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초여름은 프로야구의 시즌이라 할 만큼 야구팬들의 열기로 뜨겁다. 2012년 한국프로야구 관중기록은 715만 6157명으로 사상최초 700만을 넘어섰다. 올해만 하더라도 시즌 총 576경기 중 60%정도가 진행된 현재 388만976 명으로 4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출처: 한국야구위원회, 2013 7월16일 기준) 장르부터 판이한 스포츠 경기에 대한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미술계와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흥행의 척도를 가늠하는 관객동원력에 있어 성공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프로야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 미술계에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화제의 전시가 몇 차례나 있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얼마 전 서울 미술관에서는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야구인생을 주제로 전시가 열렸다. 박찬호는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야구도 예술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여태껏 예술을 하고 있었구나, 창의력을 갖고 노력했구나’ 하고 깨달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며,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에게 스포츠 정신은 있었는가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야구팬의 한명이자 미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야구와 미술이 닮은 부분은 무엇일까, 우리가 가져야할 스포츠 정신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야구선수에게 포지션은 선수의 특징과 능력을 말해주는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정해진 포지션 이외에 뜻밖의 능력을 발휘하는 선수들이 있다. 본래 1루수인 수비수가 포수로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거나, 중견수와 좌익수를 오고가는 선수들은 적시 호수비로 팀의 분위기를 이끈다. 나는 개개인이 일인미디어가 되어야 하는 아티스트들 또한 이런 멀티플레이어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장르와 재료에 대한 실험 정신 및 이해도는 물론이고,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공부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대한 관심, 인문학과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독서와 상식을 바탕으로 자기영역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사각의 캔버스를 벗어나 설치, 실험, 교육 등 자신의 능력을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작품 전시와 판매 및 홍보에 있어서도 작가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때 작가로서 롱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야구에서도 선수 개개인의 역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감독의 전략과 전술이다. 전체 경기의 흐름과 선수들의 장단점, 상대팀의 전략까지 예측할 수 있어야 팀의 목표에 부합하는 적재적소의 안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고 해내야 하는 것이 바로 기획자라고 생각한다.
야구에 감독이 있다면 전시에는 기획자가 있다 기획자는 거시적인 안목과 추진력으로 큰 주제를 세우고 그에 맞는 창의적인 작품으로 질서와 규칙을 부여해 전시, 나열할 것이다. 선수와 감독이 서로를 믿고 따라주듯 작가와 기획자 간에도 이런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승패를 좌우하는 팀워크로 이어지는 키워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선수의 자질과 태도가 팀 전체의 분위기를 이끈다. 운동을 잘한다고 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사람이 훌륭한 선수, 훌륭한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더디게 가더라도 꾸준한 노력과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자기 역할을 120% 해내는 것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투수나 타자라도 혼자서 팀의 승리를 만들기 어렵듯이 작가도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많다. 이때 기획자와 작가는 양보할 수 있는 것, 도와야 하는 것은 한발 뒤에서 서로 배려해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성실함과 진정성은 승패와 순위를 떠나 팬들로부터 조건 없는 응원과 지지를 받는다. 그것은 플레이어의 성장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개인의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한 예술도 프로로서의 책임과 팬서비스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에나 사소하지만 기본적인 게임의 규칙이 존재하듯이, 우리 미술계에도 이러한 스포츠정신이 필요하다. 폭발적인 반응과 뜨거운 관심은 아니지만, 삶 속에 꾸준히 곁에 두고 즐길 수 있는 미술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스스로 반성하고 다독여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 고경 산토리니서울갤러리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