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7-338호 왕진오⁄ 2013.08.05 13:43:49
실제와 가상이 맞물려 있는 평면의 공간을 그려내는 작가 히로시 고바야시(46)의 작품을 보는 순간, 눈과 마음이 흡입되는 하얀 색의 공간이 우리를 압도한다. 히로시 고바야시(Hiroshi Kobayashi)는 동경국립예술대학과 뉴욕 시립대학원 브룩클린 칼리지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6년 한국에 처음으로 알려진 그의 작업은 무의식의 초현실 공간에서 우리들의 잃어버린 유년의 행복한 추억과 백지와 같은 맑은 사유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공간에 떠있는 인형들은 마치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처럼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이 어디론가 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보이지 않은 힘에 의해 불어온 바람에 이들이 함께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형상으로,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로 슈카’를 화면에서 연주하는 듯 신비로움을 배가 시키고 있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동물 인형은 미묘한 콘트라스트에 의해 입체감이 부풀어 오르고 동일한 색상이 마치 수묵의 바림처럼 치밀하게 버무려졌다.
그림과 사진의 경계가 모호한 고바야시의 작품을 바라보면 연출된 사진으로 여기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붓으로 그려진 그림임을 알게 된다. 납작하고 평면적인 이미지라고 여겨졌던 화면은 둥근 선과 여러 겹의 레이어, 철저하게 계산된다. 기계적으로 조율 된 색채의 겹으로 입체적인 효과를 발산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화면은 마치 시간과 거리에 따라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이중적, 비밀스러운 화면을 이루고 있다. 상상의 세계 속 공간에 인형들이 춤추듯 떠돌고 그것들은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림자는 인형이란 물리적 존재가 어떻게 공간에 위치해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해 주는 장치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화면은 무중력의 공간으로 돌변하고 중력의 법칙에서 자유로워진 인형들은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환각적인 움직임으로 안긴다.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인들의 모습과도 같이 미지의 공간에 떠 있는 인형들은 정신적 활력과 심리에 의해 작동되는 이미지를 상징한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상상에 의해 그 인형을 마음속에서 유희하며, 어린 시절 인형과 함께 한 순간, 그 시간과 공간이 자연스레 각자의 의식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일상의 공간, 의식의 공간으로의 전환 작가 고바야시의 작업은 특정한 공간 안에 각종 인형을 배치한 후 그 이미지들이 보이는 허구의 공간을 그려내고 있다. 디지털에 의해 보정된 기본 바탕과 구조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붓과 물감을 수공예적인 작업으로 다루어 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계와 손, 평면과 허구의 공간, 어른과 아이의 상반되고 이질적인 세계가 부딪치고 섞여진 그림이다. 그것은 어느 한 세계로 편입되고 규정하기를 거부한다. 어쩌면, 우리들에게는 이 두개의 세계가 여전히 동일한 크기로 필요로 되는지 모르는 일이다. 일상적인 삶의 공간을 규정하는 모든 구속들이 없어져 버린 듯 공간은 갑자기 모든 것이 가능한 의식의 공간으로 치환이 된다. 고바야시의 그림이 망막에 호소하고 망막 위에 머물기 보다는 그 너머, 정신적인 활력에 의해 비로소 감상이 가능한 그림으로 산수화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고바야시의 그림은 부유하는 인형을 단초로 하여 관람객들이 그 인형과 함께 했던 특정한 순간의 시간으로 이동하면 된다. 보는 이들의 의식과 기억을 이동 시키는 타임머신과도 같은 것이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어도 어른들이 기호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것을 거부하며 어린이의 감성과 취향, 기호를 여전히 자기 감각 아래 거느리고자 하는 모종의 욕망을 갈구한다. 고바야시의 그림들이 동시대 회화의 새로운 징후들을 감각적으로 마치 팬시용품 점에 놓여있는 인형들처럼 가볍지만, 그 대상이 주는 의미는 우리들에게 즐거운 무게의 용량을 배가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가 된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