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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큐레이터 다이어리 - 27]민족의 정서 표현하는 ‘보리밭 화가’

이숙자 화백이 30년 넘게 보리에 몰두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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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39호 박현준⁄ 2013.08.12 13:36:45

요즈음 세상의 화두는 진정성이다. 기업, 종교, 정치 등 우리 사회는 진정성을 찾으려는 생각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작가들은 다양한 미술 장르에서 각자 끝없이 노력한다. 정신과 육체를 온전히 작품제작 하나하나에 작품을 위해 쏟아내는 것만큼 진정성을 가진 모습이 또 있을까. 필자가 이번 주제에 맞게 이야기하고 싶은 작가는 동양화가 이숙자(71) 선생님이다. 이숙자 선생님은 한국전통 채색화계열의 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으며, 특히 보리밭을 그린 작품은 미술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홍익대학교 동양학과에서 천경자, 박생광 등의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채색화 위주의 수업은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뚜렷한 미술사적 계보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작가의 한국 채색화 기법으로 그려진 보리밭이 상징하는 질긴 생명력과 마치 전통적 굴레와 인습에 저항하는 듯한 ‘이브’의 이미지는 곧 한국적 삶의 근성과 에로티시즘에 대한 문학적 변주로 일컬어지며 작가 특유의 작품 세계를 형성해 왔다.

1970년대부터 이숙자 선생님은 전통 채색을 연구하면서 조선 시대 전통 공예품(댕기, 비녀, 골무, 족두리, 수저 집, 사주보 등)을 표현한 작품으로 73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채색화는 일본의 아류라는 오해를 받아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열린 이 전시로 인해 당시의 전통 채색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기회가 됐다. 또한 대상의 조형성과 색감을 넘어서, 손때 묻은 여인의 소품에서 옛 여인의 애환 서린 마음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는 평을 받았다. 색에 대한 연구는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진달래, 코스모스, 수국, 목련, 국화, 팬지, 나리, 수선 등의 다양한 꽃들을 그려 생명체의 진료로서의 진달래색, 배추 색, 옥색, 자주색 꽃 등과 같은 한국의 채색감각과 체계를 세운다. 보리밭에는 이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보리밭은 ‘보리밭 화가’라는 별칭이 붙여질 정도로 30년 넘게 몰두하고 계신 있는 이숙자 선생님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산호, 보석, 광물질 등의 원료를 섞어 화폭에 그리는 암채기법과 채색화 기법으로 제작되며, 작품에는 보릿고개라는 민족적 삶의 추억과 강인한 생명력이라는 의미 외에도 훈민정음, 누드, 소, 야생화 등과 함께 그려져 조상의 로맨스와 에로티시즘, 우직하고 순박한 한국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단순한 자연대상의 의미를 넘어 민족의 정서를 표현한 것이다. 개인생활 포기한 창작 열정 한국인의 철학과 사상을 담아내고자 한 작가의 창작열은 개인 생활을 포기할 정도의 긴 시간과 몸을 아끼지 않는 정성이 들어간다. 한국화의 특성상 화판을 바닥에 눕혀 작업하기 때문에 작업하는 동안의 몸은 긴장상태가 지속된다.

안료를 쌓아 만들어진 부조기법의 보리알맹이와 수 만개의 보리의 수염을 하나하나 세필로 표현하는 것은 손바닥이 화판에 닿아 피멍이 맺히게 하고, 오랜 세월의 보리밭 작업으로 양쪽 어깨의 높낮이가 불균형이 되었을 정도라고 하니 생생한 보리밭을 표현하는 것은 대단히 고된 작업이다. 이렇게 온 힘을 기울여 그려진 보리는 알알이 살아있는 듯 한 생동감 넘치는 청맥, 황맥, 백맥, 보라맥 등 다채로운 보리밭 사계로 탄생하게 된다. 이숙자 선생님에게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솔직한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방식과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길을 가는 용기 그리고 작품을 위해 혼신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 예술가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진정성은 자신에게 솔직하고 자신의 길을 멋지게 가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김재훈 선화랑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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