식의 성장은 어떤 방법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양의 팽창’이 아닌 ‘질의 성장’을 위해서는 문화 예술을 생활 속에 가까이 두고 습관처럼 누릴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스포츠와 K-pop, 영화 드라마 등으로 한류열풍을 만들어내며 문화강국의 대열에 올라서 있다. 그러나 아직 국민 개개인의 문화 의식 수준이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은 00녀, 00남과 같은 상식이하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느낄 수 있다. 도덕적,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 품위라는 단어를 쓰듯이, 창의적 사고와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 소통하는 관계는 개인의 성숙한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먹고 사는 것 이외의 것을 갈망하고 느끼고 고민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림을 보고,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 것이며, 그것이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와 사색이라고 본다. 거창한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당장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가 보는 것,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가져보는 것, 나만의 취향과 색깔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얼마 후엔 더욱 풍요로워지는 일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고경 갤러리산토리니 서울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