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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김예지, 이미지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

빛바랜 사진은 과거의 향수와 아련함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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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42호 박현준⁄ 2013.09.02 14:24:07

“과연 이미지의 역사에서 동시대의 이미지는 과거에 생산된 이미지들보다 진보하였는가”라는 의문에서 김예지의 회화는 시작됐다. 가볍고 즐거운 그림을 그리는 요새 젊은 작가들과 다르게 김예지(24) 작가의 작품에서는 이미지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작가가 소재로 삼은 빛바랜 사진들은 지나온 시간만큼의 향수와 아련함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조악한 포즈와 배경들은 현재에 비해 촌스럽고 유치하다고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거의 이미지와 지금의 이미지를 비교해 봤을 때 어느 것이 더 세련되고 옳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똑같이 촌스럽고 유치하게 느껴진다. 작가는 현재의 이미지가 과연 과거의 이미지보다 진보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유년시절의 이미지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이런 사진 또는 영상 등 오래된 이미지들을 회화적으로 재현했다.

주목할 점은 작가는 사진 속 인물, 향수, 장치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대상이 보이는 방식을 재현한다. 이를테면 아날로그 TV의 이미지, 필름카메라만의 색감 등을 더욱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작품을 보면 앨범 속에 자리한 유년시절의 사진을 보는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러난다. 과거에 생산된 이미지들은 마치 미래에 과거의 이미지가 되기로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이미지 구성 방식은 동시대의 세련되고 고급 취향의 이미지 구성방식과 거리를 두며 촌스럽고 조악한 또는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의 이미지로써 동시대 이미지들 사이에 자리한다. 과연 이미지의 역사에서 동시대의 이미지는 오늘날 과거의 이미지는 소위 말하는 컨템포러리한 이미지의 관점에서 하위적이다. 동시대 이미지의 관점에서 촌스럽고 상스럽거나 그것이 이미지 자체가 가진 절대성이 될 수 는 없다.

따라서 그것을 캔버스에 옮길 때 그러한 맥락적 서사를 지우고 최대한 무심한 태도로 이미지를 다시 기록한다. 과거에 대한 노스텔지어나 촌스러움의 맥락을 지워내고 나면 마침내 이미지는 텅 비고 공허해진다. 왜냐하면 이것은 대상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대상이 보이는 방식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색채와 붓 자국에서 수채화적 감성을 자극 디지털카메라가 포착하지 못하는 필름카메라의 색깔이라던가. 90년대 교과서나 학습용 교재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사진을 위해 작위적으로 취하고 있는 포즈라던가, 낮은 화소의 아날로그 TV브라운관에서만 재현되는 선명하지 못하게 보이는 이미지들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회화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그리기는 관점을 수정해 이미지를 재수집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따라서 이미지 하나하나 보다도 그것들이 모여진 모습이 수집된 이미지 재현방식의 아카이브가 중요해진다. 동시대성의 경계밖에 불안하게 위치한, 클래식이 되지도 못하고 새로움으로 흡수되지도 못한 이미지들을 호명함으로써 이미지들 간의 위계를 흔들어보려는 시도인 것이다. 김예지 작가는 과거에 생산된 이미지의 아카이브를 자신의 회화에 끌어들여 이미지의 위계질서에 도전하는 데 관심을 가진다. 동시대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촌스럽고 상스러운, 또는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유년의 이미지에서 노스텔지어와 시대적 지표가 제거됨으로써 과거의 이미지는 무심한 태도를 지향한 회화로 다시 기록된다.

색채와 붓 자국에서 수채화적 감성을 보여주는 작가의 작품들이 9월 9일까지 서울 서교동 산토리니서울 갤러리에 10점 내외의 작품을 건다. 기계적인 선명함과 범람하는 디지털 정보력에 빠르게 익숙해지고 있는 지금, 관람객들은 잠시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접하게 될 것이다. - 글·고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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