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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 - 26]‘매트릭스’에서 전시의 본질적 해답을 얻는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받은 영감은 선택과 용기 그리고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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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37-338호 박현준⁄ 2013.08.05 13:42:18

워쇼스키 형제 감독의 영화 ‘매트릭스’는 SF로 포장돼 있지만, 그 실질은 종교와 철학이야기다. 갤러리 큐레이터로서 계속되는 도전을 위해 필요한 본질적 해답 또한 매트릭스에서 얻을 수 있다. 미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갤러리는 그저 여유롭고 차분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 우아한 허울 이면의 전쟁 같은 순간들 속에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마주한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의 교차점에서만큼이나 치열하고도 어려운 선택과 두려움, 갈등이 자리한다. 갤러리 전시를 기획하는 것은 마치 도박 같다. 기획자가 미술사적 지식과 철저한 시장조사를 기반으로 아무리 좋은 작품을 선택해도 그 전시의 성패는 작품의 가치와 비례하지 않는다. 많은 경험과 연구를 통해 노하우가 충분히 쌓였다고 자부해도 대박과 쪽박이 완전히 불규칙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박의 희망으로 내기(betting)를 먼저 하는 갤러리 전시의 성격은 도박의 원리와 다를 바가 없다. 적게라도 돈을 따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계속 도전하는 것처럼 전시 또한 전략이 통했거나 조금의 성과라도 느끼면 실패한 기억을 뒤로한 채 다시 설렘으로 새로운 도박을 시도하게 되는 영역이다. 10번 중 한 번의 수확이 언제 일어날지, 심지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내기에 매번 기대감으로 뛰어드는 것이 예술 판의 풍경이다. 갤러리 세계는 철저히 상업적이면서도 자선적인 면을 가지게 된 오묘한 동네인 셈이다. 선택의 부담감 앞에 회의를 느끼고 이 세계를 떠나는 분들을 보곤 한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지쳐갈 때 필자는 ‘매트릭스’를 다시 보면서 그 시기를 담담히 지나가는 법을 깨우쳤다. ‘매트릭스’가 내게 많은 영감을 준 키워드 중 첫 번째는 ‘선택’이다. ‘매트릭스’에 갇힌 사람들과 그곳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그 둘의 차이는 선택에서 비롯된다. 또 네오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러나 선택은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선택에 따라 미래가 창조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과연 누가 확신에 찬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네오는 중요한 선택의 시기마다 오라클이라는 예언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오라클은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으므로 네오는 오라클에 의지한다. 하지만 오라클은 선택하기 전에 조언을 구하는 네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이미 선택을 했어. 중요한 것은 네가 선택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야.” 필자는 갤러리에서 전시 작가 선정이나 기획에서 본인의 결정이 마치 인류를 구원하는 것 마냥 희망이나 부담을 안고 임하곤 했다. 본인의 선택이 작가의 인생에, 갤러리의 운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생각에 너무 깊게 몰입한 나머지 슬픔과 기쁨, 희망과 절망의 폭이 무척 컸다. 선택은 결코 나의 자유의지에만 따른 것은 아니다. 미술계를 움직이는 알지 못하는 힘들과 갤러리의 행정과 특성을 고려한 것이었다. ‘선택’에 대한 고민은 나 혼자 짊어졌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할 것이 아니다. 선택을 둘러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의 선택에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 이해함으로써 다음 선택의 안목을 향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리를 해본다. 큐레이터에 대한 신뢰가 전시의 원동력 두 번째 키워드는 ‘용기’다. ‘매트릭스’를 빠져나온 네오는 두려움에 싸여 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미래에 대한 불안,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한 부담이다. 네오가 ‘매트릭스’를 빠져나와 전투 훈련을 하는 프로그램 중 ‘점핑 테스트’가 있다. 한 건물 옥상에서 힘껏 도약해 옆 건물 옥상으로 건너뛰는 훈련이다. ‘매트릭스’를 빠져나온 모두가 1차 테스트에서 실패한 이 훈련 과정에 네오가 성공할 수 있을지 모두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결국, 네오는 용기 있게 도전하지만 결과는 실패다. 감독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무서운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두려움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선택 앞에 두려워할수록 그것은 나를 믿지 못하는 정도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만든 전시가 수익이나 홍보 면에서 두드러진 성공을 보이지 못했다고 해서 다음 선택을 두려워만 한다면 갤러리스트라는 직업의 본분을 잊는 것과 같다. 계속해서 새로운 안목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용기만이 변화와 발전을 이끌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필자는 외부적으로 작가와 갤러리를 주도하는 화려한 위치로 비치곤 한다. 하지만 실제는 양날의 검이다. 모든 용기 있게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내게 있다는 것은 피 또한 내가 직접 묻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를 선택하는 권한이 있으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뒤따른다. 작가와 갤러리가 서로 존중하기까지 눈치를 살피며 양측의 요구를 적절히 조율하는 것은 일차적 기본 업무다. 일을 가까스로 성사시켜도 잘되면 모두의 존중을 받지만, 결과가 부진하면 그간의 노력 여하를 막론하고 갤러리와 작가 모두에게 또다시 눈치가 보인다. 이후 구체적 성과가 나올 때까지 내내 마음이 무거운 것은 생활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작가 입장에서는 전시를 투자한 갤러리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동시에 갤러리의 판매능력을 깎아내리게 될 때도 있다. 갤러리는 최선을 다해 전시를 준비하고도 수익은 물론 존중도 못 받는 상황이 왔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힘이 빠진다. 아름다운 협업 관계가 한순간 적보다도 못한 관계가 될 수 있으므로 필자의 위치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그렇지만 시작부터 결과를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디든 안개길은 매한가지니. 얼마나 두려움을 이겨내고 시도를 했는지, 선택의 이유를 충분히 이해했는지에 따라 결과에 의의가 있다는 철학이다. ‘매트릭스’를 통해 되뇌어 본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 나오는 대사 하나. “두려움은 바라보면 그뿐.” 자신감만이 살길이다. 세 번째 키워드는 ‘운명’이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구출된 것은 이미 매트릭스를 빠져나간 인류에 의해서다. 사람들은 네오를 기계와의 오랜 전쟁을 끝내고 인류를 구원해줄 사람(The One)으로 믿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것을 믿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네오의 일면을 보고 실망하며,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 믿음이 옳을까? 증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믿고 있나? 믿음의 근거는? ‘매트릭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것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실인지가 아니다. 내가 그것을 진실로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답한다.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필자의 감각, 잠재력을 믿어주는 사람들과 나에 대한 믿음이 깊으면 두려움을 버리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 신민 진화랑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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